자양당 식당 당번을 마치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차영 작성일2018.09.13 조회5,210회 댓글0건본문
원평1-7 방면 선무 김차영
올해 초에, 우리 방면의 도장 식당 당번 차례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한 달가량 장기간 도장에서 당번한다는 것이 적잖은 부담감으로 다가왔지만,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또 공덕을 쌓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져 먹었다.
도장에서 당번하며 생활할 짐을 싸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겨울 짐이라 부피도 크고 뭘 챙기고 빼야 할지 고민도 많이 됐지만 비장한 사명감으로 열심히 짐을 꾸렸다. 큰 짐가방의 지퍼를 꾹 잠그며 ‘도장 식당 당번이 아무리 힘들어도 한 달 동안 꾹 참고 잘 해내자’라며 스스로 다짐했다. 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여주까지 가는 3시간 동안에도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께 ‘잠시 포덕 사업을 내려놓고 식당 당번에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심고를 드리곤 했다.
다음 날 아침 당번이 일찍 모였다. 식당 조는 자양당과 신생활관 2개 조로 나뉘었다. 원래 신생활관 조로 가고 싶었는데, 인원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자양당 조로 편성되었다. 드디어 당번 첫날, 자양당에는 안면이 있는 박교감, 양보정 두 분이 있었다. 어색한 흰색 가운에 당번모를 눌러쓰고 서먹하게 서 있는데, 박교감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밥 묵었나?’하며 물어보셨다. 보자마자 나를 챙겨주시는 그분의 말씀에 긴장감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사실 아침에 경황이 없어서 밥을 못 먹었는데, 배려 덕분에 맛있게 식사할 수 있었다.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예감도 좋았다.
이번 자양당 조에는 30대 초중반이 많았고, 입도한 지 얼마 안 된 내수도 있었다. 대체로 비슷한 연령대라 대화도 잘 통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같이 당번하다 보니 서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고, 특별식으로 떡볶이도 만들어 먹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도장에서 너무 떠들어서 혼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로 시끌벅적하며 일했다. 쉬는 시간에는 배드민턴을 했다. 당번할 때 서로 부조화도 생기고 그에 따라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배드민턴을 같이 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피로를 씻어주는 것은 박카스와 참이었다. 세 끼 식사를 맛있게 먹으며 ‘오늘은 어떤 참이 나왔을까?’라는 행복한 고민을 매번 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다 같이 모여서 먹는 참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참으로 빵이나 과자가 나올 때도 있고 치성 음복이 나올 때도 있는데, 원래 밥보다 간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시간이 정말로 기다려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이 아무리 많고 힘들어도 참만 보면 밝아지고, 배불리 먹고 나면 정신이 차려지며 힘도 났다. 참이 부족하면 라볶이를 만들어 먹었는데, 내가 만든 라볶이의 인기가 많아서 매번 라볶이 요리는 도맡아 했다.
사실 장기간 당번을 하다 보니 늘 밝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조원끼리 서로 의견이 안 맞아 소소한 충돌이나 불평이 생기기도 했고, 오해가 생겨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때로는 우리가 실수하여 임원분께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다 같이 ‘자양당에 식사하러 오시는 모든 도인분께 더 좋은 음식을 제공하자’라는 한마음이었기에 금세 풀어지고 서로 먼저 사과하면서 다시 당번에 몰입할 수 있었다.
‘화복’이라는 말처럼 도장에서 복을 많이 짓다 보니 몸살이 나거나 감기에 걸리고, 때론 복통에 시달리는 등 몸으로 화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심연성(修心煉性) 세기연질(洗氣煉質)’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빨리 극복하려고 애를 썼다. 또한 ‘나는 겁액을 풀고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도장 당번에 왔다. 이 힘든 상황이 신명의 기국 시험일 수도 있으니, 잘 견디면 한 차원 달라질 것이다’라고 믿으며 계속 심고 드렸다.
한 달간 식당 당번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였다. 자양당 종사원 임원분이 정월 대보름 행사 구경하고 오라고 배려해주셔서, 당번 도중에 잠깐이나마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도우들과 함께 제기차기, 연날리기도 체험하고, 귀밝이술과 부럼도 나누어 먹었다. 다 같이 사물놀이와 달집 태우는 것을 구경하면서 마음속으로 소원도 빌었다. ‘달집태우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달이 떠오를 때 달집에 불을 지르며 노는 민속놀이로, 달집이 훨훨 타야만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체험은 처음이라 마냥 신기했고, 동그랗게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한 해 동안 도장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는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라 하였는데, 평소에 생각지 못한 도장 영농의 중요성을 깨닫고 도장에서 귀한 농작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이제 자양당 일이 많이 익숙해져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쯤, 식당 당번은 끝났다. 마침 주말이라 도장에 참배하러 오신 분들이 많았는데, 삼삼오오 모여 선각분의 설명을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참배객들을 보며 선무로서 다시금 포덕 사업에 대한 마음을 다져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번 식당 조 당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도전님께서 나를 수심연성 세기연질 해주시려고 불러주셨기 때문인 것 같다. 훗날 신선, 선녀가 되어 후천에 가서도, 이번 식당 조 추억 하나하나를 앨범처럼 고스란히 간직하고 남기고 싶다.
《대순회보》 210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