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음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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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소명 작성일2018.11.03 조회5,306회 댓글0건본문
도통주(道通呪)에 보면,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고 중찰인사(中察人事)케 하옵소서’라는 구절이 나온다. ‘상통천문’은 천문에 통하는 것이고, ‘하달지리’는 땅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며, ‘중찰인사’는 사람의 일을 살펴 아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통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인간사를 올바로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하다.
중찰인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수도생활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통해야 하며,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려운 만큼 인생에 있어 아주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신뢰를 쌓아야 하고, 신뢰를 쌓으려면 정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을 일컬어 흔히 마음결이 곱다고 한다. 마음결에서 ‘결’은 어떤 일정한 무늬 또는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나뭇결, 바람결, 물결 등 모든 사물에 결이 있듯이, 사람도 각자 결이 있다. 마음결이 아름답고 바른 사람이 중찰인사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
지금부터 내가 꺼내려고 하는 에피소드는 20여 년을 함께 해온 어느 내수 수도인(대진대학교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선생님의 일상생활에서 ‘중찰인사’를 위한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일들이 많아, 함께 공유하면 수도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몇 가지 사례를 간추려 소개하려고 한다.
첫 만남.
내가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9년 대진대학교 기숙사에서 사감 선생님과 학생 사이로 만나면서부터다.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날 나는 치성에 참석하려고 큰 가방을 들고 학교 정문으로 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선생님이 자동차 창문을 열고 “학생 어디 가니?”라고 물었고, 나는 얼떨결에 “저 치성 들어가는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일단 차에 타라고 하였다. 알고 보니 선생님도 치성에 들어가기 위해 차를 몰고 나오는 길이었는데, 안면이 있는 학생이 큰 가방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힘겨워 보여 학교 정문까지라도 태워주고 가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치성을 함께 들어갔고 다음 날 새벽 함께 학교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너 계속 치성 들어갈 거니?”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네!”라고 대답했더니, 잘 되었다며 혼자 운전해서 치성 갔다가 돌아올 때 새벽이라 잠도 오고 힘들었는데, 앞으로 말벗 하면서 함께 다니자며 선뜻 손을 내밀어 주셨다. 사실 학교에서 여주본부도장까지 가는 데 운이 좋아 타이밍이 잘 맞으면 4시간, 그렇지 않으면 5시간 이상 걸렸다. 학교에서 정문까지 가는 셔틀버스, 정문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여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또 버스를 타고, 여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장까지 이렇게 버스를 총 4번 갈아타야 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복 10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치성 날 아침 수업이라도 있으면 결석이나 지각을 하기 일쑤였다.
선생님 덕분에 치성을 다녀오는 시간이 왕복 10시간에서 5시간으로 단축되었고, 좀 더 정성 들여 치성을 모실 수 있게 되었으며, 치성 다음 날 수업이 있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치성에 참석할 수 있었다. 20여 년 전 선생님이 뜨거운 햇볕 아래 큰 가방을 들고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를 그냥 무심코 지나쳤더라면, 아마 지금과 같은 인연을 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이나 선생님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름다운 마음결을 가지고 있다.
살신성인(殺身成仁), 몸을 던져 학생을 구하다.
2018년 5월 대학교 축제 때 있었던 일이다. 축제 기간에는 남자 선생님들이 조를 짜서 늦은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교내를 순찰한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하고, 술에 취한 학생들이 있으면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주기 위해서다. 선생님은 비록 여자지만 기숙사 근무(여러 부서를 거쳐 20년 전과 같이 지금도 기숙사에 근무 중)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둠이 짙게 깔린 한밤중에도 학생 지도 차 교내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다녔다.
축제 둘째 날 아침 10시쯤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너 뭐 하니?”, “저 글 쓰는 중인데요”, “선생님은요?”, “나, 병원에 가고 있어”, “왜요?”, “그게 말이야”로 시작한 선생님의 이야기는 신문에서나 아주 드물게 접할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축제 첫째 날 새벽 1시쯤에 선생님이 기숙사 주변과 운동장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학생 한 명이 운동장 계단 스탠드 앞쪽에 살짝 걸터앉아 앞뒤로 휘청거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학생 앞에 가파른 계단 10여 개 정도가 있어서 앞으로 구르면 그 학생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가 학생을 바로 앉히려고 하는데, 만취한 덩치 큰 남학생이 결국 중심을 잃고 계단을 구르려는 순간, 선생님이 그 학생을 끌어안고 함께 가파른 계단을 굴렀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 학생은 선생님을 쿠션 삼아 바닥이 아닌 선생님 몸 위로 떨어져 다친 곳이 없었지만,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깔려 타박상을 입고 이곳저곳 긁혀서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바로 “선생님 머리는요, 머리 괜찮아요?”라고 물었더니,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신명의 손길인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손으로 머리를 받쳐줘서 살포시 바닥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자, 아파트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어 구르고 있는 어린 자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하고 사지를 깁스한 어느 어머니 이야기가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놀라기도 하였지만 존경스러운 마음에 “선생님 자식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있어요?”라고 물으니, 순간적으로 그 학생이 구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마음결 고운 선생님은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멍은 옅어졌고 찰과상은 아물었지만 속살이 곪아 병원에 다니고 있다.
타인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
최근 나의 동료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그 후 회의시간에 “우리가 일이 많아 바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삽시다. 혹시 동료가 아픈 기색이면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말만 할 게 아니라, 그 동료를 위해 시간을 내어 차에 태워서 직접 병원에 함께 가줍시다”라는 ○○부장의 말씀을 듣는 순간, ‘어! 내 주변에 부장의 말씀처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있기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내일 휴가를 냈다며 예약하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예약되어서 병원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5월에 다친 곳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다니는 미용실 헤어디자이너가 아파서 병원 예약을 잡았고, 본인의 차로 직접 그 분을 태워 간다는 것이었다. 그 디자이너는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는 사이인데, 휴가를 내고 그것도 본인의 차에 태워서 간다고 하니 순간 말문이 막힐 따름이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더니, 그 디자이너가 한 병원에서 암이라고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하기 전 다른 병원에서 다시 한번 진찰받고 싶지만, 가고자 하는 병원이 암 수술 전문병원이라 진료 예약이 많아서 예약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선생님이 기지를 발휘해서 직접 암 수술 전문병원을 예약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무슨 일이든 안 될 것으로 보여도 일단 부딪쳐 보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데 20여 년을 지켜본 지금까지 되지 않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선생님에게 “각별한 지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왜 휴가까지 내면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세요?”라고 물으니, “혹시나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냥 지나쳐서 그 사람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라는 간단한 대답만 돌아왔다. 그 헤어디자이너는 선생님의 배려로 진찰을 받을 수 있었고, 처음의 진단결과와는 달리 다행히 암이 아니어서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지금은 통원치료 중이다.
간절한 심고.
선생님이 치성을 들어가는 이유는 자신의 안녕과 행복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선생님의 주변 사람들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상제님께 간절히 심고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곁에서 지켜보면 참 신기하게도, 상제님께서는 선생님의 심고를 대부분 들어주시는지 항상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아마도 그 간절한 심고가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선생님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시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내 주위가 힘들면 내가 계속 그거 다 신경 쓰고 다녀야 하잖아. 내가 좀 움직여서 내 주위가 행복해지면, 난 더는 신경 안 써도 되고 얼마나 좋니”라고 말했다. 다시 “선생님은 상제님께 바라는 것이 없어요?”라고 물으니, “당연히 있지, 세계평화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하하하)”이라고 웃을 뿐이었다.
20여 년을 지켜본 선생님의 일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그 이유는 타인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마음의 큰 밭을 가지고 있어, 주위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비록 가녀린 여자지만,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힘센 거인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 선생님의 일상은 부드러운 물결 같다가도 때론 거센 바람결이 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인해 세상이 점점 삭막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결을 보고 있으면 향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듯하다. 나도 중찰인사를 실현해 가는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결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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