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했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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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종식 작성일2018.07.13 조회5,347회 댓글0건본문
울주 방면 정리 박종식
입도하여 교화를 듣고 상제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내 인생의 가슴 벅찬 의미로 다가왔다.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의 내용을 헤아리기는 어려웠지만, 삶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기에 충분했다. 포덕은 물론 도에서 행하는 각종 의례에 참여하면서 온전히 수도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삶은 같은 방향으로만 나아가지 않았다. 개인적 사정으로 직업을 가지기도 했고, 아무런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 일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대순사상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2013년 특별전형으로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순사상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니 학문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업을 하는 동안 기숙사 및 식대, 도서비 등 도장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공부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진로를 생각하던 중, 교무부가 대순사상을 연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를 받드는 방법은 많지만, 나는 대순사상을 연구하겠다는 목적과 함께 교무부에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학업에 매진했다.
2017년 2월에 졸업과 함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여주본부도장에 이력서를 내고, 3월에 면접을 보았다. 면접관은 수도인으로서 성심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보는 듯했다. 한 분이 “열심히 살았네”라고 말씀하셔서 감사하고 뿌듯했다.
“따르릉”하고 핸드폰 벨소리가 회관 외수 방에 울려 퍼져 다급히 받았다. 면접에 합격하였으니 4월 1일부터 교무부 종사원으로 출근하라는 연락이었다. 면접 당시의 좋았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 기뻤다.
가장 먼저 받은 업무는 총무부에서 3개월간 수습을 하는 것이었다. 도장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서 종무원 사무실로 가는 길은 여명이 틀 무렵이었다. 조회를 마치고 나오면 나무 사이사이를 뚫고 나오는 햇살과 폐 깊숙이 파고드는 신선한 공기가 몸과 마음을 정화해 주었다. 도시의 삶에 익숙한 나에게는 경험할 수 없었던 각별한 시간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에는 주로 1시간에서 2시간 동안 총무부의 모든 부원이 도장 내에 있는 사철나무 가지치기를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누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전지가위를 가지고 각자 일할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가위질 소리가 ‘착착’ 경쾌하게 들렸다. 사람들이 가지치기하는 모습을 보니 간단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자신 있게 해보았다. ‘아이고 이런’ 사철나무는 곡선미가 생명인데 듬성듬성하게 깎였다. 누가 볼까 창피했는데, 나를 지켜보고 계셨는지, 조경 팀장이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넸다. “한 곳만 보고 이쁘게 자르려 하면 그런 현상이 발생해요, 전체 모양을 생각하고 해야 해요.” 이 말을 듣고 주변을 보니 다들 전체를 이해한 듯한 모습이다. 사철나무의 아름다운 곡선이 그것을 대변해주었다.
5월이 되어, 도장 종사원과 방면 임원분들의 재래식 모심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것으로 농번기가 시작된 것이다. 기계식 공법으로도 할 수 있지만, 수도인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서 시작만큼은 전통적인 방법을 따랐다. 이런 날은 일한다기보다 축제 분위기여서 모심는 모습이 힘 있고 경쾌하게 보였다. 반나절이 못 되어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영농 팀의 한 종사원은 나에게 매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썼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인데, 자주 말하는 것을 보니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커 보였다. 그는 지금의 농사 방법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고, 다양한 실험이 있었다고 한다. 벼의 종류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종류가 그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다. 신농법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여 새롭고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던 일화를 듣는 동안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그런 생각 끝에 나온 방법 하나가 논에 농약 대신 우렁이를 뿌리는 것이다. 우렁이는 논에 자라는 잡초만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해 질 녘에 넓은 논에 상당히 많은 양의 우렁이를 바가지로 퍼서 뿌렸다. 며칠이 지나 우렁이 알이 벼잎에 붙어 있는 모습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알이 핑크 색깔이어서 눈에 잘 띄었다.
모내기가 끝나갈 무렵 목공소에 일손이 필요하게 되어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장소가 실내라서 내심 더위를 피하는가 싶었지만, 오히려 피부가 깎기는 쓰라림을 주는 땀띠로 고생하였다. 이곳의 하루는 당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회의로 시작했다. 얼굴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친밀해질 수 있는 좋은 시간었다. 한 번은 기도상을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책임자인 모 교감이 기도상이 나가는 가격이 5만 원인데, 순수 자재비만 5만 원이 든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니 일반 회사에서 생산할 때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임대료, 인건비, 전기, 수도 등 갖가지 비용을 포함하면 몇십만 원의 가격대가 나왔다. 수도인을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한 달 내내 한 일은 사포질이었다. 손가락이 거꾸로 접힐 것 같은 통증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손을 주무르는 일이 생기곤 했다. 이런 것을 일러 ‘직업병이겠지’하며 같이 일하고 있는 분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묵묵히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이미 달관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포질에 갈려 나온 미세한 먼지로 인해 더운 날씨에도 마스크를 써야 했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수도인의 성향을 인정하기 위해 나의 마음에 새겨둔 말이 있다. ‘1만 2천 도통군자, 수도하는 법은 하나이지만, 1만 2천의 삶은 다르다.’ 나름 옳다고 하는 기준에 상대를 비추어보아 그르다는 답이 나왔을 때,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총무부는 일을 못 한다고 해서 탓한다거나 눈치를 주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도장에서는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행사가 많다. 예를 들면 모내기, 감자 심기, 고구마 심기, 체육대회 등이다. 행사가 원만히 진행되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무부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고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나보다 먼저 종사원의 삶을 시작하고, 내가 동경했던 삶의 길을 걷는 사람들, 이제라도 그 삶에 동참할 수 있어서 마음이 벅차오른다.
<대순회보 2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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