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께서 남기고 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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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양환 작성일2018.07.20 조회4,896회 댓글0건본문
잠실34 방면 선무 최양환
그립고 그리운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외할머니는 항상 건강하고 인내심이 강한 분이셨습니다. 살아오시면서 아프다는 말씀 한번 안 하시고 장교 출신이신 외할아버지의 고약한 성격에도 꿋꿋하게 버티시며 가족을 이끌어가셨습니다. 집안일에는 외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서울에 있는 저도 외할머니께서 고향에서 정성스레 고아주신 사골국과 맛있는 반찬을 먹으며 늘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분이셨지만 외할머니껜 늘 속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외할머니 밑에는 첫째인 저희 어머님을 포함하여 4남매가 있습니다. 제 가족은 화목한 편이지만 다른 형제분들의 집안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혼을 거듭하는 분도 있으셨고 사업이 망해서 돈을 계속 빌려 가는 분도 있으셨고 일을 잘하다가 알코올중독 때문에 일을 그만둬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도 있었습니다.
집안이 흔들리다 보니 사촌 누나들은 결혼하고 나선 연락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워낙 속상한 일들이 많으니 외할머니께선 누구한테라도 기대고 싶으셨을 텐데 늘 돌아오는 것은 고약하신 외할아버지의 불호령과 구박뿐이었습니다. 집안을 대표로 하여 도를 닦는 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혈기왕성한 젊은이였지만 늘 집안의 문제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족하긴 하지만 도를 좀 더 열심히 닦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의 겁액을 잘 풀면 집안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말입니다. 특히 외할머니의 행복한 웃음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푼 마음에 고생스럽긴 했지만 포덕도 하고 잠을 줄여가며 수련도 하며 선각분들의 말씀에 따라 수도를 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수도하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께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어머니께선 담담한 목소리로 외할머니께서 암에 걸리셨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믿기지 않은 소식을 접한 후, 지금껏 도를 닦아왔던 기대감과 희망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상제님께 꼭 나을 수 있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심고를 드렸습니다.
며칠 뒤, 외할머니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외할머니를 뵈러 고향의 병원을 찾았습니다. 외할머니 얼굴을 뵙자, 외할머니께서 웃으시면서 ‘어이구, 우리 손주 왔는가?’ 하시곤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저는 외할머니 품에 안겨서 마음속으로 태을주를 외웠습니다. 외할머니께 도의 기운이 전해져 꼭 나으시기를 기원하면서 태을주를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손주가 오니 힘이 나신다면서 기력을 회복하신 듯 까르르 웃으셨습니다. 저는 꼭 일어나셔서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자며 제가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외할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운을 전해드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외할머니께서 다음 날 퇴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상제님께 감사드린다는 심고를 드리며 퇴원하시면 꼭 음식을 대접해드리리라 생각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아침, 갑작스럽게 외할머니께서 수술한 곳에서 출혈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CT를 찍어서 원인을 살펴보자고 하는데 갑자기 의사가 들어와 출혈이 생각보다 많다며 동맥이나 정맥이 끊어진 것 같다며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외할머니께선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단순 출혈이었지만 의사의 오진으로 수술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선 잦은 수술에 힘이 드셨는지 더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저는 씁쓸하고 슬픈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의사의 오진은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문득 이게 바로 집안의 겁액이 몰아닥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갑작스럽게 겪게 된 이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도를 잘못 닦은 것인가 하는 자책에도 빠지고 ‘수도를 하며 원했던 모습이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 불평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 앉아있는데 저 멀리서 낯익은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연락을 끊고 살았던 사촌 누나였습니다. 옆엔 매형과 그날 처음 본 조카가 있었습니다.
누나는 외할머니 앞에서 인사를 드리며 하염없이 울었고 그렇게 다시 재회하였습니다. 이후로 이혼하고 연락이 안 되었던 외숙모 등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평생 고생만 하다 가신 외할머니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기에 가족 모두가 잘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듯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장례식장을 지키며 그동안 서로에게 서운했고 고마웠던 일들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마음 속에 있던 원을 풀어내는 듯했습니다. 외할머니의 빈자리와 소중함을 크게 느낀 가족들은 외할머니께 못다한 마음을 서로에게 충실함으로써 갚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집안 가족들의 서운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고 서로를 아낌없이 챙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외할머니 속을 많이 썩이던 삼촌에게서 좋은 글귀를 담은 카톡이 매일 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삼촌께 카톡이 왔습니다.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면 무척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집안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그리고 행복하고 소소한 사진들을 보면 타지서 도를 닦고 있는 제게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상제님께 도를 닦아도 좋아지는 게 없다며 불평스러운 마음을 품었었는데 지나고 보니 제가 도를 닦으면서 그토록 염원했던 집안의 화목이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겁액을 풀어내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제님께서도 화복의 이치를 말씀하셨고 외할머니께서 겪으신 화는 우리 집안의 모든 식구를 다시 연결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외할머니께서 살아생전 진심으로 원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이 일을 통해 도를 닦는 것은 겁액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잘 겪어서 풀어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외할머니께선 저희 곁을 떠났지만 화목이라는 큰 선물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던 가족들은 이 일을 통해 많이 반성하고 깨우쳤습니다. 이러한 깨우침을 주기 위해 상제님께선 외할머니를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이젠 서로를 아끼고 챙기는 가족들을 보면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께서도 함박웃음을 짓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비록 외할머니께 맛있는 음식은 못 사드렸지만 도를 열심히 닦아 외할머니께서 꼭 상제님 곁에 편안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순회보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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