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맡기는 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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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위태 작성일2018.08.27 조회5,215회 댓글0건본문
범천21 방면 선감 방위태
“함지사지이후(陷之死地而後)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置之亡地而後)에 존(存)한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음과 같이 복(福)은 곧 복마(伏魔)로 풀이함은 화복(禍福)이란 말과 대등할 것이다.
저는 입도 전에 사업을 하면서 양산에 있는 ‘통도사’라는 절에 다녔습니다. 불교에 심취해 극락세계를 갈망하였지요. 1990년 설날 친정에 온 여동생이 저에게 입도를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혼자 수도생활을 하면서 힘이 들었던 차에 아버지께서 신호를 주셨다며 제가 조상께 정성을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8남매의 맏이인 제가 도를 함께 닦는다면 동생도 힘이 나고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서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해 7월 저는 당시 운영하던 사업의 세금 신고를 위해 세무서를 가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공사 중이던 장소에서 저는 깜빡 졸아 중앙선을 침범했습니다. 그리고 마주 오던 컨테이너 트럭과 부딪혀 제 차가 트럭 밑에 완전히 끼이는 대형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정신을 잃었고 사고가 난 후 20일 만에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죽어야 극락에 간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운전대를 놓았던 것 같습니다. 두 달간 병원생활을 하면서 전도인인 동생이 병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5일 뒤는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고를 당하여 몸이 아팠던 이유로 아버지께 제사도 제대로 못 드린 것이 너무 속상하여 매일 밤 울며 잠들었습니다.
도문(道門)에 들어오다
그날 어떤 꿈을 꿨는데 수많은 군중이 크고 화려한 깃발을 들고 저에게 오면서 “네가 나를 살려주어야 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얼굴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지금 다 죽어가는 처지라 못 살립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잠에서 깼습니다.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니 “언니, 지금은 앉지도 서지도 못하지만, 이제부터 서서 걸어 다닐 수 있게 해 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 저는 집에서 입도치성을 모셨습니다. 몸이 아직 성치 않아 부득이하게 누운 상태로 입도치성을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엉덩이뼈가 전부 으스러져서 누워있기만 했던 저는 입도 후 9일이 지난 뒤 비로소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동생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니 앉을 수 있다면 기도도 모실 수 있겠다면서 전화상으로 태을주(太乙呪)를 알려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앉아서 계속 태을주만 외웠습니다. 주문을 계속 외우니 눈이 밝아지면서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열흘이 지난 뒤에는 비로소 걸을 수도 있게 되었고 그때는 동생이 도통주(道通呪)도 알려주었습니다. 도통주를 외울 때는 너무 신이 나고 입에 자꾸 붙어서 계속해서 외우는 저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즈음 방면 선무가 도장에 치성 모시러 가자며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 치성은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이었는데 저에게는 도장 첫 참배이자 첫 치성이었습니다. 당시 몸이 많이 회복되어 걸을 수도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죽다 살아났기 때문에 두말하지 않고 치성 차에 올랐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의 몸 상태를 알고 제가 치성 모시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다시는 못 일어난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저도 염려되는 마음을 안고 여주본부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청계탑에 서서 심우도가 새겨진 부분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안개가 차분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안개 속에 선녀 한 명이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저인 것처럼 느껴짐과 동시에 참 외로워 보였습니다.
이후 치성을 모시러 영대로 들어갔습니다. 영대 안의 그림들이 저의 눈에 확 들어오면서 순간 ‘여기가 보통 절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성을 모시기 전에는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영대에 서 있는 동안 머리가 매우 맑았을뿐더러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영대배례까지 다 모시고 나서도 몸이 너무 가벼워서 집에 가는 길에는 잠이 하나도 오질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도장에 참배를 갔을 때는 식당에서 나온 국수를 7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옆에서 남편이 그만 먹으라고 말리는 바람에 더 먹지 않고 나왔지만 이렇게나 많이 먹는 저의 모습을 보고 저도 너무 놀람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포덕을 시작하다
첫 치성을 모시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창밖의 가을 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들판의 나락을 보면서 ‘나도 다시 태어났나 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방면 선감에게 가서 “저도 여기서 할 일이 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뒤이어, “저는 이제껏 장사밖에 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하면 됩니까?”라고 물으니 선감께서 ‘포덕’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포덕이 무엇이냐고 묻자 옆에 있던 동생이 “포덕은 상대방을 살려주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포덕을 하면 몸도 낫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첫 포덕을 나갔습니다. 선감께서 ‘포덕은 많이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먼저 철학관을 운영하던 친한 친구에게 갔습니다. 친구는 이미 도통도 알고 미륵불도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입도를 한다면 제 몸이 낫는다는 말을 하니 두말하지 않고 입도했지만, 대순진리회에 가면 큰일이 난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다녔던 절의 주지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정말 대순진리회가 가선 안 될 곳인지 여쭤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순진리회의 배례법에 대해 알려드리니 스님께서는 저의 법명을 다정히 불러주시면서 대순진리회를 열심히 믿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치성 때 심우도(尋牛圖)와 선녀를 본 것이 저에게는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 뒤로 수도하는 데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도장에 특수수련을 가다
당시 저의 남편은 중학생 때 감전 사고를 당하여 한쪽 시력이 나쁘고 몸도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남편이 도장에 특수수련을 다녀왔는데 몸의 안 좋은 부분들이 싹 나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특수수련에 들어가 사고로 다쳤던 다리를 나아서 왔습니다. 도장을 나올 때 당분간은 씻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저 또한 신기하고 수련한 것이 아깝기도 하여 8일간 씻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포덕이 정말 잘 되어서 매일매일이 신기했습니다.
특수수련을 받고 나온 8일째 비로소 목욕을 했는데 다시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상태로 결혼 전에 잠시 일을 해 주던 집에 포덕을 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데 그때 시간이 새벽 2시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대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어서 저는 남편에게 심하게 맞았습니다. 그 때문에 사고로 꿰맨 턱이 다시 터져 방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편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말만 반복했고 저는 선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터진 턱이 다시 붙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으며 전화기 너머로 방면 선감께서 저에게 하는 말 중에서 “그래도 남편은 미워하지 말고...”라는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몰랐지? 너 오늘 큰일 했다. 잘 견뎠다. 넌 오늘 불로초를 먹었다. 너는 많은 불로초를 먹어야 한다.’는 말도 들렸습니다.
다음 날 순간적으로 그 불로초가 바로 녹명지를 올리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초로 불’이 ‘불로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후 몸의 아픈 기운이 싹 가시면서 남편이 매우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 뒤로는 남편이 심한 말을 해도 그대로 믿지 않고, 임원이 어떤 것을 시켜도 토를 달지 않았으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포덕을 하는 것도 내 몸을 빌려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이나 마음은 내가 먹어야 한다.’라는 깨달음도 왔습니다. 그때의 깨달음으로 인해 그달에 포덕을 72호나 했습니다.
제가 51세가 되던 해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자궁에 혹이 너무 커져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길로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는데 자궁암이라는 판정과 함께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곧바로 수술 날을 잡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았는데, 예전에 겪었던 교통사고가 떠오르면서 이번 수술에서 마취를 하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지 않고 토성도장 연수를 갔습니다. 자궁에 종양이 많이 커져서 배가 부풀어 오른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6번이나 연수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 연수 때 울산바위에 올라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15분간 대성통곡을 하니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무언가 나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 내가 살아온 힘든 과정들을 몸이 다 받아서 이렇게 암까지 생겼지만, 상제님을 굳게 믿고 나아가니 이제껏 지녀왔던 큰 겁액 하나가 나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는 의통의 시대라서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말고 일심을 가지고 수도하면 몸이 아파서 오는 겁액을 분명히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일꾼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살려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수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포덕을 할 때 나의 마음가짐
포덕을 하면서 저는 저희 집안의 대표로 왔기 때문에 항상 집안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상 신명 누군가가 저를 보필해 주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사고로 저의 몸이 아프고 외부 일로 힘이 들 때면 “바람도 불다가 그치나니 남의 시비를 잘 이기라. 동정에 때가 있나니 걷힐 때는 흔적도 없이 걷히나니라”(교법 1장 28절)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또 “상제께서 정미년 정월에 형렬에게 가라사대 ‘나의 말이 곧 약이라.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기도 하며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거슬리게도 하며 말로써 병든 자를 일으키기도 하며 말로써 죄에 걸린 자를 풀어주기도 하니 이것은 나의 말이 곧 약인 까닭이니라. 충언이 역이로되 이어행(忠言逆耳利於行)이라. 나는 허망한 말을 아니 하나니 내 말을 믿으라.’ 하셨도다.”(교법 2장 1절)라는 말씀도 항상 되뇌고 있습니다.
포덕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므로 뜻을 확실히 세우고 있으면 누군가가 도와줍니다. 그것을 분명히 믿고 하면 이뤄집니다. 입도 전 저는 장사로 10년 만에 부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포덕도 『전경』을 많이 보고 어떻게 하면 포덕을 잘할 지에 대한 연구를 항상 했습니다. 저는 특히 『전경』의 「교법」을 많이 읽었습니다. 교법이란 다른 종교에서 말하자면 설법 또는 설교에 해당합니다. 도덕적 사항과 종교적인 계율에 대한 말씀의 기록인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바른 마음만 먹고 있으면 신명이 다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사람이 주인공이고 사람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계는 잠이 들지만, 사람의 정신은 깨닫고 느낀 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상제님을 믿고 마음을 바르게 가져 많은 이들을 포덕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순회보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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