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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푸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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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윤정 작성일2018.08.28 조회5,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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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30 방면 선사 허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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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닦게 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 변화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외형보다 내면이나 본질이 바뀔 때 ‘새롭게 바뀐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 내용을 『전경』에서 찾아보면, 상제님께서는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교법 3장 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히 업이 풀리는 개념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입도하기 전 저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운명을 비관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원하고 열망하던 것들이 연이어 실패로 돌아가면서 끝없는 원망과 좌절감 속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부정적인 마음 탓인지 인간관계는 계속 꼬이고 몸도 망가져 갔습니다. 저는 그 원인을 제가 운이 없고 주변에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절 도와주지 않는 세상까지도 원망했습니다.

 

입도하던 그 시점에 저는 제 삶을 너무나도 바꾸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저를 도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선각을 따라 연락소에 와서 교화를 듣는데, 여러 교화 내용 중 단 한 가지 내용만 귀에 들어왔습니다. 선각분들은 대순진리의 수도가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얻어 후에 운수를 받는 공부이기에 자신의 마음과 성격을 바꾸어야 운명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는 도가 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만 보였습니다.

 

선각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운명을 바꾸고 싶은데 그게 정말 가능하냐고… 선각자께서는 도를 닦으면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단순히 공덕을 쌓아 업을 푸는 개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도생활은 제가 이제까지 알았던 사회생활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사회에서는 남보다 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지만, 도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고 도리와 예법에 맞춰 행동했습니다. 선각 분들에게 대하는 태도만 하더라도 사회에서 직장상사를 대하는 태도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누구에게나 겉치레가 아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하고, 예를 다해야 했기에 녹록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도에서의 생활방식이 잘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온 사람인양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마음 한편에는 늘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공덕을 쌓고 업을 풀어서 잘 살고 싶은 것인데, 남을 위해 마음을 쓰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나부터 잘되고 난 이후에 남을 돕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일 것인데,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돕는다는 사상의 본질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수도생활 초기에는 남을 잘되게 하기 위한 마음보다 나부터 잘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정말 남을 잘되게 하고 덕을 행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나부터 잘되고자 공덕을 쌓는 격이었으니 그것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진정한 수도도 진정한 공덕도 아니었습니다.

 

포덕을 하면서도 저의 그런 면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에게 대순진리를 전하면서 정말 남을 잘 되게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저는 저부터 잘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였으니 생각과 달리 포덕사업이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저에겐 도를 닦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했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사업을 하고 공덕을 쌓았습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팠던 몸도, 예민하고 소심했던 성격도 나아지고 제가 처했던 상황도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좋아질 수 있냐”며 대순진리 수도가 정말 놀랍다고 했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마음에서는 더 욕심이 생겼고 그럴수록 마음은 더 메마르고 공허해졌습니다. 그러자 선각분들은 더 열심히 마음공부에 힘쓰라고 하셨지만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 커서 그런 것이라고 오히려 반박하며 부끄러운 마음을 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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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를 성·경·신을 다해 진심으로 수도하는 수도인으로 아는데 막상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후각들에게 도를 얘기하며 교화했지만, 막상 저는 그것을 구하지 않으니 마음속의 괴리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교화를 하고 나면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마치 도인 흉내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씁쓸했습니다.

‘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마음을 바꿀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이렇게 근본이 잘못된 사업은 어느 때인가부터 삐거덕거리며 점점 내림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후각들의 마음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이제까지 묵혀져 있는 문제들이 하나씩 불거졌습니다. 후각들은 다 각자의 이유로 도를 닦고 있었고, 진짜 도를 받아들이고 도를 닦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비어있는 사업은 모래성같이 순식간에 허물어졌습니다. 정말 후각은 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하듯 후각들은 저의 마음을 그대로 닮아있었습니다. 후각들은 도를 느끼지 못했고 그만큼 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후각들이 떠나고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이 시기가 저에게는 갈림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각분들은 제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하니 사업이 잘될 리가 있냐며 이젠 정말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너무나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한 후각과 같이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후각들과 같이 사업을 해온 적이 많았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이제까지 후각들을 잘 이끌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었던 터라 이 후각만큼은 잘되게 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후각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이 부족한 걸 알았기에 신명전에 어떤 마음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매일같이 답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성심껏 했으나 사업은 잘되지 않고 도무지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저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젠 저의 근본적인 마음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신명전에서 이제는 나의 잘못된 마음가짐부터 바꾸라고 이런 상황을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바꾼다는 것. 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바꾸자면 과거로부터 맺혀있던 제 마음을 다 풀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외면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제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했던 걸까? 저는 제가 받지 못한 것,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제 과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난 불행한 사람일까?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니 저는 받은 것도 있고 받지 못한 것도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평범할 수도 있는 인생을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걸까? 그 답은 바로 욕심에 있었습니다. 욕심이란 것이 제 삶을 비관적으로 불행하게 묘사해 버렸습니다. TV 방송에서 편집에 따라 한 사람이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표현되듯 전 매 순간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욕심은 제가 가진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못 받은 것에 대해서만 억울하게 느끼도록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저만의 해석으로 살아왔다니….

하지만 마음을 알게 된 것과 바꾸는 것은 또 달랐습니다. 마음을 바꾸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너무 막막했습니다. 제가 불러들인 욕심은 제 마음에 딱 버티고 앉아 절대 나갈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곤두박질쳤습니다. ‘내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마음에 사업의 사활이 걸려있기에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만 바라보고 있는 후각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전경』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교법 3장 4절)라는 상제님의 말씀. 마음을 저 혼자 풀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상제님과 신명전에 매달리고 또 매달렸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바꾸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모든 것이 잘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심고 드렸습니다. 선각분들은 일단 남에게 마음을 쓰는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포덕사업을 할 때 매사에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경』 교법에 나온 말씀을 실천하고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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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정성으로 심고 드리며 수도생활을 하자 신기하게도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저의 고질적인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욕심과 집착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절대 떼어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마음인데 그것이 변화하는 걸 보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문득 욕심과 집착이 올라오다가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많이 쓰고 나면 그 마음들이 빠져나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신명께서 사람의 몸속을 드나들어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신다는 그 말씀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욕심이 나간 빈자리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다른 마음들이 들어왔습니다.

 

이제까지 받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 불평과 불만 뒤에 가려져 몰랐던 감사함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받지 못한 것만 바라보다 보니 제가 받았던 많은 것들을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감사한 것을 진정 감사한 것인지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왜 그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욕심이 많으니 무언가를 가져도 늘 만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져야만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마음에서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찾던 제 운명에 대한 답은 바로 “마음”에 있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감사함을 느끼니 많은 것이 달라짐을 느낍니다. 평생 저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전에 제 모습을 봅니다. 상제님께서 병세문에 이 세상이 다 무도병에 걸렸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무도병에 걸려 오랜 시간을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이제껏 욕심으로 눈과 귀가 가려져 도를 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조금씩 도가 보입니다. 포덕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가 올바른 수도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저의 욕심을 비우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제 마음에 도를 심어야 할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상제님의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 후천선경 건설의 대업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상제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열심히 수도하겠습니다.

 

 

<대순회보 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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