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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심고(心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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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경숙 작성일2018.06.13 조회5,1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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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방면 교정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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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24살[1994]에 입도(入道)하여 1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꿈에서 한 사건과 관련된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그 꿈은 95년 4월에 일어난 실제 사건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95년 4월이면 대학생들이 한창 MT 가는 시기이다. 나에게도 대학생이자 집안의 막내인 남동생이 있다. 방면에서 수도생활에 전념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막내 남동생이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 당시만 하더라도 가족들은 내가 수도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동생의 사고 소식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생의 사고 소식을 바로 전해 듣지 못했지만, 나는 집안에 큰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당시 나는 방면 회실(會室)에서 생활했는데, 꿈에서 남동생이 찾아온 것이다. 꿈의 내용은 이러하다.

 

꿈속에서 남동생은 방면 회실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방면에서 같이 생활하시는 분이 1층으로 내려가 “어떻게 왔어요? 누구 찾아왔나요?” 하고 물어보니 남동생은 “누나 찾아왔어요.”하고 말했다. “누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으니 동생은 “박경숙입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그분은 남동생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곧장 3층으로 올라와 “박 내수요. 1층에 동생이 왔어요. 내려가 보세요.”라고 전해주셨다. 회의실 3층에서 일을 하다가 동생이 찾아왔다는 말에 나는 “동생이요. 동생은 내가 여기 있는 걸 모르는데요.”라고 말했더니, 그분이 박 내수 이름을 정확히 말했다면서 내려가 보라고 하셨다. 나는 동생이 왔다는 말에 한달음에 1층 입구로 달려갔다. 정말로 남동생이 서 있었다. “네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니? 어떻게 왔어? 무슨 일이야?” 하고 연거푸 쉬지도 않고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동생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누나 나 살려줘.”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동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나는 잠에서 깨며 꿈 내용이 심상치 않아 바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이 그제야 나에게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사고가 난 지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동생에게는 왜 빨리 알려주지 않았냐며 원망하는 말까지 했다. 그러자 여동생은 “언니가 알면 뭐가 달라져?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잘 하지 않으면서….” 동생은 그간의 서운한 마음을 하소연하듯 쏟아부었다. 나는 여동생의 마음을 달랜 후 남동생의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물었다.

     

남동생이 MT 갔다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타고 있던 봉고차가 전봇대와 추돌했다고 한다. 운전자가 음주 상태에서 학생들까지 태우고 운전을 한 것이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취중 운전이니 정신이 혼미했을 터, 길가의 전봇대를 심하게 들이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운전자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가벼운 타박상으로 치료를 받고 끝났지만, 남동생은 팔과 갈비뼈가 부러지고 장까지 파열되었다고 한다. 사고 직후 동생을 급히 병원으로 옮겨 수술했지만, 남동생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여동생을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 가족들은 간호하며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제야 남동생이 내 꿈에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왜 ‘살려달라’고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금방이라도 숨이 멈춰버릴 것처럼 가슴이 저며왔다. 그리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막내 남동생의 사고 소식에 부모님 모습이 먼저 떠오른 것은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먼저 간 오빠 때문이었다.

 

나는 10형제 중 여덟째인데, 위로 일곱 명의 형제가 더 있다. 10형제 중에서 둘째가 맏아들인 첫째 오빠였다. 부모님께서는 맏아들을 잃고 오랜 세월을 힘들어하셨고, 지금도 오빠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 몰래 눈물을 훔치신다. 긴 세월 동안 나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오롯이 그 고통을 견뎌온 부모님의 삶을 보며 자라왔다. 만약 불의의 사고로 막내아들까지 먼저 보낸다면 자식 잃는 고통을 두 번이나 겪어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막내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그 고통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오는 것 같았다. 나는 동생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순간 꿈에 찾아온 남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그 말을 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급히 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이 굳어졌다. 서둘러 선각과 방면 선감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곧장 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남동생은 포항의 선린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포항으로 가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양위 상제님, 천지신명님, 조상님 제발 살려주세요’. 가는 동안 계속해서 심고를 드렸다. 마르지 않는 눈물을 훔치며 그렇게 남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그리 길게 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에 잠이 깼다. 그것도 똑같은 단어 세 마디였다. 그 단어는 바로 ‘請都典(청도전)’이었다. 남자의 굵직한 음성이 내 귀에 아주 선명하게 ‘청도전, 청도전, 청도전’하며 울려 퍼지듯 들렸다. 귀에 들려오는 남자분의 음성은 지금도 생생하다. 마치 뇌리에 각인되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너무나도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놀라 울다 지쳐 잠든 내가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나는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나는 그 의미를 ‘도전님께 청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 후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도전님 전에 청하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일심(一心)으로 간절하게 심고 드렸다. ‘도전님 제발 제 동생 살려주세요. 꼭 살려주세요, 살려주셔야 합니다. 꼭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똑같은 단어, 똑같은 문장을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외며 심고 드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도전님 전에 청해서 동생이 살 수 있다면 나는 수백 번 수만 번 아니 입술이 닳아 없어져도 청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습관처럼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포항까지 갔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확신에 차 있었다.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고, 중환자실 면회시간을 기다려 면회를 하려는데, 엄마는 나보고 뭐하러 들어가냐면서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사코 만류하셨다. 난 엄마의 만류에도 동생을 꼭 봐야겠다는 일념에 중환자실 면회를 신청했다. 면회는 가족 모두가 같이 들어갈 수 없기에 나 혼자서 들어갔다. 중환자실로 들어서자 누워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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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은 키가 장신인데, 큰 사람이 아파 누워있으니 더 애처롭게 보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가끔 정신이 깰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있다가 눈만 깜박이는 걸 두어 번 하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고 한다. 어떤 때는 고통에 못 이겨 몸부림을 심하게 치는데 워낙 거구인 데다 힘이 강해서 침대가 뒤집힐 것 같을 때도 있고 팔을 휘두르다 의료기구에 부딪쳐 넘어지기도 했다고 간호사분이 말해 주었다. 그래서 사지를 모두 묶어 놓은 상태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랬을까? 나는 길지 않은 면회시간에 마음이 더 바빠졌다. 나는 곧장 동생의 손을 잡고 도전님 전에 심고 드렸다. ‘이 아이가 제 동생입니다. 이 아이를 꼭 살려주세요. 저희 부모님이 두 번이나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지 않도록 해 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리고 태을주를 외웠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성을 다해 일심으로 심고드렸다. 그렇게 나는 도전님 전에 간절하게 심고 드린 후 태을주를 외우고 밖으로 나왔다.

 

중환자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아팠다. 얼마 동안 가족들과 같이 머무르면서 동생의 경과를 지켜보다가 일이 있어 나는 다시 수원으로 올라왔다. 동생을 면회하고 난 뒤로는 평소에도 더 열심히 마음을 다해 도전님 전에 간절하게 심고 드렸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어느 날 동생이 정신을 회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막내 남동생이 드디어 깨어났다는 것이다. 난 너무나도 기뻤다. 그렇게 의식을 회복한 동생은 1주일 정도 중환자실에 머물다가 일반병실로 옮겼다. 나는 동생이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직접 동생과 통화를 했고, 동생에게 고생했다며 몸 관리 잘하라고 동생의 놀란 마음을 다독였다. 동생과 전화통화 후 나는 감사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모를 것이다.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동생도 모를 것이다. 왜, 현재의 기억에는 없으니까. 꿈에 나를 찾아와서 ‘누나 살려줘.’ 했다는 것을 본인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기억을 못 해도 좋고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나는 동생의 회복이 단지 의술로써 되찾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극한 정성을 담은 간절한 심고의 감응이자 도전님의 덕화라고 여겨진다. 이 세상에 그만한 은혜가 어디 있으랴?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앞으로는 더 정성을 다해 도(道)의 진리를 만방에 펴는 수도인이 될 것이다.

 

 

<대순회보 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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