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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을 극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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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송배 작성일2018.06.21 조회5,2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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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15 방면 보정 김송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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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경위

 

입도 전 저는 부산에서 14명의 직원과 함께 신발 재단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1987년 여름. 어느 날 하루는 오래전부터 알고지내 형제처럼 우애가 돈독했던 친구가 날도 더운데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일터로 찾아왔습니다. 하루 일을 마무리할 때쯤 편한 차림으로 찾아와 저녁을 같이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그날도 저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친구는 대순진리를 신앙하고 있었는데, 술 한잔 하자고 찾아온 친구는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니 내가 신앙하는 대순진리 알제? 일전에 니가 한말 기억나나? 내가 하는거 보니까 이상한 종교는 아닌 것 같다고 시간되면 한 번 들어나보자고 했제? 듣고 괜찮으면 니도 한 번 믿어보고 싶다고. 이 참에 니도 나하고 같이 하자. 니 생각은 어떻노?”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친구의 말에 잠시 주저했지만 저는 친구따라 강남가는 셈치고 한 번 가보자는 요량으로 친구를 따라 나섰습니다. “아! 맞다. 오늘 술은 전통주다.”

 

그렇게 친구를 따라 간 곳은 연산동이었는데, 사실 그 건물의 5층에 나이트클럽이 있어서 지금까지 친구 말은 농담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함께 들어선 곳은 그 건물의 4층에 소재한 방면 회실이라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방면 임원이라는 분이 대순진리회라는 단체와 신앙의 대상과 훈회·수칙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뭐가 뭔지 알지 못했지만, 남을 잘되게 한다는 것과 상생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것도 인연이라 싶어 친구와 함께 입도식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입도식을 하기 위해 친구가 건네주는 한복을 차려입고 두루마기까지 걸쳐 입었습니다.

 

한복을 갈아입고 입도식 절차에 필요한 기본적인 배례법을 숙지하고 입도식을 올렸습니다. ‘배’, ‘흥’ 소리에 맞춰 배례를 드리고 입도식을 마친 후, 친구는 나에게 아까 말한 전통주 한잔해야지 하며 멋쩍게 웃음을 지었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입도를 한 것인데, 음복주가 바로 친구가 말한 술이라고 해서 음복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두 달 후 친구가 저에게 와서 “성(誠) 좀 모셔봐. 지난번에 입도식 한 거 있지? 도문에 들어와서 수도를 하면 한 달에 한 번 성을 모셔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이상한 소리로 치부했는데, 친구가 자꾸 귀찮게 하니까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 원을 모셨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성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해 성을 모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 입도식때 뵈었던 방면 선감이라는 분이 제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선감께서는 저에게 교화를 해주기 위해 들렀다고 말씀하시고는 대순진리에 대한 교화를 해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저를 위해 교화 해주시는 선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예의상 잘 대해 드렸습니다. 선감께서는 열심히 칠판에 판서까지 해가며 교화해주셨지만, 졸음이 밀려와 가끔 졸기도 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맑은 정신으로 다시 들었지만 초심자인 저로서는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선감께서 해주신 교화는 정확히 뭔지 몰라도 뜻이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1년 늦게 태어난 셈 치고, 1년만 나하고 제대로 수도 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친구를 믿었기 때문에 ‘1년간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자.’라는 생각으로 운영하던 공장을 처남에게 넘기고 수도를 시작했습니다. 1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습니다. 그때 처남은 공장을 접었습니다. 공장 처분 값으로 470만 원을 받았는데 제가 소주 값하게 돈 좀 달라고 하니 30만 원을 주었습니다. 그즈음 친구가 “몇 년 더 하자. 더 하다가 보면 좋은 날이 올거다.”라는 말을 하기에 ‘그냥 가는 한 세월 한번 따라가 보자.’ 하는 마음에 수도했고 그 세월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대장암에 걸리다

 

2011년에 저는 대장암 4기 초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변비가 와서 화장실에 가기 무서울 정도로 변이 딱딱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병원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두 달 뒤에는 변이 또 설사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혼자 생각으로 ‘아, 병이 나았구나.’ 했는데 이것이 대장암의 시초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은 요금소를 지나 타이어를 현대자동차 양산지점에 배송해 주러 가는 길에 눈앞의 고속도로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으로 본 장면을 떠올리며 감각 하나만으로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누워서 ‘무슨 일인지 몰라도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냥 죽는다. 일단 업무 완수를 해야 하는데….’라는 걱정에 상제님께 심고를 드렸습니다. 상제님께 ‘제가 맡은 일을 잘 마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심고를 드리고 눈을 뜨니 그제야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업무는 완수할 수 있었고 ‘아! 별거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일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에는 왼쪽 옆구리에서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올 때도 있었고, 개미나 곤충이 갉아먹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오진으로 병을 키우다

 

첫 번째 방문한 병원에서는 의사가 ‘대장암’을 ‘대장염’으로 오진하여 며칠간 약을 먹는 처방만 내렸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종합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는 얼마 전 대장 내시경을 했기 때문에 다시 하면 대장이 손상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저는 괜찮다고 말하며 내시경검사를 부탁했습니다. 검사를 마친 선생님은 “3일 전에 내시경 하셨다면서요? 이건 발견이 안 될 수가 없는데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자린데 어떻게 이걸 지나갔을까요?”라고 저에게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으로 막힌 자리가 끝부분인 줄 알고 내시경을 그냥 뺐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내 담당 의사가 “여기서 수술이 가능하지만, 선택은 본인이 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죽마고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하니 “우리 아버님이 부산 백병원에서 대장암 치료를 하셨는데 호전반응이 너무 좋아서 거의 완쾌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기가 추천해 주는 병원에서 치료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의 몸무게는 42kg까지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평상시 76kg 정도 나갔는데 34kg나 빠진 것입니다.

 

 

건강이 돌아오다

 

저는 수술 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산에 올랐습니다. 거기서 상제님께 건강을 되찾게 해달라고 정성껏 심고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몸이 개운한 느낌이 들어서 한의원에 갔더니 이제는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몸무게도 56kg으로 늘었습니다. 병을 발견한지 4년 만에 완쾌가 되었습니다. 암에 걸린 후에 남달리 쾌유가 빠르고 먹은 모든 음식이 약이 되었다고 믿는 이유는 ‘상제님의 큰 기운으로 내가 오늘날까지 왔구나. 나를 아직 쓰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대장암을 극복하기 위해서 태을주(太乙呪)를 많이 읽었습니다. 평소에는 개의치 않아 하던 행동이라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정입니다. ‘제가 어차피 죽을 것 같으면 자는 잠에 소리 소문 없이 갈 수 있도록 살펴주십시오.’라고 심고를 드리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으려고 잠들 때까지 태을주를 외우고 잤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하늘에서 보시고 ‘저놈이 살고자 하는구나. 저 사람을 더 써야겠구나.’라는 생각에 저를 살려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암을 극복한 데에는 상제님의 덕화가 크지만,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먹고 믿음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믿으면서 상제님의 임의에 맡기고 살아가는 자세가 참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물론 임원 분들께서도 저에게 기운을 많이 북돋워주셨고, 수반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그런 감사한 마음으로 ‘이번에 몸이 나으면 더 열심히 수도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하니 저에게 오늘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심·안신으로 몸과 마음을 바로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며 과부족을 반성하니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성사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상제님께서는 말뚝이라도 기운을 붙여 쓰신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상제님께서 저에게 진정한 인간이 될 기회를 주셔서 쓰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제님의 뜻을 알고 정성껏 기도를 모시고 마음 공부와 수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느낀 점은 도인들은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반들에게도 겸허한 자세로 대해야 하고 수반들이 올라오면 모두 존대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아랫사람에게는 배려하고 윗사람도 존경하면서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수도를 하고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을 일심(一心)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목적한 도통진경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대순회보 1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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