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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분 작업을 다녀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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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염장선 작성일2018.12.10 조회3,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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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14 방면 보정 염장선


  지난 2월초 약 20여 일간 경주 안강에 가서 노인복지시설에 쓸 소나무 이백여 그루의 분 작업을 하게 되었다. 담당 종사원 한 명과 방면 외수 10여 명, 그리고 외부에서 불러온 기술자 8~9명 정도가 같이 하게 됐다. 기술자들은 전문적으로 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크고 좋은 소나무를 맡아서 하고 그밖의 소나무들은 우리가 맡아서 하게 됐다. 나는 우리 도에서 기른 소나무를 가지고 직접 분을 만들어 온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사회사람 소유의 소나무로 분을 만들어 오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잘해서 갈지는 미지수였기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침 7시경에 주유소 앞에 모여 인원 점검을 하고 안강으로 출발했다. 그곳 지리를 잘 모르지만 종사원과 통화하면서 길을 물어 드디어 세 시간 정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안강은 포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낯선 곳이었지만 현장 주변에 기와집들이 있기에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은 창녕 조씨(氏) 문중 재실이 있는 곳이었다. 


  벌써 현장은 작업 중이었다. 기술자들이 작업 해놓은 곳을 가보니 땅에 진흙이 굳어서 된 이판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의 요령도 모르는데 돌과 한판 씨름할 것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반대편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일을 잘 못하는 우리들을 위한 종사원의 배려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도인으로서 어떤 일이든 자신에게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서 이루어 나가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일의 수월한 정도를 따지고 있으니 수반이었을 때의 도심과 사뭇 다른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수반들을 잘 인솔하고 솔선수범해서 일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시작부터 불성실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반성하고 앞으로 어떤 상황과 일이 나에게 주어진다 해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일처리를 해 나가자고 마음을 다지며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은 사라지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일이 진행되어 갔다. 


  이쪽 토양이 단단하긴 했지만 반대편 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우리는 세 팀으로 나누어서 일을 해 나갔다. 나는 분을 다듬는 것을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어서 분의 크기를 적당하게 조절하지 못했다. 분모양이 다 됐는가 싶어서 다른 나무로 옮겨 작업을 하면 다른 외수가 내가 분을 만든 나무 밑동을 더 깎아 다듬곤 했다. 초반에는 소나무 분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았다. 결속선 엮는 팀이 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불평 없이 다들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쉼 없이 곡괭이질을 해나갔지만 서서히 팔도 무거워지고 숨도 차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한숨 돌리며 옆에서 일하는 외수들의 모습을 잠시 쳐다보았다. 역시 나보다는 능숙하게 잘 하고 있었다. 작업은 계속됐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마칠 때가 됐다. 우리는 주변 정리를 하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현장에서 20여 분 걸리는 안강읍 내에 있는 모텔 중 하나였다. 숙소가 도장이 아닌 만큼 신경이 쓰였다. 주의 사항 몇 가지를 일러 주고 각자 정해진 숙소로 들어갔다. 나는 같이 방을 쓰게 된 외수들에게 한 시간 정도 도담(道談)을 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니 대다수 외수들이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았다. 잠자리가 바뀐 탓이었으리라. 


  둘째 날 현장에서의 작업은 어제보다 두 배 정도의 일을 해냈다. 처음의 우려와는 다르게 앞으로 잘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종사원이 곡괭이질 시범을 보여줬다. 아주 익숙하게 분의 모양을 만들어갔다. 나는 그것을 유심히 보며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옆에 있는 소나무를 분 작업해 들어갔다. 시간이 많이 단축되고 속도도 붙었다. 불필요한 괭이질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낮에 어떤 화물기사 한 분이 조금 나은 숙소를 소개해줘서 옮기게 됐다. 일을 마치고 가보니 일층은 식당이고 이층에 방이 세 개 있었다. 거실도 크고 세탁기도 쓸 수 있어 다들 흡족해 했다. 빨래가 해결되서 일거리가 줄어 작업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진행된 지 5일 정도 지난 후에야 초빙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는 반대쪽의 현장으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크고 멋있는 나무들이 여러 그루 분이 떠진 채 상차(上車)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변을 둘러보니 암반같이 보이는 돌덩어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에는 포클레인으로 내리 찍어도 깨지지 않는 암반층도 있었다. 그런 곳은 직접 곡괭이로 해결을 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돌에 결이 나 있어 그 결을 따라 때리니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을 뜰 수 있는 모양이 되어 있었다. 


  어떤 외수는 곡괭이질이 힘에 부쳐 보여 다른 팀으로 옮기게 해주기도 했다. 잘 깨지지도 않으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수들을 심신의 상태에 따라서 맡은 부분을 이리 저리 옮겨 주며 일을 하게 했다. 좀 어수선해 보이기는 했지만 다른 종류의 작업을 한 번씩은 하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한 번은 결속선 엮을 때 다 같이 했는데 열아홉 개 정도를 하루에 완성시켰다. 다들 놀랐다. 분의 크기가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화합으로 해나가니 마음먹은 작업량이 이루어진 것 같다. 


  참 먹는 시간에 초빙 기술자들과 마주했다. 우리는 주인이 손님 대하듯이 친절하게 그들을 대했다. 매일 보는 우리의 모습이 힘들어 하지 않는 것 같고 다들 밝아 보이니 신선하고 좋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곳 재실 관리하는 분은 우리가 보는 경전을 보고 싶다 해서 우리 중 한 명이 『전경』을 몇 일 빌려주기도 했다. 그분은 안강의 주민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이란다. 지금은 처와 자식을 부양하기에 수도의 길을 가기 어렵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말하기도 했다. 


  한편 소나무가 노인복지시설로 갈 차에 상차되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상차할 때 나무에 대한 평가가 안 좋았었나 보다. 상차 비용이나 나무 값에 비해서 질이 떨어진 것 같았던지 육안으로 보기에 쭉 뻗고 가지가 별로 없는 나무는 올리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나는 속으로 ‘상차 안 될 소나무들도 복지관에 가려고 그동안 많은 시간을 기다렸을 텐데 마지막에 못 간다는 말을 접했을 때 가슴 아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차마 종사원에게 이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사원은 경제적인 수치가 안 맞는다며 다른 나무로 교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나무를 처분하려고 추진했으나 진행이 잘 되지 않았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었으나 확답을 주지 않고 질질 끌기만 했다. 그러나 그때쯤 해서 연락이 왔는데, 볼품없어 보였던 소나무가 복지관에 직접 심어 보니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셨나 보다. 그래서 처분하려 했던 나머지 나무들도 무사히 복지관에 가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주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무들도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보였다. 약속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지만 비록 미물에 대한 언급일지라도 신중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황희 정승이 어느 농부가 부리는 소에 대한 이야기를 귓속말로 한 일화가 있듯이 말이다. 


  작업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작업 마무리를 며칠 앞두고 두세 명이 개인 사정으로 먼저 올라가게 되었다. 나머지 7~8 명만이 마무리를 하는 데 왠지 일이 느슨해지는 듯했다. 주의 사항도 알려주고 마무리를 할 때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도 주지시켜 주었다. 각 방면 임원분들이 좀 걱정을 하셨을 것이다. 조경업자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분이 넘어져서 깔리거나 나무가 쓰러져서 얻어맞거나 하는 등의 안전사고가 가끔 일어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하던 도중 몇 번의 위험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소나무가 넘어지지 않게 바를 이용해 나무끼리 밧줄로 묶어 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강한 바람에 풀려 15m가량의 소나무가 바로 옆에 작업 중이던 한 외수쪽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살짝 빗겨나가 그 외수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다. 또 하루는 한 외수가 체인 톱으로 소나무를 자르고 있었는데, 체인톱이 소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본 다른 외수가 다가가 같이 뽑는 것을 도왔는데, 그때 그 톱이 외수들 얼굴 쪽으로 튕겨 나온 것이다. 소식을 듣고 뛰어 가보니 다행히 아랫니가 약간 깨졌을 뿐 다른 외상은 전혀 없었다. 이처럼 몇 번의 위험이 있었으나 상제님의 덕화가 늘 곁에 있었기에 다행히 사고가 나지는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드디어 작업을 큰 사고 없이 정리하고 다들 방면에 복귀하게 되었다. 종사원분과 지시에 잘 따라주었던 외수들이 고맙게 여겨졌다. 부족하지만 불미스러운 일 없이 조용히 마칠 수 있었다. 


  사람도 지역을 달리하며 살면 풍토병이라는 것이 있듯이 나무들도 옮겨 심어지면 병들거나 죽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특히 소나무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소나무들은 워낙 척박한 환경에서 살다 보니 다른 소나무와 달리 굵은 뿌리가 거의 없고 잔뿌리들이 많아서 분 뜨는 것에 큰 영향을 안 받고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성현 분들이나 역사적으로 훌륭했던 분들은 대개가 어려운 역경을 스스로 의연하게 대처하고 극복해서 세상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고 열악한 환경은 부정의 의미가 아니고 강한 긍정의 의미로 작용할 것이다. 상제님께서 언급하신 맹자의 한 구절처럼 하늘의 쓰임이 될 사람은 반드시 겪고 넘어야 할 과정이 있듯이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군자와 같이 의연하게 자라서 우리에게 늘 신선함으로 보답하는 소나무와 같이 살아가는 것 또한 수도인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순회보> 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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