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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의 씨앗이 된 지리산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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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현 작성일2019.12.15 조회3,7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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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2 방면 정리 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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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은 삼신산의 하나로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있는 1,915m의 웅장한 민족의 영산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10년 전부터 가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하던 산입니다.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시청자 중 40%가 4~50대 남자들이랍니다. 깨끗한 집에서 편리한 화장실과 주방을 쓰며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사는 것보다 내가 손질한 집, 궁색해 보이는 생활, 키우는 푸성귀로 밥을 먹어도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게 요즘 중년 남자들의 로망인가 봅니다. 먹고 살기에 너무 힘든 세상에서 처자식을 위해 치열하게 살며, 지치고, 상처받은 아버지들이 자연인이 되고픈 마음이 이해될 것도 같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77세로, 15년 전에 평생 몸담았던 회사 회장한테 배신당하고 소송까지 당해 매달 재판하기를 여러 해, 인간관계가 힘드셨나 봅니다. 그래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지방으로, 농장으로, 몸 쓰는 일을 하시며, 마음은 지리산의 꿈을 꾸셨던 것 같습니다.

 

  작년, 정초에 저는 회관 종사원 생활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천주교를 절실하게 믿으시는 어머니께서 뜬금없이 올해 운세를 좀 봐달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수도하는 저를 역술인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점도 좋아하시고 입도 치성 얘기를 드렸을 때 할 마음도 있으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께 집에서 당장 쫓겨날 줄 알라고 엄포를 놓으셔서 몇 년째 눈치만 보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일인가 했더니, 9월에 아버지가 퇴직하시면 지리산으로 터전을 옮길 계획이신데, 나이가 드셔서 그런 건지 새롭게 출발할 앞날이 걱정되시는 건지 아무튼 저에게 물어봐 주셔서 다시 입도 치성의 운을 뗄 수가 있었습니다.

 

  원래 지리산에 작은 방 한 칸 월세를 구하려다가 적당한 곳이 없어 5~6년 정도 비어있던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두 분 연세도 있으신데 사람이 안 살아서 허물어져 가는 흙집에 들어가 사신다고 하니 치성을 꼭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의 흙집은 생각보다 손볼 곳이 많았습니다. 재작년 방면 포덕소를 지으면서 설비, 전기 기술을 익힌 방면 분들이 달려가서 내 일처럼 도와주었고, 온돌방 연기 새는 것도 손보고, 가스레인지도 설치하고, 지붕에 비가 새는 것도, 두꺼비집과 전기도 손보고, 흙집에 금이 간 데 진흙도 발랐습니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을 분담하여 의논해가며 마음을 맞추어나가는데 소통이 안 될 때도 있었지만, 마음이 서로 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20년 넘게 수도하는 딸이 이렇게 온 마음으로 성심을 다해서 일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방면 분들이 지리산에 두 번째 내려갔을 때 흙집에서 입도 치성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변화가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저는 치성 모셔야 한다고 조르지, 사람들은 와서 준비하고 있지,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천주교 신자가 치성을 모셔도 되는지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저희 외가는 4대째 천주교 집안이라 선산에 가면 묘비에 세례명도 같이 적혀있고 순교하신 분도 있는 정도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깊은 고민 끝에 큰마음을 먹고 치성을 모셨습니다. 상제님께 정말 감사드렸고, 방면의 다른 분들도 가화를 이룰 수 있기를 마음에서 진심으로 심고 드렸습니다. 그리고 힘든 일을 마다치 않고 도와주신 방면 분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5월에 입도 치성을 모시고 어머니만 먼저 지리산 흙집에 살게 되셨는데, 도시에서만 사신 분이라 처음에 문고리만 걸고 주무시는 걸 굉장히 무서워했습니다. 아버지는 퇴직 전이라 거제도 집과 지리산을 오가며 감나무와 밭을 가꾸셨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예초기 작업을 하시는데, 급한 성격에 세게 시동을 걸다가 예초기의 칼날 3개가 모두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하나도 다치지 않으셨습니다. 상제님의 덕화로 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여름이 지나며 허리까지 오는 풀도 베고, 보일러도 설치하고, 한낮에 더울 땐 앞에 개천에서 물놀이도 하고 다슬기도 잡았습니다. 해발 500m 고지에 자리한 흙집이라 일교차가 커서 밤엔 온돌방에 불도 때고 장작불에 삼겹살도 구워 먹으며, 막걸리 한잔에 어머니는 딸에 대한 구구절절한 마음을 풀어놓으시며, 애달픈 속내를 또 얘기하시고 또 얘기하셨습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친척들 앞에서 아들 자랑하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모습을 목격하는 남자 주인공이 마음을 다지는 장면입니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라고. 속이 풀릴 때까지 반복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20년 넘게 수도해 깨달음이 이정도라 조상님 뵐 낯이 없지만,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라는 걸, 앞으로는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수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자! 김성현.

 

  가을이 돼서 감은 풍년이었고, 지리산의 단풍도 절정이었습니다. 방면 분들과 내려가서 감을 수확하고 분리하고 껍질을 까고 곶감, 감말랭이 만드는 걸 도와드렸고, 배 터지게 감도 먹고, 방이 한 칸이라 잘 데가 없어 근처 3,000원짜리 전통숯가마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집이 지리산 산청군 시천면인데, 천왕봉 가는 하루 코스인 중산리가 차로 10분 거리에 있어 새벽 6시에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정상을 밟고 오후 3시에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다들 지리산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우연히 천왕봉 등반을  한 방면 분들은 너무 좋아했고 같이 땀 흘리고 산을 오르며 더욱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다녀간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며 안부를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고향이 서울이라 친척들과 형제들이 서울에 계셔서 대소사로 서울에 오시면 회관에 꼭 들려 방면 사람들한테 인사를 하고 가셨고, 도인들 먹으라고 지리산 농산물과 감, 대봉감 등을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방면에 외수들을 보고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시집도 못 간다며 저더러 바보라고 하셨습니다. 나이 많은 딸을 걱정하시는 어머니 덕분이었는지 같이 수도해나갈 분과 10월에 결혼했습니다. 말수 적으신 아버지께서 많이 좋아하셨고, 더 바랄 게 없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딸이 나이 먹고 시집도 안 가고 저러고 있다’라고 얘기하신 친구분과 치고받고 싸우셨다는 이야기는 그쯤에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 한마디 안 하시는 분이 얼마나 속상했으면 그러셨을까, 나 좋다고, 나 좋아하는 도 닦는다고, 대의명분이 있는 거라고, 뭐 하나 해놓은 것도 없으면서 철없이 수도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입도 치성을 모시니 마음이 참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정을 이루니 부모님께서 숙제를 다 끝낸 것 같다며 좋아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뵈니 저도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회관 종사원으로 도의 일을 받드는 게 부족했지만, 얼마나 큰 공덕이었는지 지나고 보니 모두 감사했습니다. 예식장에서 다들 아버지 입이 귀에 걸리셨다며 형제분들과 친척들이 입 모아 말씀하셨습니다. 신랑도 회관 종사원이어서 방면에서 임원분도 많이 와주셔서 하객이 300명 넘으니 남동생이랑 사촌 동생도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산청은 일교차가 커서 곶감이 맛있게 되었고, 지리산은 누구든 얘기만 들어도 가고 싶어 하는 사랑방이 되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올해도 방면 분들이 도와주셔서 방 하나를 더 손봐서 장판을 깔고 평상에 햇볕 가림막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산, 울산, 대구 등 지방에서 수도하시는 방면 분들도 지리산으로 모이게 되었고 포덕소처럼 화합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작년 봄 지리산 입도 치성을 계기로 방면 분들의 가정을 찾아가 부모님을 뵙고 일손이 필요할 때 모두 가서 도와드리자며 의견을 모았습니다. 전국을 돌며 달리는 차 안에서조차 어떻게 하면 마음의 문을 열고 맺힌 것을 풀고 가화를 이룰지 상의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울산, 광주 포덕소에서 방면 도인들 부모님의 입도 치성도 모셨습니다.

 

  손 볼 곳 많았던 지리산 흙집이 방면을 화합하게 하고 제 마음에도 불씨를 일으켰습니다. 방면 분들께 고마움, 가화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불씨로 정성을 들여서 앞으로 포덕 사업을 일으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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