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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1방면 임중균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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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6.07 조회1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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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 중에 “가화만사성”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고, 더 나아가 한 조직 구성원이나 사회 구성원들 사이가 화목해야 탄탄한 조직과 사회가 이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단 그 가정이나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도(道)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에서는 선·후각이 화목해야 방면사업이 잘 되어 나갑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바른 뜻을 그대로 받아 화목을 이룩할 때 체계 안에서 융화가 생겨 화평이 이룩되리라.”(『대순지침』, p.85)는 도전님의 말씀도 계시지 않습니까! 결국 선·후각 간에 화목해지면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덕화선양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도장에 수호를 서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상호 수도인들 간에도 서로 화목해야 수호에 만전을 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문을 여시며, 인터뷰에 응해 주신 분은 한성1 방면 임중균 선감이다. 임선감은 부산 감천에서 처음 입문하였고, 한때 수리사에서 도전님을 가까이 모시기도 하였다. 입도한지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초심불망(初心不忘)의 자세로 수도에 매진해 오고 있다. 임중균 선감은 1942년생으로 (음)1965년 1월 27일에 입도했고, (음)1994년 8월 5일에 교감, (양)2002년 4월 28일에 선감 임명을 모셨다.

 

 

입도하신 동기와 수도과정을 말씀해주세요.

 

제가 도를 접하게 된 것은 주문(呪文) 때문이었습니다. 을사년(1965년) 정월에 군복무를 마친 후, 고향에 계시는 친척분들과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지금의 선각인 조영철 선감 댁에 들러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조선감이 보여준 주문에 호기심이 생겨 그 주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문득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해서 주문을 직접 써보고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입도치성을 하기도 전에 주문을 다 외웠습니다. 그땐 정말 주문에 제가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지켜본 선각은 입도를 권유하였고, 저는 그해 1월 27일에 입도치성을 모셨습니다. 이날 여덟 집이 같이 하게 되었는데, 수수떡은 많이 차렸는데 탕국을 끓일 무가 필요하다고 해서 저에게는 무를 올리라고 했습니다. 요즘처럼 풍성하게 치성물을 차려 놓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무라도 부잣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 제 나이 23살이었습니다.

 

입도 후로는 틈만 생기면 선각께 찾아가 진리를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몇몇 지인들을 포덕하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포덕한 사람들이 입도치성을 올리기 전까지는 눈 한번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심열을 기울였습니다. 몇 날 며칠 동안 밤에 잠을 못 잔 적도 있었답니다. 그때는 새벽 1시가 되어야 입도치성을 모셨는데 음복을 하고 마치면, 한 4~5시가 되었습니다. 5시에 농사일을 나가거든요. 농사일을 마치면 바로 포덕을 하러 다녔으니 바닥에 등을 붙이고 잠을 잘 수가 없었죠. 이때 포덕신명이 응해서인지 제 눈앞에 무슨 등불을 달아 놓은 것같이 모든 사물이 아주 환하게 비추었답니다. 그땐 정말이지 혼신을 다해 포덕에 매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72집을 포덕하게 되었고 이해 3월에 포령임명(지금의 선무 격)을 모시게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이듬해에 감천도장에서 시학ㆍ시법ㆍ법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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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님 가까이 모시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당시 도전님께서 1968년에 경기도 안양 수리사에서 공부를 하시려는 때였습니다. 그때 선각인 조선감으로부터 연락을 받아서 제가 짐을 들고 도전님을 모시고 수리사를 들어갔습니다. 이때부터 도전님께서 공부를 하실 때마다 심부름을 하게 되었답니다. 도전님께서 공부하실 때 “내가 6개월 동안 잠을 안 잤다. 한참 잠을 안 자다가 자려니까 이상하다”고 하신 적이 있었답니다. 그 당시에는 공부 중이셔서 누구라도 도전님 뵙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처음 수리사에 들어갔을 때, 땔나무를 가져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과 잔심부름 그리고 공부를 하시면서 치성을 드리는 날에는 장을 보거나 치성물 차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도전님께서 하루는 납폐지로 사용할 종이를 사오라고 분부하셔서 서울 을지로 5가에 갔었어요. 선화지라고 큰 한지에 표시를 내어 자르는데, 주인이 표시한대로 자르지 않아서 제가 큰 소리로 “잘못 자르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니까, 큰 절단기의 칼날이 반으로 쨍그랑하고 부러지는 겁니다. 이때 정말 놀랐어요. 그때 저는 도전님의 분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하면 엄중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도전님께서 큰 공부하시는데, 납폐지를 올려드리면 기도를 모시고 치성 때 쓰셨습니다. 납폐지가 요즘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많이 태우셔서 3~4일 되면 벽지가 새까맣게 되어 여러 차례 도배를 했어요.

 

어느 날 도전님께서 공부를 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앞산에 내 7대조 할아버지 산소가 있다. 여기가 속달리(速達里)다.”하시고, “이곳이 열쇠산인데, 천지의 주인이 와서 여는 곳이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러시다가 몇몇 임원들에게 “이제 우리 도장 터를 안 잡으면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계신 후로, 도전님께서는 임원들에게 도장 터를 알아보라고 지시하셨어요.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 중곡도장에 터를 잡으셨습니다. 원래 그곳은 개발제한구역이었는데, 계약을 하고나니까 정부에서 중곡동에 택지조성을 한다는 공지가 신문 지면을 통하여 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곧바로 도장 공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지역에 많은 뱀이 살고 있었다는데, 실제 공사할 때는 뱀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답니다.

 

당시에 저도 중곡도장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전님께서 “자네, 장사를 해서 조선감 뒷바라지를 해 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도장 가까운 곳에다 고물상을 차려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도전님께서 일을 도와줄 사람까지 보내주셔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답니다. 한 예로 주택가에서 적은 금액을 주고 고물을 구입해서 되파니 거의 100배 가까운 수익을 남겼을 정도였습니다. 이 모두가 저의 가정과 방면을 살펴주신 도전님의 세심하신 배려로 인해 이루어진 일인 것 같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장사는 일정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사정으로 장사를 했다가 접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도전님께서 이런 상황을 걱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장사는 계속 해. 그래야 얼마 없는 인원이지만 같이 먹고 살아야지.”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다시 한번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렇게 장사를 하다 보니 여럿이 먹고 살 수 있게 되고 방면에 정성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포덕의 열의는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연락하여 교화도 해 주고, 성금과 치성금, 유공 등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하나마 모든 일에 정성을 드렸던 결과, 방면 도인들의 지극한 정성이 모여 중곡동에 방면 회관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회관 완공 후, 건물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만 잘 먹으면 더 많은 사업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지금껏 도전님 가까이서 모시던 일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습니다. 또한 도 사업을 하면서 항상 힘들고 어려울 때, 수리사에 한번 들러 그 시절 겪었던 일들을 회상을 하면서 초발심을 가지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바쁘다는 핑계로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갈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옛 자취는 변하지 않았더군요. 감회에 젖어 도전님께서 공부하시던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 후 수리사 산세를 훑어보다, 너무나 놀랐습니다. 마치 산 모양이 사람이 열쇠를 잠근 모양처럼 돼있어요. 그때 도전님께서 이곳이 열쇠산이라고 하신 말씀이 제 뇌리를 스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내 여생에 있어 수도에 만전을 기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도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셨다면 말씀해주세요.

 

가장 어려웠던 일은 부산 감천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우리 쪽 임원들이 배도자가 되어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일 것입니다. 그 외에는 어려운 점보다, 죄스러움이 더 앞섭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수도를 하면서 겪었던 한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입도 전, 집안 형편은 세 끼니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논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도 후에 포덕을 하러 다니자, 30여 명의 친척들이 도를 닦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집안의 장손이 조상과 가족을 보살필 생각은 안 하고 도만 닦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도를 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겪어 보셨을 일입니다.

 

그땐 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삼촌이나 형제들이 그렇게 말려도 제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당연히 우리 진리가 빈틈없고 확실한 것이었기에 제 마음 또한 그렇게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후천 오만년의 복록수명을 누리는데 이 정도 어려움은 호사다마(好事多魔)란 생각을 가졌습니다. 또한 상제님께서 “나는 해마를 위주로 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고 타이르셨도다.”(교법 2장 15절)라고 말씀하셨듯이 수도에 따른 역경과 겁액을 슬기롭게 이겨내야 계속 수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집안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고 따라 주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작고하실 때까지 딱히 뭐하나 해 드린 것도 없었는데도, 부산 감천에서 중곡 도장에 올 때까지 한마디의 불평 없이 저를 따라와 주셨습니다. 내가 믿고 가는 길, 그 길마저 같다면서 묵묵히 입도치성을 올리셨습니다. 또한 고물상 장사를 하며 생긴 이익금도 모자라 집과 논까지 정리할 때에도, 오히려 “이 길이 맞다면, 앞만 보고 가야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써 저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셨습니다. 늦게나마 깨달았지만, 이것이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한번은 저의 불찰로 방면에 불화가 발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선각과 의논한 끝에 일처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한순간의 그릇된 생각에 젖어 방면을 아주 어렵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 그리고 선각에게 지금 이러한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에 끊임없이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께 부디 잘 이끌어 달라고 심고를 드립니다.

 

도를 닦으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 일이지만, 먼저 수도하신 여러 선각 분들에 비하면 오히려 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수도인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해주세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화목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목함은 선ㆍ후각 간 융화(融和)를 시켜줌으로써 자연히 체계질서를 세워줍니다. 그렇게 되면 각 개인을 떠나 도 전체가 화합ㆍ단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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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 자신의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한 사람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의 원리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할 때 한 가정이 그리고 그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나아가 세상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도전님 훈시 말씀 중에 “화합단결(和合團結)을 바탕으로 도인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화합단결은 우리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혼자의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힘과 뜻을 합쳐야 비로소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도인들은 서로 간에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대순회보』 16호)라고 있습니다. 또한 화목이라는 단어 속에는 인간으로써 인간된 도리를 다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상호간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각자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한다면, 어떠한 문제나 오해로 인해 척(慼)과 원(冤)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그 단체나 사회는 화평(和平)한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대순회보> 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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