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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대한 선조들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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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2.10 조회5,5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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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이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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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들어 120여 년 만의 대가뭄01이 한반도에 찾아와 사회적·경제적 관심을 끌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 또다시 최악의 가뭄이 들어 충청권 최대 저수지인 예당저수지의 저수율이 8% 대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곳곳에서 모내기한 지 얼마 안 된 모가 말라버리고 밭작물이 시드는 등 각종 농작물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농업용수를 확보하려고 간이 양수장을 설치하고 저수지 물을 채우는 등 총력전을 펴고 있으나 해갈에는 역부족이다.

 

   가뭄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커다란 자연재해의 하나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고충이 매우 크다. 역사적으로도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게 되면 그로 인한 식량부족이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킨 경우가 많았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가뭄에 대해 어떤 고민과 대응을 하였을까? 고대로부터 인간의 행위와 자연현상은 깊은 관련성02이 있다고 믿어졌는데, 이는 천지인 삼계가 일체적 관계에 놓여있어 인간의 마음 작용이 자연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원리를 통해 가뭄을 극복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숨은 지혜를 발견하고 우리가 수도인으로서 생각해 볼 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옛사람들은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들면 먼저 왕이 정치를 잘못한 까닭이라 여겼다. 고대 부족국가인 부여에서는 통치자가 무능하거나 덕이 없을 때 내리는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하여 왕을 바꾸거나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삼국과 고려를 거쳐 조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가뭄이 들면 왕과 신하들은 잘못 시행한 정치가 없는지 혹은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를 먼저 살폈다. 그리고 백성들이 동원된 토목공사를 중지하고 세금을 감면하거나 궁녀들을 대궐 밖으로 내보내기도 하였다.03 죄수들을 자세히 심리하여 억울하게 형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거나 풀어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덕을 베풀고자 하였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가장 널리 행해진 가뭄에 대한 해결책은 기우제(祈雨祭)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음력 4월과 7월 사이에 빈번하게 기우제가 열렸는데 왕이 직접 종묘나 사직단에 나가 행사를 주관했다고 한다. 이때 남문인 숭례문을 닫고 북문인 숙정문을 열고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이는 지나친 양기(陽氣)를 억제하고 음기(陰氣)를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기우 관련 행사에서는 여성의 역할도 두드러졌다. 경북 경주에서는 푸른 버들가지 고깔을 쓴 수십 명의 무당이 저고리 깃과 치맛자락을 드러냈다 감추는 행위를 반복하며 춤을 추었다. 이 또한 음의 존재라 할 여인들이 단체로 춤을 출 때 음양의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비가 내린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으로 해석된다.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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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기원하는 전통행사로 ‘사시(徙市)기우제’라는 것도 있었다. 이는 가뭄이 정상적인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는 시각에 바탕을 두고 이를 해결하고자 시장을 특정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때의 소통은 물이나 교통, 시장에서의 인적·물적 재화의 흐름을 말하며, 사회적 감정 또는 기운의 흐름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05

 

   이와 같은 전통적인 대응을 살펴볼 때, 우리 선조들은 가뭄의 원인을 왕의 부덕(不德), 음양의 불균형, 원망, 소통 부재 등에서 찾았고 사람들 마음속에 이러한 부정적 정서들이 생겨날 때 자연계에 음양의 불균형을 가져와 가뭄이 드는 것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을 정복하라’는 서양의 대립적 사고방식과 달리 인간과 자연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체적 관계로 파악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왕이 부덕하여 여기저기서 원망이 생기고 그러한 원망이 소통되지 못하고 막히는 것을 해결하고자 한 것은 소외계층인 여성, 서자, 노비 등의 원울(冤鬱)을 풀어내어 소통시키고자 하는 해원상생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또한, 인간의 마음작용이 자연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한 사람의 품은 원한으로 능히 천지의 기운이 막힐 수 있느니라”(교법 1장 31절)고 하신 상제님 말씀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요즘과 같이 화(火) 기운이 지나친 분열의 시대에 많은 현대인들은 마음속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원망, 화의 분출, 타인과의 소통 부재 등이 요인이 되어 각종 불안, 긴장, 두려움, 분노, 만성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 장애를 겪는 상황이 바로 그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속 가뭄은 수도를 통해 해소 가능하리라 본다. 또한, 수도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인간의 본성을 회복했을 때 우주 자연의 질서도 바로 잡힌다면 수도가 필요한 이유가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속 가뭄의 출발은 인정(人情)이 메말라 가는 데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인정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라(非人情 不可近)”고 했듯이 우리가 인정을 나누며 해원상생을 실천하고 화합과 감사로 열어가는 연운(緣運) 체계 속에서의 수도야말로 마음속 가뭄을 해소하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참고문헌

 

·김경수, 『한국사 테마전 - 교양인을 위한 우리 역사』, 서울: 돋을새김, 2007.

·김만중, 『숨겨진 조선의 연애 비화 48가지』, 서울: 올댓북, 2008.

·김재호, 「사시(徙市)기우제의 기우 원리와 시장의 소통성」, 『한국민속학』 50, 2009.

·반기성, 「반기성의 날싸바라기, 2015년에 대가뭄이 올까?」, 《스포츠서울》 2015.01.18.

      

 

 

 

01 가뭄전문가인 부경대 변희룡 교수는 한반도 가뭄은 6년, 12년, 38년, 124년 주기로 찾아오는데 2015년부터 대가뭄이 찾아와 2025년에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02 천인상관설(天人相關設): ‘자연현상과 인사(人事)에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학설

03 심한 가뭄이 들면 나라에서는 궁궐에 들어와 갇혀 사는 여성들의 쌓인 원한이 가뭄을 일으켰다고 믿어 젊은 궁녀들을 궁궐 밖으로 내보기도 하였다. 세종은 세자 시절부터 가뭄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였는데, 가뭄이 너무 심했던 1419(세종 1)년에는 궁녀들이 고향 집을 왕래하는 것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04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삼남지방에서는 여인들이 산 정상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누면서 비를 갈구했다고도 한다.

05 김재호, 「사시(徙市)기우제의 기우 원리와 시장의 소통성」, 『한국민속학』 50 (2009), pp.263-264.

 

 

<대순회보 1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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