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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와의 약속인 입도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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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3.28 조회5,4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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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송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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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서라는 것은 천지에 으뜸가는 약속이다. 그 맹서가 천지에 배반한 약속이라면 비록 원물(으뜸가는 물)일지라도 그 물은 성공하기 어렵다 (誓者元天地之約 有其誓 背天地之約 則雖元物其物難成). (교운 1장 66절)

 

 

천지에 맹세한 대표적인 사례는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이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복숭아밭에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천지신명께 의형제가 되기로 맹세했다. 도원결의를 맺은 후 평생 주군을 위해 헌신한 관우는 의(義)와 충(忠)의 화신이다. 그래서 관운장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대인대의(大仁大義)를 기려 역대 왕조에서 관왕묘를 세워 극진히 대접하며 성제군(聖帝君)으로 추앙해 오고 있다. 상제님께서도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받은 극진한 공대의 보답으로 공사 때에 반드시 진력함이 가하리로다.”(권지 2장 21절) 하시면서 천지공사에 크게 쓰셨다.


  ‘서(誓)’는 ‘맹서(盟誓)’라고도 하는데, ‘맹서’는 사전적으로 ‘맹세’와 같은 말로 ‘일정한 약속이나 목표를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뜻한다. 상제님께서는 『전경』에 “맹서라는 것은 천지에 으뜸가는 약속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천지(天地)는 인간과 유기적인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는 천지신명보다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을 뜻한다. 따라서 ‘맹세’는 원하는 바의 목적을 꼭 이루겠다는 상제님과의 약속이다.


  대순진리회의 입도치성은 입문자가 상제님께 맹세하는 첫 정성의 자리이다. 그것은 입도자가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께 충실한 도인이 되어 영시(永侍) 불망(不忘)할 것을 마음 굳게 맹세하는 의식이다. 도전님께서도 “입도치성을 올리는 것은 자기의 심성을 상제님께 받쳐 맹세함을 알게 하여야 한다”01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따르겠다고 맹세를 했다면 이해타산이나 의심으로 마음이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리를 지키려는 마음가짐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정성스런 맹세의 자리를 갖는 입도자는 입도치성 전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대순진리회의 종지와 『도헌』을 찬동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입회절차가 입도치성이라는 것을 알고 행하는 것이다. 『도헌』에는 “본회(本會)의 종지와 『도헌』을 찬동(贊同)하고 소정의 입회 절차를 이수한 자를 도인으로 한다.”02라고 명시되어 있다. 종지(宗旨)는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감오득도하시고 1925년 전북 구태인에 무극도를 창도하면서 공표하신 대순사상의 요체이다. 따라서 종지는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와 그 진리를 감오득도하신 도주님의 천부적 종통계승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도헌』으로부터 우리는 본회의 창도주와 신앙의 대상, 도인의 권리와 의무, 연원, 종단 조직체계 등 대순진리회의 전반적인 조직운영 체계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입도자는 종지와 『도헌』을 통해 대순진리회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지하고 입도치성에 임하여야겠다.


  그런데 이렇게 입도치성을 올린 후 많은 사람이 상제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입도치성 시(時) 상제님께 맹세하는 자리라는 것을 모르고 행하였기 때문이다. 도전님께서는 “입도치성이란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치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하느님 앞에 맹세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성금을 내고 기도행사를 하는 모든 것은 입도치성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03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입도치성에서 입도자는 반드시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을 믿고 따를 것을 다짐하여야 한다. 그러한 믿음과 다짐이 없다면 입도자는 맹세한 것이 없으므로 쉽게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입도자의 마음에 대한 중요성은 동학의 『동경대전』을 통해서도 참조할 수 있다. “‘제자가 최제우 선생에게 묻기를 ‘도를 배반하고 돌아가는 자는 어째서입니까?’ 대답하기를 ‘이런 사람은 족히 거론하지 않는다.’ 묻기를 ‘어찌하여 거론하지 않습니까?’ 대답하기를 ‘공경하여 멀리하라.’ 묻기를 ‘전의 마음은 어찌 그렇고 나중 마음은 어찌 그렇습니까?’ 대답하기를 ‘풀 위의 바람 같은 것이다.’” 이 말씀은 입도자의 마음가짐이 줏대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곧 자기의식에 의한 상제님과의 약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떠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설령 상제님께 맹세를 했다 할지라도 그 맹세가 도의 법을 따른 것이 아니거나 개인적인 사심(私心)에 의한 것이라면 공(功)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천지와의 약속을 위배했을 때 ‘비록 원물(으뜸가는 물)일지라도 그 물(物)은 성공하기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결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제님을 모셔야 하며, 구천대원조화주신이신 상제님 주재 하의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입도치성은 도통을 목적으로 수도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신적인 삶을 제시해 준다. 일반적으로 ‘통과제의’는 고도로 진화된 종교들에서 세속적인 조건에서의 죽음과 거룩한 세계, 신들의 세계에서의 재생이 뒤따른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정신적인 제2의 탄생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출가하면 ‘불제자’나 ‘불자(佛子)’가 되었고,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자기의식으로 태어나게 도와주었기 때문에 자신을 ‘조산원’에 비유하였다. 대순진리회 입도자는 입도치성 이후 세속적인 자신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먼저, 입도치성 이후 개인은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할 수 있는 도문소자(道門小子)의 자격을 얻는다. 도전님께서는 “천자(天子)는 하늘의 아들이고, 도문소자는 도(道)의 아들을 말한다. 천지를 가지고 도라고 말한다. 하늘의 아들이 큰가? 도의 아들이 큰가? 도의 아들이 크다.”라고 말씀하셨다. 곧, 도문소자는 도의 아들로서 상제님의 천지공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천지공정이란 곧 후천 선경의 건설을 목적으로 상제님께서 여신 천지공사를 말하고 도인들은 여기에 참여할 하늘의 임무를 받는 것이다. 참으로 하늘이 쓰고자 할 때 쓰임을 받는 참된 인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연원에 따라 입도한 수도자는 선도자(先導者)와 연운(緣運)의 상종(相從) 관계를 맺고 수행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에 대순진리회의 선·후각의 체계질서가 서게 된다. 만일 체계질서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운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전님께서는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경상애하의 융화로 단결하여야 한다.”04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입도치성을 통하여 자신의 위치가 분명하여지고 그 위치에 맞게 수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천지와의 약속은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과의 약속이다. 대순진리회 입문자는 반드시 맹세의 대상을 인지하고 입도치성을 모셔야만 참다운 도문소자라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전경』에 “너희들이 믿음을 나에게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교법 3장 5절)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誓)’와 같은 ‘맹세’를 통해 상제님과의 약속을 변함없이 지켜나가려는 우리의 의지와 믿음을 보시기 위함이고, 그 의지와 믿음을 통해 우리는 상제님의 덕화를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수도생활에서 상제님께 맹세하는 첫 정성인 입도치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01 도전님 훈시(1982. 1. 2)
02 『도헌』 제7조.
03 도전님 훈시(1994. 9. 2)
04 『대순지침』p.55.

<대순회보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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