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레에서 상생(相生)을 생각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4.05 조회5,997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이공균
현대의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을 여러 측면에서 편리하게 해준다. 힘들고 어렵고 오래 걸리던 것들을 기계로 빠르게 해결하고,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앉아서도 세계를 유람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과 비교해서 비합리적, 비효율적, 비생산적인 것들이 기술의 발달 덕분에 편리하게 변화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변해간다는 것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 편리해진 것이 많아진 것만큼 사람 간의 장벽이 높아졌다. 핵가족이 늘고 이웃 간의 왕래는 줄었다. 소통을 기계가 대신함으로써 은둔형 외톨이01가 생겨났다. 물질문명이 첨예하게 발달하면서 생겨난 편리함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편리함의 시대 이전의 우리 선조는 어떻게 생활하였을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선조는 여유와 배려 그리고 나눔, 말 그대로 어울림 속에서 삶을 영유해 나갔다. 서로 일손을 거들어 주며 나누던 두레와 품앗이는 물론, 신과 자연에 감사하는 신앙, 동물과 곤충에 대한 배려의 까치밥과 고수레 등이 그것이다. 이 중의 하나인 고수레에서 한 예를 들어 그 속에 담겨있던 의미를 되짚어 보자.
일반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점심이나 참을 먹을 때 어김없이 첫술을 떠 고수레를 외친다. 고수레는 짧은 기도문이면서 주문이고 간단한 행위이면서 심오한 신앙이다. 고수레는 자만에 빠지고 독선에 넘치는 현대인이 새삼 돌이켜보아 지금의 시대에 되살릴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음가짐이다.
고수레는 고시레, 고시래, 고시네, 고씨네 등으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민간신앙의 하나이다. 고수레의 유래는 단군 때 고시(高矢)라는 사람이 백성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사람에게 베풀기를 즐기는 고씨 성의 지주를 존경해 마을 사람들이 예를 표현하였다는 것과 고씨 성을 가진 여인이 냇가에 떠내려오는 복숭아를 먹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커서 어머니가 죽자 자리 좋은 다른 이의 논에 몰래 묻고 떠났고 그 후 논의 주인이 주인 없는 그 무덤을 정성껏 돌보니 풍년이 들었다는 것 등의 설화가 내려온다.02
고수레의 의미는 근방을 다스리는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며 행사를 무사히 치르고 농사가 풍년이 들게 해 달라는 일종의 주문이고 기원이다. 또 근처의 잡귀에게도 먹을 것을 주면서 잘 먹고 물러가라고 하는 잡귀추방의 주술적인 의미도 있다. 고수레에서 첫술의 의미는 첫 수확의 곡물이나 과일처럼 신에게 바쳐지는 공물이며 조상을 섬기고 풍요를 비는 기원이다. 고수레에는 이러한 신앙적 의미 외에도 함께 어우러지며 사는 공동체의 의미도 있다. 땅에서 나온 음식을 길에다 던지는 행위는 조상에게, 여러 귀신에게 예의를 갖추고 지나는 하찮은 동물들과도 함께한다는 생명존중과 어울림의 의미인 것이다. 이처럼 혼자만 독차지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한다는 것은 사랑이고 겸손이다.03
물질문명의 발달로 편리함과 함께 생겨나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상생의 미덕”일 것이다. 옛 선조의 이해와 존중, 나눔과 배려에서 온고지신의 정신을 찾아야 하며, 어울림으로 생겨나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통으로 변화의 물결을 일으켜야 한다. 변화는 기계와 물질이 아닌 인간 중심의 변화이어야 하고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을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흘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조의 고수레에서 느낄 수 있는 어울림에 대한 의미는 대순사상의 상생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선조의 지혜가 담긴 고수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생의 의미는 크게 신명과 자연, 인간의 어울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순사상에서 나타나는 상생의 의미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대순사상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신명, 자연과 신명 등 모든 우주의 구성체가 원한을 풀어 같이 살아가는 것을 상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즉, 상생은 천·지·인 삼계(三界)가 원한을 풀어 모두 잘 살 수 있는 것을 말한다.04 다시 살펴보면 고수레에서 나타나는 상생의 의미는 대순사상에서 말한 모든 우주의 구성체의 원한을 풀어 상생을 이룩하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으로서의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수레는 절대로 땅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썩으면 거름이 되는 것처럼 고수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선조의 지혜는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해준다. 고수레는 독선과 자만에 빠져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선조의 위대한 유산인 배려와 어울림의 미덕을 가르쳐주고, 도인들의 수도생활에서 상생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좋은 교훈이다. 이처럼 작은 생활 속에서도 대순사상의 의미를 찾아 수도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면 상제님께서 펴 놓으신 대도(大道)와 도주님께서 받드신 도수를 밝히는 등불과 같은 수도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01 은둔형 외톨이는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핵가족화와 인터넷 보급 등 사회 구조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사례가 보고된 것은 2000년이며, 현재는 그 수가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김기란·최기호, 『대중문화사전』, 현실문화연구, 2009)
02두산백과사전 두피디아(www.doopedia.co.kr)
03 김종태, 『옛것에 대한 그리움』, 휘닉스, 2010, pp.144~146 참고.
04 이경원, 「해원상생의 의미와 천지공사」, 『대순사상논총』4, 포천: 대진대학교 출판부, 1998, p.141 참고.
<대순회보 152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