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과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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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정화 작성일2019.02.26 조회5,129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임정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과거로 흘려보내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가 단지 과거의 일에만 머무르지 않듯이, 미래도 결코 현재와 무관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가 상호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지난날의 잘못을 살펴서 그릇된 마음을 고치고 허물을 뉘우쳐 오늘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밝은 내일을 맞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얼마 전 ‘신과 함께: 인과 연’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서 박 중위는 인세(人世)에서 지은 잘못으로 저승의 심판장까지 불려 나오게 된다. 그는 병장 김수홍의 상관으로 승진을 앞둔 군인이었다. 어느 날 김수홍은 초소 근무 중 함께 근무하던 후임병의 총기 오발에 의한 사고를 당한다. 박 중위는 이 사고가 자신의 승진에 악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아직 살아있는 김수홍을 암매장한다. 그리고 뉘우치는 기색 없이 그 사건을 끝까지 은폐한다. 시간이 흘러 암매장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로 인해 교도소에서 생활하던 박 중위는 잠결에 저승에서 열리는 김수홍의 재판에 불려간다. 이때 김수홍의 변호를 맡은 저승차사는 과거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으면서 자기처럼 죄책감에 고통받으며 살지 말라고 박 중위를 설득한다. 박 중위는 그제야 오열하며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
우리 수도인은 이 영화에서 잘못에 관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잘못이 이기적인 욕망에서 발생하기 쉬우며, 잘못을 덮는 것은 마음을 속이는 행위라는 것, 그리고 뉘우치지 않으면 장래가 어두워진다는 것 등이다. 승진이라는 사욕에 사로잡혀 사람의 생명을 저버린 박 중위는 진실을 밝힐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그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며 발뺌했다. 결국, 교도소에 갇히는 벌을 받게 되었지만, 저승에 불려가서야 잘못을 뉘우쳤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부지불식간 남에게 죄를 짓고 허물을 만드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이 아무리 깨끗하고 선한 사람일지라도 들추면 잘못 하나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뉘우치기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기 신변에 대한 위협, 비난에 대한 두려움, 자책 등으로 우울함이나 절망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런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 자기 위신을 세우기 위해 잘못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그래서 박 중위처럼 자기 마음을 속여 잘못을 덮고 죄가 없는 듯이 행세하기 쉽다. 이런 자기방어 기제는 일순간 자신을 위로하는 대처법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가 될 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오히려 회피하게 된다.
도전님께서 잘못의 발견은 위대한 지식이 되고 잘못을 덮는 행위는 상대의 반감을 유발하게 된다고 일러주셨다.01 이 말씀은 수도인이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뉘우쳐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뜻이라고 여겨진다. 잘못의 발견과 이에 대한 반성이 수도인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수행의 수준을 높은 단계로 끌어 올리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합리화로 잘못을 덮는 처사는 상대의 반감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도전님께서 잘못을 자각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개심(改心)’과 ‘반성(反省)’을 말씀해주셨다. 개심은 잘못을 짓기 전에 그릇된 생각임을 발견하여 그 마음을 고치는 것이고, 반성은 잘못을 저지른 뒤에 과오를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다.02
개심의 사례로 『전경』 교법 3장 12절에 상제님의 종도 박공우가 자신을 다치게 한 예수교 사람을 찾아가 죽이려고 마음먹는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박공우가 예전에 상해를 입혀 죽은 자가 지금 가해자에게 붙어 그(박공우)에게 갚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마음을 고친다. 그래서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여겨 잘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 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린다. 상제님께서 이것은 그의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일러주셨는데, 그 후 박공우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었다.
반성의 사례로는, 행록 1장 29절에 이선경의 장모(김형렬의 여동생)가 49일을 기한으로 정성을 들이겠다고 약속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성심성의를 다하였으나 여러 날이 거듭되자 불평을 품어 떡이 익지 않았다. 그녀가 상제님께 사죄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뉘우치니, 곧 허물이 풀리고 떡이 익었다. 그녀는 다시 약속대로 49일 동안 정성을 들여 소임을 마무리했다. 이에 오색 채운이 달을 끼고 있는 상서로운 징후가 나타난다. 상제님께서 이것은 그녀의 성심이 신명에게 사무친 증거라고 일러주셨다. 박공우와 이선경 장모의 일화는 개심과 반성을 통한 잘못의 자각이 이해와 용서, 나아가 신명의 감응으로까지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수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비난이 가해지거나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경우가 있다. 이때 박공우처럼 남에게서 그 원인을 찾거나 이선경의 장모처럼 힘에 버거워 불만을 터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변명과 자기방어로 일관하는 것은 잘못을 덮는 비양심적 행동일 뿐이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자세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개심과 반성으로 잘못을 고쳐나간다면, 잘못은 자신을 날마다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운수와 도통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인은 “운수를 받는 것은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無私之公) 인도(人道)에 있다”03는 도전님 말씀을 지침으로 삼아 잘잘못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행위든 그 동기가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사심인지, 진실로 공을 위한 마음에서 발현된 도심인지를 분명히 판단한다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본다. 진심으로 개심과 반성을 하는 수도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다짐하며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을 보일 것이다. 반대로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는 수도인은 상대방의 원망을 사고 사람들 사이에 시비(是非)를 일으켜 분열을 조장해 결국 도(道)를 어지럽힐 수 있다. 수도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私)로 인하여 공(公)까지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밝은 미래는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고 현재를 끊임없이 반추하는 성찰에서 열린다고 본다. 도주님께서 “인숙무죄(人孰無罪)요 개과하면 족하니라”(교운 2장 15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사람이면 누가 죄 없겠는가, 잘못을 고치면 충분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늘 자신을 살펴 개심과 반성으로 잘못을 발견하며 자신을 혁신해 나가는 것이 수도인의 올바른 삶이라 여겨진다. 겸허함을 바탕으로 자기 잘못을 자각하는 현명함을 갖춘 수도인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 발전을 위한 공부로 받아들여 마침내 큰 운수를 받을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대순회보 215호>
01 『대순지침』, p.80 참고.
02 도전님 훈시(1986. 5. 20) 참고.
03 『대순지침』,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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