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유도창 중유태인 하유대각 : 기국은 내가 먹은 마음을 신명이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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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01 조회5,871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류병무
요즘 김 외수는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선각을 통해 한참 도(道)를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조금씩 도를 깨우쳐 가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오늘도 포덕소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김 외수는 갑자기 청소와 수도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감요 그런데 연락소 청소를 하는 것도 수도인가요?”
“그렇지요.”
“청소한다고 수도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음, 청소한다는 것은 수행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머털도사’를 보면, 도를 닦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어요. ‘누덕 도사’는 도를 닦기 위해 찾아온 ‘머털이’에게 수도를 가르치기보다는 허드렛일을 시키는 걸 알 수 있어요. 김 외수는 누덕 도사가 왜 그런다고 생각해요?”
“글쎄요. 머털이가 진짜로 도를 닦을 마음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맞아요. 아마 누덕 도사는 머털이가 진짜 도를 닦을 자세가 되어 있는지 시험하는 마음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단지 시험의 의미 외에 수도를 시키는 과정의 하나가 아닐까요?”
“하지만 ‘꺼구리’가 찾아간 ‘왕질악 도사’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것이 누덕 도사와 왕질악 도사의 차이죠. 누덕 도사는 제자인 머털이가 능력을 갖추기 이전에 마음을 닦길 바랐던 것이고, 왕질악 도사는 제자인 꺼꾸리에게 마음보다는 능력을 먼저 가르치고자 했죠. 그 차이는 나중에 결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요.”
“교감께서는 누덕 도사처럼 하는 것이 더 옳다고 보시는 거네요.”
“그래요. 수도의 과정이 도술과 같은 능력을 갖고자 함이 아니라, 바른 마음을 닦아서 양심인 천성을 되찾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죠.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도술을 배우기를 원하는 종도들에게 ‘너희들이 항상 도술을 배우기를 원하나 지금 가르쳐 주어도 그것은 바위에 물주기와 같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가니라. 필요할 때가 되면 열어주리니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힘쓸지니라.’01라고 말씀하신 거지요. 즉 마음을 닦아야 함을 강조하셨어요.”
“하지만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굉장히 막연하잖아요?”
“그렇죠.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서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는 과정에서 되는 것이죠.”
“그러면 청소도 바로 그러한 수행의 일부라는 것이네요.”
“맞아요. 청소와 같은 조그마한 행위가 바로 수행의 일부인 것이죠. 청소는 외관적인 것을 청소하는 것도 있지만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닦아가는 것이죠.”
“음, 어렵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러면 『전경』책에서 ‘예시 45절’을 한 번 읽어보세요.”
“상제께서 태인 도창현에 있는 우물을 가리켜 ‘이것이 젖(乳) 샘이라’고 하시고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그러나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리라’ 하시고 ‘상유 도창 중유 태인 하유 대각(上有道昌中有泰仁下有大覺)’이라고 말씀하셨도다.”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고 봐요. 먼저 상제님의 뒤를 이으신 도주님에 의하여 현재 대순진리회의 모태가 되는 무극도장이 구태인 도창현(舊泰仁道昌峴)에 세워질 것을 암시하신 내용으로 볼 수 있어요.”
“무극도장터가 상제님에 의해 미리 예시(豫示)되었다는 건가요?”
“그래요. 무극도장이 들어선 자리를 지리적으로 보면, 항가산(恒伽山) 중턱의 도창현(道昌峴: 現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02이에요. 상제께서 태인에 자주 머물고 계셨는데 그 이유를 도창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어요.03 그 말씀 속에는 그만큼 도창현이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그러면 무극도장터는 상제님에 의해 이미 예정된 자리인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상제께서 도창현에 있는 우물을 가리켜 ‘이것이 젖(乳) 샘이라’고 하시고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말씀하셨죠?”
“네.”
“이것이 젖샘이라고 하신 것은 상제님의 모든 천지공사의 진액이 이곳에 도장을 세우실 분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나타남을 암시하신 것으로 보여요. 즉, 상제님으로부터 천부적인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으로부터 법이 완성되고, 그 법을 통하여 일만이천 명의 도통군자가 나온다는 의미이죠. 젖은 어머니의 영양분이 모여 아이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것이죠. 무극도장이 들어선 곳에 있던 우물을 가리켜 젖샘이라 하신 말씀은 상제님의 유지(遺志)가 모두 도주님께 전해지고, 도주님을 통하여 무극도장이 세워져 수도인들이 도통할 수 있는 법방이 마련된다는 의미로 보여요. 실제로 1925(을축)년에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이 이룩되었고, 이때 도주님께서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시고 상제님을 구천 응원 뇌성 보화 천존 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 봉안하시면서, 종지(宗旨) 및 신조(信條)와 목적(目的)을 정하셨어요. 도창현에 세워진 무극도장에서 상제님의 사상을 정립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도주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을 통해 현재 대순진리회의 종지, 신조, 목적으로 이어져 수도인이 도통할 수 있는 법방으로 확립된 것이죠. 놀라운 것은 도창현에 무극도장이 들어섬으로써 결과적으로 위에는 도창현의 무극도장이[上有道昌], 중간에는 태인면이[中有泰仁], 아래에는 대각교가[下有大覺] 위치하게 되었어요.”
“정말 놀랍네요. 상제님께서 ‘예시 45절’을 통하여 도주님에 의해 도창현에 도장이 세워질 것을 예시하시고, 그것이 도주님에 의하여 실현되어 나중에 무극도장이 들어섰다는 것이 신기해요. 그러면 이 구절의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이죠?”
“상유도창(上有道昌), 중유태인(中有泰仁), 하유대각(下有大覺)을 수도적인 의미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유도창, 중유태인, 하유대각이 수도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죠?”
“김 외수요. 도통은 상통, 중통, 하통이 있는 건 알고 있죠?”
“그럼요.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러면 상, 중, 하가 상통, 중통, 하통과 연관된다는 건가요?”
“상유도창, 중유태인, 하유대각을 수도로 풀어보면, 상통은 도를 많이 창성시킨 사람이, 중통은 크게 어진 사람이, 하통은 크게 깨달은 사람이 받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봐요.”
“….”
“크게 깨닫는 것이나 크게 어진 것이나, 도를 크게 창성하는 것은 다 도통을 받을 정도로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여기서 크게 깨닫는 것은 원리나 진리로 도를 깨우치는 것이죠. 그래서 상제께서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못한다고 하신 것 같아요.”
“그럼 중통은 크게 어진 사람이겠네요.”
“네. 크게 어질다는 것은 마음 씀씀이를 말한다고 봐요.”
“그럼 상통은 뭐죠?”
“도를 많이 창성(昌盛)시킨 사람이죠. 도를 창성시킨다는 것은 도의 일을 많이 행한 사람이라고 봐요. 그래서 도전님께서는 포덕사업에 따라 도의 직급체계를 마련하셨으며, 포덕사업의 공덕을 가장 크게 보신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러므로 수도를 할 때,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넉넉히 쓰는 것이 좋고, 더 좋은 것은 행위로 옮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즉 실천 수행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상제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것보다는 가슴으로 새기는 것이 좋고, 이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면 가장 좋은 것이죠.”
“그러면 상제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 수행이 가장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이것은 기국(器局)과 관련된 것으로 상통, 중통, 하통은 결국 기국의 차이인 것 같아요. 기국이란 도를 위해 먹은 마음을 뜻한다고 봐요. 상제님께서 ‘양이 적은 자에게 과중하게 주면 배가 터질 것이고 양이 큰 자에게 적게 주면 배가 고플 터이니 각자의 기국(器局)에 맞추어 주리라.’04고 하신 것처럼요.”
“도를 위해 먹는 마음….”
“교감은 기국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 있어요.”
“언제요. 빨리 들려주세요.”
“2003년, 태풍 매미가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 생채기를 내고 지나간 적이 있어요. 그때 태풍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많은 수도인이 토성수련도장에 모였죠. 아침 일찍부터 도장에 모아 놓은 돌을, 피해 현장으로 옮겼어요. 작업은 온종일 진행되었죠. 돌의 크기는 작은 돌, 중간 돌, 큰 돌 등 다양했어요. 그리고 돌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했죠. 처음부터 욕심을 내서 큰 돌을 나르는 사람, 온종일 일할 것을 생각해서 처음부터 작은 돌을 나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교감도 남에게 뒤질세라 무거운 돌을 날랐죠. 처음부터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복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조금 힘들더라도 참고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아침을 지나 점심이 되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금방 지칠 줄 알았는데 점심이 되어도 지치지를 않는 거예요. 오히려 저녁이 될 때까지 그 힘이 유지되었죠. 신기해서 나만 그런가 하는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았어요. 그랬더니 수도인들이 처음 들었던 크기의 돌을 계속해서 운반하고 있는 거예요. 처음부터 큰 돌을 들었던 사람은 계속해서 큰 돌을, 몸을 생각해서 작은 돌을 들었던 사람은 계속해서 작은 돌을 들고 있었어요.”
“신기하네요.”
“그렇죠. 저는 이 경험을 통해서 도에서는 수도인이 먹은 마음만큼 신명이 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작은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신명이, 큰마음을 먹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큰일을 할 수 있는 신명이 응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므로 상통은 결국 가장 큰마음으로 도를 창성시킨 수도인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청소를 하는 것은 큰마음은 아니잖아요?”
“그럴까요. 제가 보기에 처음부터 큰마음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작은 마음이 모여서 큰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작은 정성이 모여서 큰 정성이 되듯이요. 그러니 작은 것부터 소중하게 해나가는 것이 큰마음을 가지게 되는 초석이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면서 큰일을 이루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럼 작은 것부터 정성스런 마음으로 해야겠네요. 교감요, 감사합니다.”
김 외수는 오늘 ‘예시 45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지리적으로는 상제님의 유지를 받들어 도주님의 법이 세워질 무극도장이 도창현에 세워질 것을 암시한 상제님의 말씀이며, 결국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을 통하여 법이 세워지고, 다시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을 통해 도통군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둘째, 상유도창 중유태인 하유대각(上有道昌中有泰仁下有大覺)이 수도적으로는 크게 깨닫는 것보다 어진 마음을 쓰는 것이 낫고, 어진 마음을 쓰는 것보다 도를 크게 창성시키는 것이 더 크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도를 위해 먹은 마음을 신명이 쓰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작은 일부터 정성스럽게 해나가는 수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좀 더 넓고 크게 먹어야겠다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대순회보>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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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교법 2장 12절.
02 『한국지명총람』12권(전북편 下)을 보면 ‘돌챙이(도챙이)고개’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태인 주민들은 예전부터 도창현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단어의 조합은 서울의 아현동(兒峴洞)과 같은 경우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아현’에서 ‘아’는 아이[兒]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고, ‘현(峴)’은 고개의 한자어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지명을 정리하면서 비슷한 발음의 한자 ‘도창’과 고개의 한자어 ‘현’을 조합하였다는 설도 있다.(「전경지명답사- 대각교 터」,《대순회보》 142호)
03 행록 4장 6절 참조.
04 교법 2장 5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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