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解冤)으로 본 김유정의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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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01 조회5,614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김영일
소설『동백꽃』은 『봄·봄』과 함께 김유정(1908~1937)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해학적일 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이 작품을 해원(解冤)의 관점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열일곱 살의 점순이는 말이나 행동이 시원시원하고 부끄럼이 없다. 그리고 분하면 그 자리에서 응징하지 눈물을 보이는 성격이 아니다. 이런 점순이가 홍당무처럼 얼굴이 새빨개지고 눈에 독이 오르고, 끝내 눈물까지 어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내민 감자 세 개를 ‘내’가 거부한 것이다. 그것도 갓 구워 김이 나는 굵은 감자를. 아니 사랑을 거부한 것이다. “이웃 사람이 주는 맛없는 음식을 먹고 혹 병이 생겼을지라도 사색을 내지 말라. 오는 정이 끊겨 또한 척이 되나니라.”(교법 2장 46절)는 상제님 말씀도 계시는데, 사랑의 감자를 거부하다니.
점순이와 동갑인 ‘나’는 감자에 담긴 점순이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순진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남의 호의(好意)를 거스르는 것이 … 척을 짓는 행위”01인데, 호의를 알아채지 못해 척을 짓게 된 것이다. 척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점순이의 원한의 감정을 ‘나’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점순이는 감자를 주면서 “느 집엔 이거 없지?”라고 했다. ‘우리’집은 마름02인 점순네 밑에서 농사짓는 소작농이다. 더군다나 삼년 전 마을에 들어왔을 때 집터를 빌려주고 집을 짓도록 주선해 준 것도, 양식이 떨어지면 빌려 먹는 집도 점순네이다. 이렇듯 항상 굽신거리는 처지에서 점순이의 말에 ‘나’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원한의 감정을 낳은 ‘나’의 언동은 점순이가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은 시비(是非)를 초월한다. 원한의 감정이 정당하냐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나로 인해 그 감정이 생겼고, 그것이 나의 앞길을 막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랑이 무시당하자 점순이는 분한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우리’집 씨암탉 볼기를 쥐어박아 알을 낳지 못하도록 하고, 닭싸움을 시켜 ‘우리’집 수탉을 유혈이 낭자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여전히 사랑의 감정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망의 마음만 있다면 ‘내’가 지나가는 장소에서 때맞춰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으로 생각하고, 화가 치밀어 오를 뿐이다.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집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다 ‘내’가 홧김에 점순네 수탉을 막대기로 때려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점순이가 ‘내’ 잘못을 몰아붙이자, ‘나’는 순진하게도 농사짓는 땅도 잃게 되고, 집도 내쫓길 수 있는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얼김에 울어버린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에 빠져 심적(心的)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주의를 준 것은 점순이와의 이성문제이고, 점순네 닭을 죽인 건 변상하면 되는 것이다. 점순이 부모님의 인정 많은 성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척이 작용하여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척을 지은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약점을 잡은 점순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럼, 너 이담부터 안 그럴 터냐?” 묻는다. 이제 자기 마음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거의 협박조다. ‘나’는 그 말의 의미도 모른 채, 살 길을 찾은 듯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행동주의자 점순이는 ‘나’를 덮쳐버린다. 동백꽃 속에 파묻혀 온 정신이 아찔해진 ‘나’는 비로소 점순이의 마음을 알았을까? 어쨌든 점순이의 ‘나’에 대한 원망은 이렇게 풀리게 된다.
“척을 맺는 것도 나요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풂으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되니 … ”라고 하셨다.03 내가 먼저 척을 풀기 위해서는 ‘내가 척을 맺는 것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척을 지은 것조차 알지 못하는 주인공 ‘나’에게 척을 풀기를 기대하기란 애초 불가능했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다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터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담부터 또 그래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터니!”
“그래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 『동백꽃』 중에서
<대순회보>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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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진리회요람』, p.19.
02 마름은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03 『대순지침』,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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