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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완성의 의미를 가진 태양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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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01 조회5,5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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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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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누구나 태어난 출생연도의 십이지(十二支)를 띠로 구분하여 자신만의 ‘띠’를 가지고 있다. 출생과 동시에 주어진 ‘띠’는 서양인이 자신만의 별자리를 가지듯 우리 심성(心性)에 투영되어진 나만의 동물캐릭터(Animal characters)다. 해마다 상징하는 ‘띠 동물’은 바뀌지만, 사람들은 매년 띠 동물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찾아본다. 이는 올해를 대표하는 띠 동물의 긍정적 상징성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의 발로에서 비롯한 것이다. 
  2017년은 육십갑자에서 정유(丁酉)년에 해당하며, 10천간(天干)에서 붉은색을 의미하는 정(丁) 자와 12지지(地支) 가운데 닭을 뜻하는 유(酉) 자가 만나는 붉은 닭의 해이다. 육십갑자에서 계유(癸酉)·을유(乙酉)·정유(丁酉)·기유(己酉)·신유(辛酉) 순으로 돌아오는 닭은 십이지의 열 번째이며 방향으로는 서쪽(西), 시간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月)로는 음력 8월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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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은 민속에서 울음소리로 여명을 밝혀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상서롭고 신비로운 길조로 통한다. 이른 새벽 첫 닭이 횃대에 올라 힘차게 홰를 치고 한바탕 목청껏 울어대면 밝은 태양이 동녘에 타오르고 희망찬 새 아침이 밝아온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닭의 계명성(鷄鳴聲)은 인간의 삶에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보(時報)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도 인간은 오랫동안 닭 울음소리로 시간을 판단하여 생활 활동의 기준으로 삼았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이 새었는지를 알았고, 조상 제사를 지낼 때도 닭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자정이 지난 것을 알고 제사상에 메를 올렸다. 고려 때 왕궁에서는 닭을 일명계(一鳴鷄)·이명계(二鳴鷄)·삼명계(三鳴鷄)의 세 종류로 구분하여 자시(子時: 오후 11시~오전 1시)에 우는 닭, 축시(丑時: 오전 1시~3시)에 우는 닭, 인시(寅時: 오전 3시~5시)에 우는 닭을 함께 길러 그 시각을 알았을 정도였다. 닭에 오시계(五時鷄)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시계처럼 정확하게 우는 닭의 생태적 습성이 상징화된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판단하는 지혜를 가져 예로부터 백성의 시계역할을 한 닭은 축귀(逐鬼)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수탉이 길게 홰를 치고 꼬리를 흔들면 마을에 내려왔던 맹수들이 산으로 돌아가고, 밤에 횡횡하던 잡귀들도 일시에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관련 세시풍속을 찾을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선조들은 정월원일(正月元日)에 닭 그림을 벽에 붙여 액이 물러나고 복이 오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는 대개의 잡귀들이 어둠을 좋아하므로 새벽의 밝은 양기(陽氣)를 알리는 닭을 무서워한다고 여겨 옛사람들이 닭을 액을 막는 수호초복(守護招福)의 동물로 상정했음을 말해준다.
  닭 그림은 정초에 부정한 액(厄)을 막고 복(福)을 부르는 용도로도 사용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입신출세(立身出世)와 부귀공명(富貴功名)의 염원이 담긴 소장물이기도 했다. 이는 닭의 머리 위에 달린 ‘볏’이 마치 장원급제하여 관록을 얻게 되었을 때 쓰는 관모(冠帽)와 비슷하고, 발음 또한 ‘닭벼슬(닭 볏)’과 ‘벼슬’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닭 그림은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선비들이 서재에 걸었던 대표적인 그림으로 손꼽힌다.    
  한편,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孔子)는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기에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 봄에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의 할 일이 없다”01고 말했다. 새벽은 하루의 시작임과 동시에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게 하는 출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울음소리로 새벽을 열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닭이다. 따라서 닭은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마음으로 다지는 결심 즉, 처음에 먹은 마음인 초심(初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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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생활에서 가깝고도 친숙한 동물인 닭은 신화와 문헌에도 많은 기록이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천지개벽을 다룬 제주도 무속 신화 「천지왕 본풀이」에서는 태초의 혼돈상태에서 암흑만이 계속될 때 천황닭[天皇鷄]이 목을 들고, 지황닭[地皇鷄]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人皇鷄]이 꼬리를 치며 크게 우는 순간,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고 그 서두를 풀어나가고 있다. 아마도 닭 울음소리에는 어둠을 쫓고 밝음을 여는 광명(光明)의 의미와, 삿된 것을 내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뜻이 담겨있어 태초의 이미지를 닭 울음소리로 나타낸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로의 이행을 예고하는 것이니, 닭은 그 울음으로 개벽(開闢)의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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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 울음소리는 무속신화를 넘어 건국신화에까지 이어져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예지(預知)의 소리로도 들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따르면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날 때 계룡(鷄龍)이 나타났고,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날 때에도 흰 닭이 계림(鷄林)에서 울었다고 한다. 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미리 알려주는 상서로운 새였던 닭은 이때부터 한국문화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예로부터 우리에게 서조(瑞鳥)로 인식되었던 닭은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 노나라 애공(哀公)때 전요(田饒)가 말한 닭의 다섯 가지 덕이란 머리에는 벼슬인 관을 쓰고 있는 문(文),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 용감하게 싸우는 무(武), 적과 싸워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勇), 먹이를 보면 혼자 먹지 않고 무리를 부르는 인(仁), 밤을 지키면서 때에 맞추어 새벽을 알리는 신(信)을 말한다. 이는 닭이 가진 생태적 습성이지만, 그 습성이 마치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성을 상징하기에 우리의 삶을 다시금 곱씹어 보게 한다.       
  오덕(五德)을 두루 갖추어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닭은 종교적으로도 의미 있는 동물이다. 불교가 체계화되기 이전 붓다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경전 『쌍윳따 니까야(Samyutta Nikaya)』에서는 ‘알을 부화시키는 암탉의 정성’과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 들판을 거닐기까지의 모든 여정’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때 어미 닭이 정성을 다해 알을 품는 것은 수행의 과정이고, 알 속의 병아리가 단단한 껍질을 깨고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은 수행자가 노력하여 성취한 아라한(阿羅漢)의 경지를 뜻한다. 마지막 경지는 열반인데, 위 경전에서 이 단계는 병아리가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와 유유히 들판을 거니는 모습으로 비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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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에서도 닭의 종교적 상징성을 찾을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풍향 닭’이다. 풍향 닭은 유럽 등지의 교회나 성당의 첨탑에 설치된 수탉모양의 풍향계로, 영어로는 날씨(weather)와 수탉(cock)의 의미를 합쳐 ‘웨더콕(weathercock)’이라고 부른다. 유럽에서 교회의 첨탑 끝에 풍향계를 붙이는 풍습은 9세기 중반에 교황의 법령으로 정해졌는데, 이 풍습에는 깨달음과 회개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 유래는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 중 하나인 『누가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예수의 수제자이기도 했던 베드로는 예수가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었을 때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자신과 예수의 관계를 세 번 부인했으나,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자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닭은 서양인에게 깨우침과 인도(引導)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이밖에도 닭이 가진 상징성은 여러 고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회남자』 「천문훈」에서는 닭을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의 유(酉)를 ‘만물이 가득찬 것’으로 표현하였고, 『백호통』 「오행」에서는 ‘모든 것을 수렴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십이지(十二支)에서 닭을 의미하는 유(酉) 자에 만물이 다 이루어져 부족함이 없는 상태는 일정한 기한이나 한도가 극도에 이른 상태[정한(定限)의 극도]를 뜻하며, 이는 곧 완성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여명을 밝혀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고, ‘완성’의 의미까지 지닌 닭은 우리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상제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정유(1897)년 닭의 해에 광구천하(匡救天下)를 다짐하시고 전국 팔도를 유력하신 바 있다. 이는 상극지리에 의해 잘못된 선천(先天) 세상을 뜯어고쳐 삼계(三界)를 구제하기 위한 절대자의 사명과 의지를 표명하신 것이다. 닭의 해[年]는 상제님께서 ‘광구천하의 뜻을 정하신 시점[정유(1897)년]’이기도 하지만 강세(降世) 이후 ‘인세(人世)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완료하신 시점[기유(1909)년 6월 24일]’이기도 하다.
  삼계대권(三界大權)의 주재자이시자 개벽장(開闢長)으로서 광구천하의 시작을 위한 의지를 표명하시고, 천지공사를 종결지어 광구천하의 대역사(大役事)를 완료하신 시점이 ‘닭의 해’라는 것은 닭에 부여된 시작과 완성의 상징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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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극도장

  그런가 하면 대순(大巡)의 역사에서 볼 때 닭의 해[年]에는 다른 해보다 괄목할 만한 상징적인 일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도주님의 봉천명(奉天命)과 상제님의 평천하(平天下)를 이은 도주님의 치천하(治天下) 50년 공부의 시작 및 수도 법방(法方) 완성, 그리고 도전님의 대순진리회 창설을 들 수 있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먼저 도주님께서는 닭의 해(年)인 기유[1909]년에 상제님으로부터 계시에 의해 천명(天命)을 받으셨고02, 만주(滿洲) 봉천(奉天)지방으로 망명하시어 구세제민(救世濟民)할 뜻을 정하신 후 치천하를 위한 50년 공부를 시작하셨다. 입산공부 중에 대순진리에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신 도주님께서는 종통계승 후 종단을 창도하시고 닭의 해인 정유(1957)년 11월에 수도 법방[수도방법, 의식행사, 준칙 등]을 완성하시어 도인들에게 설법하시고 이를 실행에 옮기셨다. 이는 상제님께서 밝혀주신 대도의 참 뜻을 믿고 닦을 수 있도록 수도의 법방을 짜서 일러주신 것이다.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는 기유(1969)년 4월에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신 후 도주님께서 밝혀주신 16자의 종지(宗旨)가 대순진리임을 명명하시고 『대순진리회요람』을 발간하시어 대순진리회의 취지와 연혁, 교리개요 등을 선포하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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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유[1969]년 4월에 발간된 『대순진리회요람』


  대순진리회에서 2017년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완료[기유(1909)년 6월 24일]’하신 지 120년이 되는 해이자 도주님께서 도인의 각종 수도방법과 의식행사 및 준칙 등을 설법 시행[정유(1957)년 11월]하신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천간이 여섯 번, 지지가 다섯 번 순행하여 60년 만에 맞이하는 정유년인 셈이다. 특히, 닭의 해는 도전님께서 상제님의 대순하신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숭신하여 귀의할 바를 삼고자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신 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정유(2017)년 새해를 맞아 우리는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남을 잘되게 하려는 진실된 마음으로 수도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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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명심보감』 「입교편」(孔子三計圖云 一生之計 在於幼 一年之計 在於春 一日之計 在於寅 幼而不學 老無所知 春若不耕 秋無所望 寅若不起 日無所辨).
02 《대순회보》 37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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