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바탕과 영웅의 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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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01 조회5,310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김대현
‘수도(修道)’라는 말에 대한 흔한 인식 하나가 있다. 번뇌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그 사전적 의미를 두고 볼 때 수도는 지극히 마음과 관련된 것으로 비쳐진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성인의 바탕과 영웅의 도략’에 대한 『전경』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러한 인식에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성인의 바탕과 영웅의 도략’은 수도의 완전성 내지는 온전함에 대한 문제를 사색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인(聖人)에 대한 정의는 각 종교나 사상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를 깨우쳐 만물을 향해 그 덕을 실현한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공통된 의미가 있다. 유교(儒敎)에서는 전설적 성군인 요(堯)·순(舜)과 주(周)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마련한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 그리고 유가(儒家)의 스승으로서의 공자(孔子)가 성인(聖人)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예악(禮樂)의 법도로써 인간을 일깨웠고 인의도덕(仁義道德)의 도(道)로써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게끔 했다. 불교에서는 해탈을 향한 사상의 가르침을 전한 석가모니와 그 사상적 이념의 계승 구현자로서의 용수(龍樹), 그리고 자비를 실천한 행기(行基) 등의 인물이 불교의 성인에 속한다. 도가에서는 무위의 도를 전한 노자와 장자 또한 깊은 가르침으로 성인의 풍모를 띠고 있다.
그리고 영웅에 대해서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다. 문학이나 전설 속에서 영웅은 보통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 작품 속 주인공은 보통 왕족으로서 평민들과는 달리 비범한 재능과 강한 힘 그리고 뛰어난 용기를 타고났다. 한 사람의 영웅은 그의 영향이 미치는 공동체 모두의 흥망성쇠를 결정짓고 그의 운명이 곧 공동체의 운명과 동일시 될 만큼의 자질과 대표성을 지닌다. 그리스 문화에서 영웅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에 다가서고자 하는 인물이다. 유한한 삶과 공간의 틀에 운명 지어진 인간이 현실적 한계를 넘어 이상에 다가서는 의지는 영웅을 통해 실현된다. 하나의 영웅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그 개척에의 강렬한 의지를 표상한다. 그것이 그리스 문화가 전하는 영웅의 주요한 특징이다. 또한 철학에서 전해지는 영웅의 모습은 헤겔의 견해를 예로 들 수 있다. 헤겔에 따르면 영웅의 위대함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시대가 인간에게 요구한 사명으로부터 나온다. 역사란 진리에 의해 짜여진 치밀하게 예정된 흐름이며 그 흐름의 요청에 의해 영웅의 출현은 허락되는 것이다. 그 영웅은 윤리적 공동체의 규칙에 속박되지 않는 자율성과 진취성을 얻게 되고 그를 요구한 역사적 상황에 부응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각 내용 간의 다른 점은 있지만 비범한 능력으로 어려움에 처한 인간을 구원하고 이끄는 존재가 영웅이라는 점은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성인과 영웅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에서 성인과 영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성인과 영웅 모두 어려움으로부터 인간을 돕는 구원이라는 공통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인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구원을 실현하고자 하며 영웅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구원을 실현하고자 하는 차이가 있다. 성인의 가르침은 내적인 마음을 향하고 영웅의 능력은 인간을 둘러싼 외적인 환경을 향한 것이다. 성인은 덕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일깨우고자 하며 영웅은 주어진 기개와 능력으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변혁하고자 한다.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여야 되느니라.”는 『전경』 말씀은 이렇게 성인과 영웅이 지향하는 바의 균형 속에 수도의 온전함과 완전성이 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성인의 바탕으로 내적인 마음을 일깨우고 영웅의 도략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개척해 나가는 것은 곧 음양의 조화이다. 내적인 마음과 외적인 환경이 동시에 진리에 합당할 때 인간의 수도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마음에만 치중한 수도는 자기 고립적이며 한계에 이르기 쉽다. 삶의 환경을 이루는 크고 작은 요소에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때 마음은 그 외적 환경의 결핍에 쫓기게 되며 결핍된 만큼 속박의 고통에 갇히게 된다. 서가여래가 수행 과정에서 신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극단적인 수행에서 벗어나 중도를 선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외적인 환경 즉 의식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 삶의 외부적 조건에만 치중한다면 인간은 삶의 바탕으로서의 마음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맑게 마음을 닦고 마음 바깥에 펼쳐진 모든 다채로운 빛깔에 관심을 가질 때 수도는 비로소 음양합덕의 이치 아래 있게 된다. 안과 밖, 마음과 육체는 수행의 진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우리 종단의 사업은 그런 이치와 맞닿아 있다. 포덕·교화·수도의 기본사업과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의 중요사업은 성인의 바탕으로 마음을 닦게 하고 영웅의 도략으로 일을 하게 한다. 깊고 침잠하는 마음의 진심이 바탕이 되고 그 바탕 하에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일과 사업의 추진은 진정한 수도로서 나와 남을 진실로 잘 되게 한다. 종단의 사업이 미치는 영향은 인간의 마음과 외적인 환경 어디에도 소홀한 곳이 없다.
성인과 영웅이 하나의 모습으로 어우러질 때 그 수도는 온전함과 완전성을 얻게 된다. 내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외적으로는 인간 삶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갈 때 인간의 삶은 수도로서 완전해지며 수도는 삶으로서 완전해진다. 성인과 영웅이 하나의 모습이듯 수도와 삶의 모습이 일체화된다면 그것이 곧 대순진리의 생활화일 것이다.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여야 되느니라. (교법 1장 23절)
<대순회보> 1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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