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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和]과 뇌동[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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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28 조회5,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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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송하명

 

  도인들 사이에 화목하여 잘 화합이 되면 그 기운이 가정을 통하여 사회에까지 미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도인들끼리 화합하는 이 마음이 커져 이웃에게 미치고 이웃끼리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줌으로써 척이 풀어지고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것이 뻗어 나가 국가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며 나아가 세계로 뻗어 나갈 때, 상제님의 덕화가 온 누리에 골고루 퍼지게 될 것입니다. (《대순회보》, 4호, 1986. 4. 14)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인 상호 간의 화합이 필수적이다. 도전님께서도 항상 화합을 강조하시며 임원과 수반 간, 방면 간에 화합 단결하여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는 우리 도가 신도(神道)이므로 도인 상호 간에 화합을 이룩하여야 인망(人望)과 신망(神望)을 얻어 상제님의 덕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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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가 일상 수도생활 속에서 화합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종단의 많은 문제도 화합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주장만 내세워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포용하지 못하면서도 같은 뜻을 가진 사람끼리는 어울리면서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화합[和]과 뇌동[同]01의 참뜻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받들기 위해서는 화합과 뇌동의 차이를 통해 화합의 참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고전『국어(國語)』에는, “무릇 화합[和]은 실제로 사물을 산생(産生)하지만, 같은 것[同]끼리라면 아무것도 산생할 수 없다. 다른 것에다 다른 것을 조합하는 것이 화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풍성한 성장이 가능하며 만물이 산생합니다. 만일 같은 것에다 같은 것을 보태는 경우라면 둘 다 못 쓰게 되고 만다.”02고 적혀 있다. 이는 마치 소리가 한 가지라면 들을 수 없으며, 사물이 한 가지 색이라면 무늬가 없고, 만물이 한 종류라면 서로 비교, 검토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또한, 중국의 고전 『좌전(左傳)』에는 안자(晏子, 585~500)03와 제나라 임금이 “화합[和]”과 “뇌동[同]”의 차이에 대하여 논한 내용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제(齊)나라 임금이 사냥터에서 돌아온 뒤, 안자가 천대(遄臺: 제나라의 서울인 임치 근방의 누대)에서 시종하고 있었다. 이때 양구거04가 수레를 타고 도착했다. 임금은 안자에게 말했다.    
  “오직 양구거만은 나와 화합[和]하고 있다.”
  “그도 역시 뇌동[同]하고 있습니다, 어찌 화합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화합과 뇌동은 다른가?”
  “다릅니다. 화합이란 마치 국을 끓이는 것과 같습니다. 물, 불, 식초, 젓갈, 소금, 매실 등을 준비하여 생선과 고기를 요리하는데, 한 사람이 장작으로 불을 때면 요리사는 양념을 합니다. 간을 맞추면서, 부족한 것은 더 넣고 지나친 것은 묽게 합니다. 군자는 그런 국을 먹고 마음을 평정합니다. 군신 관계도 역시 그렇습니다. 임금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그른 점이 내재할 경우 신하는 그 그른 점을 지적함으로써 옳은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며, 임금이 그르다고 여기는 일에 옳은 점이 내재할 경우 신하는 그 옳은 점을 지적함으로써 그른 일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므로써 정치가 평정되어 과오를 범하지 않게 되면, 백성들은 불평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시』에 ‘제사의 탕도 양념이 잘되었고[和] 경건하고 화평스러우니 신령이 응감하여 허물하지 않으면 아무런 다툼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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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자는 여러 맛을 조합시켜 끓이는 국과 군신(君臣)관계에서 직언(直言)을 마다하지 않는 신하의 모습을 화합이라 여겼고, 임금이 옳다 하면 그 역시 옳다 하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면 그 역시 그르다 하며 물에 물 탄 것처럼 줏대 없는 양구거의 모습은 화합[和]이 아닌 뇌동[同]임을 역설했다.
  공자는 ‘화합과 뇌동’에 대해 『논어』에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뇌동[同]하지 않으며 소인은 뇌동하되 화합[和]하지 않는다(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고 자세히 말하였다. 여기서 ‘화[和]’는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를지라도 화합을 위하여 자신의 주관을 견지하면서 상대방의 생각도 존중해줌을 말한다. 그러므로 ‘화합[和]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기에 공존과 평화의 원리이다. 반면에 ‘뇌동[同]’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주관을 버리고 무조건 동화되는 부화뇌동(附和雷同)과 같은 뜻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뇌동[同]의 논리’는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이기에 단지 양(量)적 발전만이 가능한 것이다.
  선천은 허다한 단체가 생겨나 주의·주장이 그치지 않아 국가 간이나 종교 간의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지배와 흡수·합병이라는 ‘뇌동[同]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것은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인류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투쟁과 불화(不和)의 시대였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후천은 상극이 아닌 서로 간의 이해와 관용을 베푸는 상생의 시대이기 때문에 공존과 평화의 원리인 ‘화합[和]의 원리’가 작용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우리의 뜻인 후천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화합’이 필수적이므로 도인 간의 ‘불화’는 있을 수 없다.
  화합의 중요성에 대해 『전경』에 아내와 다투고 구릿골로 찾아온 박공우에게 상제께서는 “나는 독하면 천하의 독을 다 가졌고 선하면 천하의 선을 다 가졌노라. 네가 어찌 내 앞에 있으면서 그런 참되지 못한 행위를 하느뇨. 이제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과 각 가정을 드나들면서 기국을 시험하리라.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여 가정에 화기를 잃으면 신명들이 비웃고 큰일을 맡기지 못할 기국이라 하여 서로 이끌고 떠나가리니 일에 뜻을 둔 자가 한시라도 어찌 감히 생각을 소홀히 하리오.” (교법 1장 42절) 하시며 꾸짖는 구절에서 부인과의 다툼에도 신명이 비웃고 떠나간다고 하셨다. 하물며 수도인 간에 화목하지 못하거나 다툼이 있다면 상제님의 덕화를 바랄 수 있겠는가? 불화에 대해서 상제님의 말씀은 엄중하고 단호하시다. 상제님께서는 “너희들은 항상 평화를 주장하라. 너희들끼리 서로 싸움이 일어나면 밖에서는 난리가 일어나리라.”(교법 1장 53절)라고 하셨다.
  화합은 후천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수도인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과제이다. 어떠한 이상사회도 인간 상호 간의 화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도인은 “교중(敎中)이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지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행록 3장 8절)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에 미루어 세계각지에서 일어나는 재앙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가정화목·이웃화합·사회화합을 통하여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임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현재의 종단은 여러 방면 간의 화합을 통하여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법을 수호하며 도전님의 유훈을 받들어 왔다. 이러한 힘은 한 방면의 힘만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다. 이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주관을 버리고 무조건 동화되어 버리는 ‘뇌동[同]’의 자세가 아닌,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를지라도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화합[和]’의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다. 우리 도인은 서로의 힘과 뜻을 합쳐야 비로소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도전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해원상생의 마음을 잃지 말고 화합하여 상생하여야 한다.

<대순회보>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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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예기』「곡례(曲禮)편 상(上)」, “毋勦說 毋雷同 必則古昔 稱先王(남의 설을 앗아다가 자기의 설이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말라. 반드시 옛 것을 법칙으로 하고 선왕의 가르침을 저울삼아 헤아려야 한다.)” 보통 부화뇌동(咐和雷同)을 줄여서 뇌동이라고 하며 우레가 울리면 만물도 이에 따라 울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고 맹목과 방종으로 일관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말한다.
02 풍우란 저, 『중국철학사(상)』, (서울: 까치, 2003), p.66. “夫和實生物, 同則不繼. 以他平他謂之和, 故能豊長而物生之. 若以同裨同, 盡乃棄矣.”
03 안자[안영(晏嬰)]: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영(嬰)이고, 자는 평중(平仲)이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다. 영공(靈公)과 장공(莊公), 경공(景公) 세 군주를 섬기면서 재상을 지냈다. 사령(辭令)에 뛰어났고, 백성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으며, 근검절약을 실천하면서 충간(忠諫)을 올려 제후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다. 경공에게 세금을 경감할 것과 형벌을 줄일 것, 신하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등을 충고했다. 근면한 정치가로 백성의 신망이 두터웠고, 관중(管仲)과 비견되는 훌륭한 재상이었다.
04 양구거(梁丘據):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이고, 경공(景公) 때의 대부(大夫)이다. 자는 자유(子猶) 또는 자장(子將)이다. 경공의 총애를 받았다.
05 풍우란, 앞의 책,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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