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상생, 평화와 생명의 진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26 조회5,582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김호용
가정화목과 이웃화합을 만들어 나갈 때 서로 상생(相生)하는 사회가 구현될 것이며, 척이 풀려 원(冤)과 한(恨)이 없는 화평(和平)한 사회가 되고 더 나아가 세계평화(世界平和)도 이룩되는 것입니다. 세계평화는 해원상생(解冤相生)이 아니면 이룰 수 없습니다. (《대순회보》, 45호, 2쪽, 「도전님 훈시」)
가정화목·사회화합·인류화평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이다.
해원상생 대도의 참뜻을 전하는 것이 포덕이며, 포덕천하(布德天下)가 되어야 광제창생이 되는 것이다. (『대순지침』, pp.20~21.)
지금은 사회가 다원화하고 세분화함으로써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복잡하게 얽히는 현상이 자주 목격됩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생활합니다. 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화목과 화합이라는 윤리 정신을 익히 알고 있지만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생활 속에서 발휘되려면 화목과 화합의 정신보다 더 근본적인 사상이 바탕을 이루어 전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때 가능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사상이 바로 해원상생입니다. 해원상생이란 서로 간에 맺힌 척을 풀어 원과 한이 없는 화평한 사회를 이루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도전님께서 해원상생이 가정의 화목을 이루고 세계의 평화를 실현하는 진리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 수도인은 수도생활과 포덕사업을 전개해 나가는데 이 해원상생의 정신을 토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수도생활을 함에 있어 해원상생은 도(道)를 배우고 익히며 깨닫는 과정 중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더욱이 도전님께서는 가정화목과 이웃화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상생(相生)하는 사회가 구현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일상에서 해원상생을 몸소 실천하기를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풀어서 생각해보면, 해원상생을 실현하는 수도의 장소가 생활의 터전인 가정에서 시작하여 점차 이웃으로 확대되고 나아가 사회, 국가, 세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실 가정화목은 예로부터 강조되어온 도덕관념입니다. 특히 유교적 전통 사회를 거쳐 온 우리나라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서 보듯 화목은 매우 익숙한 개념입니다. 실로 화목은 일상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는 온종일 영향을 미칩니다. 즉, 가정에서의 화목은 집안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생활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화목의 덕은 가족의 단위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빠르게 변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신분 위계질서가 남성을 위주로 하여 엄격하게 제도화되었으므로 화목의 주체가 가부장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가부장의 심기가 그 집안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열쇠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화’라는 분위기가 남성적인 가부장 중심에서 다양하게 바뀌며 ‘화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어느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인 분위기가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쌍방적인 분위기에서 화목을 생각해보는 식입니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 만족하며 생기 있게 생활하는 분위기를 말합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가족끼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남을 잘 되게 하는’ 해원상생을 실천하면 가능합니다. 부연하면, 가족 간에 권위나 이기주의 혹은 경제적 결핍에 따른 불신 등으로 생길 수 있는 불화를 극복하고 서로 원망하지 않으며 상호이해(相互理解)하는 태도를 실천한다면 화목한 분위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원상생은 현대의 가족 문화에서 자칫 실종되거나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가정의 분위기를 화목하게 하는 중추적인 정신입니다.
이웃화합 역시 가정화목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고도로 성장하고 있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발전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급속하게 변하는 사회 분위기는 더는 전통적 화합의 정신으로 이웃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어렵게 합니다. 언론 매체에서 접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 중 이웃과의 불화에서 비롯된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요즈음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층간소음’에 의한 이웃 간의 분쟁입니다. 이처럼 주거 형태에 따른 불화뿐만 아니라 주차나 금전 거래 등의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형태의 이웃 간의 불화가 있으나 대개 분쟁의 원인은 서로의 소통 부재와 교류 단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권리와 이익은 손해 보지 않은 채 불화의 책임을 남에게서 찾으려 하면 분쟁은 끝이 나질 않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사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서로의 심정이 다치지 않게 하는 배려입니다. 우리는 같은 사실을 겪더라도, 두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면 서로 다른 코끼리가 탄생하듯 자신의 관점과 신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각자의 사실에 대한 주장은 논쟁을 넘어 불신과 불화를 낳고 분쟁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의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배려심입니다. 그 배려는 서로가 서운하게 여길 수 있는 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싹트게 됩니다. 즉, 척을 짓지 않고 푸는 마음을 먹고 그러한 마음을 기르는 부단한 노력이 서로의 불화를 없애고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목과 화합은 전통적인 도덕관념을 극복하고 현시대의 다양한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사상이 바탕을 이룰 때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사상은 지금까지 살펴본 해원상생의 진리입니다. 점점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우리의 정(情) 문화가 메말라가는 지금, 우리 수도인은 해원상생을 배우고 익히며 가정과 사회를 살리는 화목과 화합의 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과 이웃과 정을 나누는 덕은 사회를 살리고 더 나아가 인류를 살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마음에서 미세한 원과 한 그리고 어떠한 척도 남기지 않고 풀어 다시는 척을 짓지 않으려는 해원은 쉼 없는 정성을 기울여야 가능합니다. 이렇게 해원을 실천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수도자(修道者)의 길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욕구를 극복하고 남을 잘 되게 하는 마음을 기르는 과정 또한 상당한 정성을 요구합니다. 상생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진정한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남을 잘 되게 하는’ 해원상생은 실천하면 할수록 그 귀중한 가치가 분명해집니다. 날로 그 가치가 새로워지는 해원상생은 조금의 억울함과 원망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살리는 평화의 정신과 생명사상이 담긴 진리입니다.
이러한 해원상생의 평화사상과 생명사상은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도전님께서는 상제님의 대도의 참뜻인 해원상생을 전하는 것을 포덕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것은 광제창생(廣濟蒼生)하는 길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광제창생은 종교의 본질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생명사상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어떠한 생명도 아끼고 보존하는 호생(好生)의 덕’을 강조하시며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광제창생의 의미에서 포덕은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생명을 중히 여겨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실천이 됩니다. 다시 말해, 평화의 정신과 생명사상이 담겨진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것이 곧 포덕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사랑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양심이 있습니다. 해원상생은 이 양심을 깨우고 길러 움직이게 하고 더욱 건강하게 하는 위대한 진리입니다. 상생 사회를 구현하고 사람들에게서 평화와 생명의 양심을 살려 화평한 세상을 실현하는 진리가 해원상생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평화는 인류 역사상 겪어보지 못한 경험입니다. 해원상생의 실천으로 인류가 화목하고 국가가 화합하여 세계평화가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가 지상에 천국이 건설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해원상생을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은 모두가 함께 실천할 때 더욱 가치 있는 진리가 될 것입니다.
<대순회보> 162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