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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의 발견은 위대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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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26 조회5,3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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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윤미정

  

  하루는 절 마당을 걸어가다가 풀밭에 내던져진 채로 있는 망치 하나를 발견했다. 이미 녹이 슬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그곳에 꽤 오래 버려져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절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은 승복에서 연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힘들게 일하는 신도들이 시주한 것이다. 우리에게 그 망치를 사주기 위해 한 사람의 가난하지만 자비로운 불교도가 몇 주일이나 돈을 저축했는지도 모른다. 그 소중한 선물을 이런 식으로 분별없이 다루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전체 수행승 회의를 소집했다.
  나는 늘 성격이 삶은 콩처럼 무르다는 평을 듣지만, 그날 저녁만큼은 칠리 고추처럼 매서웠다. 나는 절의 수행승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해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었으며,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소유물들을 소중히 간수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내가 일장 연설을 마쳤을 때, 수행승들은 똑바로 앉아서 잿빛 얼굴을 한 채 침묵을 지켰다. 나는 범인이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기를 기대하면서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모두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동료 수행자들에게 크게 실망하고 법당을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풀밭에 아무렇게나 망치를 내던져 둔 수행자가 용기를 내어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었다. 혹시 내가 너무 심하게 꾸짖은 걸까?
  법당을 걸어나가는 순간, 나는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왜 아무 수행승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가를.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법당의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수행자 여러분! 이제 방금 저는 풀밭에 망치를 내던져 둔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지난번에 바깥에서 일하다가 급한 일이 생겨 망치를 그 자리에 두고 떠난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화를 내며 다른 수행자들을 꾸짖는 순간에도 그 사실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일장 훈시를 하고 난 다음에야 기억이 되돌아온것이다. 범인은 나였던 것이다. 오, 이런!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글은 명상으로 유명한 스님 아잔 브라흐마의 저서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 수록된 일화이다.

절, 시주, 스님 등의 불교용어만 빼면 우리 도인의 수기라 해도 믿을 만큼 우리의 수도생활과 닮았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가 종단{道}의 제반시설을 정성스럽게 사용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고 ‘잘못의 발견’에 대한 도주님과 도전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도장과 회관, 연락소의 모든 시설과 살림은 도인들의 정성으로 마련된 것이다. 특히 도장 내의 모든 것은 도인들의 성금(誠金)으로 이루어졌다. 성금은 월 1회 도인들이 심신합일(心身合一)한 정성을 상제님 전에 올린 것이므로 도장 내의 모든 물건과 시설은 상제님의 덕화(德化)로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인들은 도장 내의 제반시설에 상제님의 덕화가 깃들어 있음을 새기며 항상 감사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전기, 물, 비누, 화장지 등의 소모품 절약에서부터 부대시설을 깨끗이 이용하고 도장 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임을 유념해야 한다.
  심리학 이론 중에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 Theory)’01이 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다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범죄 도시’ 뉴욕의 지하철은 대표적 우범지대여서 역무원들이 부스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못 내던 곳이었다. 1980년대 뉴욕시 교통국장 데이비드 건은 지하철을 가득 채운 낙서에 주목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의하면 낙서, 먼지, 얼룩 등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쌓임으로써 범죄의 모태와 온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무려 5년에 걸쳐 뉴욕의 모든 역과 6,000대 넘는 객차를 깨끗하게 청소했더니 지하철 범죄가 75%나 줄었다고 한다.02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의 수도생활도 개개 수도인의 사소한 무절제와 무질서가 오랜 시간 방치되면 도장 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신성성을 훼손하여 상제님과 신명 전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도주님께서는 “인숙무죄(人孰無罪)요 개과(改過)하면 족하니라.”(교운 2장 15절)고 하셨다. 이 말씀은 누구나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죄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고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도전님께서도 잘못을 인정하고 개과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하셨다. “잘못의 발견은 위대한 지식이 되니 상급임원은 위세로 잘못을 덮으려고 하지 말라. 난법난도(亂法亂道)의 시작이 되어 상대의 반감을 유발하리라.”03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잘못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과, 그것을 인정하고 개과하는 일 또한 어렵지만 개과하면 더 발전적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잘못의 발견은 수도인에게 위대한 지식이 된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힘으로 덮으려는 자세는 난법난도의 씨앗이 된다. 난법난도는 스스로를 어둡게 하고 상제님의 덕화를 손상하는 큰 죄이다. 그러므로 난법난도하지 않도록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을 살펴 고쳐 나가야만 한다.
  우리는 잘못을 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못을 발견하기 어려운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위의 스님처럼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잘못된 습성에 길든 탓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어떤 여류 시인의 일화가 있다. 그녀는 인터뷰 녹음을 끝내고 녹음기 끄는 것을 깜빡 잊었다. 녹음기는 배터리가 다 닳도록 그녀가 한 말을 고스란히 담았는데, 나중에 그 내용을 들은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가 자신의 잘못은 없고 남의 허물만 탓하고, 거짓은 물론 진실을 왜곡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엿본 자신의 하루가 이럴진대 평생은 어떨까 싶어 그 후, 『명심보감』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매 순간 상제님 말씀을 새기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도 그녀와 다르지 않을 것이며 어떤 잘못과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여류시인의 이야기처럼 잘못의 발견은 위대한 지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잘못을 개과하면 더 이상 그것으로 인한 죄를 짓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의 발견은 위대한 지식이 된다. 『전경』에 있는 탕자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탕자는 방탕한 생활로 허송세월을 보내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음을 회과자책하고 선학을 배우겠노라 개심(改心)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탕을 알고 그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도장을 짓고 신선으로부터 선학을 배우기에 이른다.04 탕자가 신선으로부터 선학을 배울 복된 기회를 가진 것은 자신의 방탕한 세월을 반성하고 개과하여 바른 길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개과하지 못하면 몸과 운명을 그르치는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특히 자존자만(自尊自慢)에 빠지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자기를 높여 잘난 체하며 뽐내는 자존자만의 씨앗은 누구에게나 있다. EBS의 도덕성 실험05에서 사람은 자신의 도덕성을 실제 자신이 지닌 도덕성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실상과 다르게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습성은 상대적으로 상대방을 낮추어 보게 한다. 조지 엘리엇의 장편소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은 인간의 이러한 그릇된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자신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놓고 타인을 타락한 존재로 낙인찍어서 자신의 잘못을 무마시키고 도덕적 우월감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자존자만은 진실을 가림으로써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어 타인과 자신을 망치는 적이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06
  그럼 잘못된 습성과 자존자만에서 벗어나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 말씀에 비추어 일상 자신을 성찰해 나가야 한다.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말씀은 해원상생(解冤相生)·보은상생(報恩相生) 윤리의 생활화로 귀결된다.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남을 잘 되게 하라”는 진리인 해원상생·보은상생을 실천하려면 먼저 거짓이 없는 무자기(無自期)가 되어야 한다. 거짓은 잘못을 낳게 되고 잘못은 척을 짓게 되기 때문이다.07 무자기와 해원상생·보은상생으로 자신의 언행과 처사를 세립미진(細入微塵)하게 살펴 나간다면 허물이 절로 드러나고 사라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타인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잘못을 발견하지 못해서 운명을 그르칠 수 있기에 타인의 충고나 조언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맹자』에 ‘문과즉희(聞過則喜)’라는 말이 있는데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 주면 기뻐했다.”08고 한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지혜는 부족했으나 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발견하지 못해서 고치지 못하는 허물을 남이 알려주면 기꺼이 받아들였다. 2,500년 전의 자로도 도전님의 말씀처럼 잘못의 발견이 위대한 지식이 됨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도인들 또한 나의 잘못에 대한 타인의 충고가 자신의 몸과 운명을 살리는 길임을 깨닫고 그를 은인과 같이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상에서 소소한 일상생활의 무질서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죄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잘못의 발견은 위대한 지식이 된다는 것, 그리고 잘못을 인식하고 고치기 위한 자세에 대해 언급하였다. 상제님께서 종도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허물을 깨우쳐주신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잘못을 하고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항상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에 가리워진 양심을 회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척을 짓게 된다. 잘못을 인식하더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므로 수도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해원상생·보은상생의 잣대로 일상 자신을 반성하고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예로써 타인을 공경하며 그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허물을 벗고 무욕청정(無慾淸淨)의 경지에 들어가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일보다 기쁘고 값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 말고 조심하라.”(교법 1장 36절)는 상제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잘못의 발견이 위대한 지식이 됨을 깨닫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고 혁신하는 수도인이 되어야 하겠다.

 

 <대순회보>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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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982년 3월,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공동 발표한 이론으로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02 이명진, 「만물상」,《조선일보》 2015. 3. 18.
03 『대순지침』, p.80.
04 교법 3장 16절 참조.
05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제2부. 도덕성.
06 『대순지침』, p.26 참조.
07 《대순회보》12호, 「도전님 훈시」참조.
08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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