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왕자 - 시간의 모래>에서 배운 신뢰(信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25 조회5,182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이공균
‘시간을 뛰어넘는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을 연결짓는 건 태고의 소명, 즉 운명이다.’라는 인상적인 글귀로 시작하는 영화는 주인공인 다스탄 왕자가 시간을 되돌리는 신기한 단검을 손에 넣게 됨으로써 그 신기한 힘을 이용하려는 음모세력에 대항하여 모험하며 겪게 되는 형제의 우정과 신뢰를 그린 이야기다. 신비로운 고대 국가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것과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신기한 힘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하지만 스토리의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서인지 페르시아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하사신(Hashashin)’01 세력의 등장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사신은 암살집단을 지칭하며 마호메트 탄생 이후 이슬람 신비주의파인 시아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의 시대보다 대략 천 년 이상 차이가 나는 시대적 배경을 가진 존재들이 등장함으로써 영화의 몰입도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으나 스크린에 나타나는 화려한 액션과 주옥같은 명대사는 나를 영화에 점점 빠져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중, “형제의 우애야말로 이 제국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라는 황제의 대사가 있다. 이 대사를 듣는 순간 가슴 한편이 나지막이 떨렸다. 대사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주 큰 신뢰를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왕자 삼형제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신뢰에 대한 교훈을 확고히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에게 신뢰란 무엇일까?’, ‘우리 대순진리회에서 신뢰의 중요성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다. 그동안 난 ‘늘 다른 이들을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어. 하지만 전적인 신뢰를 줄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라는 이기적인 핑계로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신뢰를 주지 않으면 다른 이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이라고 수칙을 수백 번을 되뇌었지만 정작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지냈던 그간의 삶에 죄송할 따름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글귀가 마지막까지 긴 여운을 남겼다. 그 글귀에서 ‘소명’을 ‘사명(使命)’02으로 바꾼다면 수도를 하는 우리 도인들에게 더욱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시간을 뛰어넘는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을 연결 짓는 건 태고의 사명, 즉 운명이다.”
『전경』 교법 1장 4절에 상제님께서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고 하셨다. 이러한 인연[淵源]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인연[緣運]이 대순진리회의 선·후각이며, 도통진경에 이르는 데 있어 연원에 대한 사명(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덕목 중 하나가 연운으로 만들어지는 선·후각 사이의 신뢰가 아닐까 생각하고 위 글귀를 인용해 보았다.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대순지침』으로 넘어가 체계 확립과 도통의 진경에 이르는 장으로 이해되었다.
“체계는 도심(道心)으로써 바로 확립되고, 도심은 위아래의 도인들이 서로 믿으며 변하지 않고 신뢰하는 데에 있음을 모든 도인들은 각별히 유의하기를 바란다.”03
“임원들은 수반도인에 대한 교화를 인정이 넘치고, 신뢰가 감돌아 허세를 부리지 말고, 안색은 화기롭게 편안한 장소에서 안정한 시간을 택하여 부담이 없는 대화로써 신앙심을 높여 도통의 진경에 이르도록 계도하는 것이다.”04
『대순지침』에 명시되어 있는 위의 글귀를 본다면 ‘신뢰’란 도심으로 확립되는 체계에 필요한 것이며, 더 나아가 임원이 수반도인을 도통진경에 이르도록 깨우쳐주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덕목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심연성(修心煉性)·세기연질(洗氣煉質)하는 수도인의 자세에서 ‘신뢰’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덕목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페르시아 왕자>에서 ‘형제들의 우애’를 통해 본 신뢰와 같이 선·후각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을 대할 때, 남을 잘되게 하는 마음으로 먼저 배려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연스럽게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순지침』에 명시되어 있는 위 글귀에서 ‘도통의 진경에 이르도록 계도하는 것이다.’고 하신 도전님 말씀과 같이 내 마음이 먼저 도통진경과 같은 천국(天國)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그처럼 이번 영화 <페르시아 왕자>는 나에게 ‘신뢰’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볼 기회를 만들어준 아주 좋은 영화였다.
<대순회보> 158호
------------------------------------------------
01 이란 니자르파의 초대 다이(선교자, 포교자)로, 아사신(assassin) 교단의 창시자인 ‘하산 사바흐(?~1124)’에 의해 세워진 암살교단.
02 맡겨진 임무.
03 『대순지침』, p.63.
04 『대순지침』, p.4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