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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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22 조회4,991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김호용
효(孝)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심청(沈淸)이다. 젖동냥하여 키워준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印塘水)에 자신의 몸을 던졌던 효녀 심청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또 역사상 효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순(舜)임금이다. 순은 자신을 해(害)하려는 많은 시도에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효성으로 끝까지 부모를 공양한 효자다. 심청과 순임금의 부모에 대한 지극한 공경은 오랫동안 효행의 표본으로 그려져 왔다. 효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공경에만 머물지 않고 또한 도덕의 표준으로 확대되어 왔다. 『효경(孝經)』에서 모든 덕의 근본을 효01라 하듯이, 효는 부모뿐만 아니라 자신과 이웃 그리고 그 사회의 마음을 순화하고 밝게 하는 덕성으로 도덕의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즉, 효는 개인이나 그 사회 발전에 꼭 필요한 양식(糧食)02으로 작용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덕성인 셈이었다.
과거 가난하게 살던 시절, 사람들은 생활이 어려워도 이웃과 정(情)을 나누고 서로 예절을 지키며 살았다. 그런데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동안, 우리는 함께 나누는 정과 예절을 지키지 못하고 언제인지는 모르나 잃어버렸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하고 도우며 사는 풍경과 특히 동네 어른이나 선배에게 먼저 인사하고 공경하는 미풍양속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렵다. 더욱 우려되는 현실은 가족 간의 예절이 사라지며 예절의 필요성조차 망각하는 사회의 분위기이다.
물질에 치우치고 돈에 집착하여 무엇이든지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형태를 물질주의나 배금주의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과 돈이 없으면 이 사회에서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그것은 현대를 살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양식이다. 농경 사회에서는 소와 곡식이 꼭 필요한 양식이었듯이 오늘날에는 각종 물건과 돈이 꼭 필요한 양식이다. 현대인들은 물질과 돈에 지배되어 살면서 인간성 상실에 따른 각종 폐해를 경험하여 그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물질적인 요인보다는 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양식은 소홀히 한 채 물질적인 양식만 늘리고 키워오면서 언젠가 물질적 풍요가 더 향유되면 저절로 정신적인 양식이 생성되리라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믿음은 잘못된 믿음으로,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양식은 저절로 때가 되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공을 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저 사과나무도 많은 공을 들여서 사과를 결실하듯이 마음의 양식도 기르고 키우는 정성이 필요하다. 과거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듯이 이제는 마음의 양식을 키우기 위해 혼을 담아 정성을 들여야 할 때이다.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많은 감정 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떠오르는 기억은 부모에 대한 회상이다. 그리고 부모의 주름과 검버섯이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속상해한다. 어린 시절 무한하게 믿고 의지했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디든지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철이 들었다고들 말한다.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편하게 대하다가 남자는 군대를 다녀오면서 공손해지고 의젓해지며 여자는 결혼하여 자식을 돌보면서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사람으로서 사리를 분별하여 예법을 아는 상태를 철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철들자 망령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진정하게 철이 들기는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그리고 존경의 표현인 효는 사람으로 태어나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 마음은 인류의 공통된 마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위적인 학습과 교육을 거치지 않아도 깨닫는 자연적인 인성(人性)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교에서는 부자유친(父子有親)과 부자자효(父慈子孝)03라 하여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 곧 애틋함이 있어야 하고 이와 같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서 효가 자연스럽게 길러진다는 것을 가르쳐왔다. 결국, 효는 우리가 놓치고 지나온,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온정(溫情)으로 사람을 생기 있게 하고 사회를 생동감 있게 하는 마음이다.
상제님께서는 이 세상에 충효열(忠孝烈)이 사라짐으로써 병이 들었다고 진단하셨다.04 효가 인간에게 귀중한 요소 중의 하나임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또한, 도전님께서는 가정화목과 이웃화합을 자주 훈시하셨으며 가정화목과 이웃화합을 이루려면 경위가 바로 서야 하고 그 경위는 인간의 도리를 다함에 있다는 가르침을 내리셨다. 가정의 화목을 이루기 위한 근본적인 도리는 그 무엇보다 ‘효’라 할 수 있다. 근본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말단도 마침내 사라지듯, 오늘날 인간성의 상실로 볼 수밖에 없는 많은 사회 문제도 인간의 근본 도리인 효를 망각하여 발생하였다05고 말한다. 이것을 바꿔 생각하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하는 요소가 효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효가 도덕적 원리에 머무르거나 교육적인 주장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효를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 매일 마음먹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마음의 양식으로 효를 깨닫고 나면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효의 공부와 실천은 지금까지 사회윤리 또는 인간의 자각을 배경으로 하여 구하는 양상이었으나 그보다는 신앙생활과 연결될 때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리라 본다. 다시 말해 효를 살리고 실천하는 행위가 신앙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면 자신의 박약한 의지를 극복하고 일상에서 효를 행동으로 옮기게 되리라 기대한다. 신앙생활은 몸이 부지런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이 더욱 부지런해야 지속할 수 있는 실천적인 생활이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은 매일 하루를 시작할 때 훈회와 수칙을 낭독한다. 그 내용 중에 삼강오륜의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이 있다.06 삼강오륜의 도덕은 주지하다시피 효를 근본으로 하는 도덕의 강륜(綱倫)이다. 이처럼 종교적 신념으로 도덕을 실천하고 효를 되새긴다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덕성인 효는 금방 살아나 현대적인 새로운 도덕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효는 예로부터 모든 행동의 근본이자 근원이라고 했다. 상제님께서는 사람이 복을 구하는데 그 어떤 행위보다 효도하는 데 있음을 말씀하셨으며,07 도전님께서는 ‘보은상생(報恩相生)은 인도(人道)의 대의(大義)가 되며 대도(大道)가 된다.’08는 훈시를 하셨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는 복을 구하는 행복의 첩경이자 은혜를 깨닫는 첫걸음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다. 즉, 효는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들, 이웃들, 직업, 국가, 자연에 대하여 은혜를 발견하는 눈을 뜨게 하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를 밝게 하는 마음으로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양식(糧食)임을 깨닫는다.
대순진리회의 한 수도인으로 효의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 도덕은 종교를 초월해서, 민족과 나라를 초월해서 실천해야 현재의 도덕 상실에 따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효를 과거에나 가능했던 사회적 기능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도덕은 인류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꼭 함께 실천하기를 기원한다.
<대순회보> 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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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효경(孝經)』,「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夫孝 德之本也 敎之所由生也”(무릇 효(孝)란 모든 덕(德)의 근본이고, 교화가 모두 그로 말마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02 ①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 ② 지식이나 물질, 사상 따위의 원천이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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