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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常識) 너머의 사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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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03 조회3,8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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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백경언

 

  옛날에 늦도록 아이를 못 가진 나무꾼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산에 올라갈 때마다 무리지어 나는 새를 보면 ‘미물도 자식을 낳아 저렇게 무리지어 사는데…’ 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지게의 무게도 예전 같지 않게 버거워지던 어느 날, 홀로 나무를 하다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숲 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타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나무꾼을 인도하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얼마나 따라갔을까, 깊은 숲 속 작은 샘이 있는 곳에 가서야 파랑새가 멈췄다. 보기에도 수정 같은 샘물이 나무꾼을 기다리듯 조용히 솟아나고 있었다. 신비한 기운에 싸여 손을 모아 한 모금 떠 마시고 나니 온몸이 편해지며 잠이 쏟아졌다.   

  기분 좋게 얼마를 잤을까? 새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일어서니 웬일인지 무겁게만 느껴지던 나뭇짐이 짚단을 진 것 마냥 도무지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한걸음에 집에 도착한 나무꾼은 심한 허기에 배가 고프다며 부인을 찾았다. 커다란 목소리에 놀라 문을 연 할머닌 남편의 옷을 입고, 딱 남편이 하는 말투로 자신에게 밥을 달라는 멋진 젊은이를 보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할머니는 남편에게 희한한 일이 일어난 걸 알고, ‘그 샘이 착한 남편을 도와 젊음을 찾게 했구나.’ 하며 기뻐했다.
  다음날 부부가 산에 올라 샘을 찾으니 이번에도 파랑새가 반가이 맞아 샘물로 안내했다. 부인도 정성스레 손을 모아 한 모금 마시니 어제 남편처럼 잠이 쏟아졌다. 한숨을 푹 자고 일어나니 아름답기가 선녀와 한가지였다.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하여 부부가 숲속 샘 이야기를 전하자, 어떤 이는 말도 안 된다 하고 어떤 이는 유심히 들었다.
  어느 날 동네에서 홀로 살며 늙어가는 것을 대단히 한탄하던 노인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동네방네 찾았으나 노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젊은 부부와 동네 사람들이 혹시나 하여 숲 속 샘을 찾아갔더니 노인네의 옷 속에 어린애만 울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놀라면서 이래저래 모두 원을 풀었다고 축하했다.
  아이가 읽는 동화책 속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처럼 샘물을 먹고 젊어진다면 얼마나 기쁘고  놀랄 일인가?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무시당하고 폐기(廢棄)될 이야기다. 상식이라는 울타리 안에 한걸음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야기 책 속에 가두어 먼지만 소복이 쌓이게 할지 모른다. 상식 너머의 일들에 대하여 우리는 상당히 매몰찬 면이 없지 않다.
  우리는 상식의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상식은 분명히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고, 보편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교양이라는 질서로 안심을 준다. 이것은 현 사회구성원이 꼭 갖춰야 할 기본소양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이것이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거나 그 너머의 사실들에 대하여 배타적 자세를 취하게 하는 면도 적지 않다. 이는 이미 형성된 보편적인 사고가 새로운 사실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던 과거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수를 처단한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이 그랬었고,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에 대해 가톨릭이 그랬었다. 율법사들은 당시 사회를 유지하던 상식에 가장 정통했던 사람들이었고, 지동설을 주장한 브루너에게 화형(火刑)을 선고한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상식 너머의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지극히 상식적이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심판자가 되어 처단의 칼을 뽑아 들었다.
  오늘날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그래서 상식이라는 범주에 들어온 많은 내용 중 이렇게 모진 통과의례를 치르고 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실 상식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 지식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사람이 알아도 아는 게 없다는 말을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물리학 입장에서 그 앎의 정도를 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물리학에서 밝혀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로 구성된 보통물질은 우주의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암흑에너지(74%)와 암흑물질(22%)이다. 암흑에너지(dark energy)란 파악이 된 에너지의 이름이 아니다. 암흑(dark)이란 말 그대로 ‘모른다’라는 의미로 붙여진 용어이다.  모든 물질이 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는 물질들의 중력에 의해 수축해야 하는데 실상 그렇지 않다는데서 나온 개념이다. 우주는 관찰결과 물질들이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질 뿐 아니라 계속 팽창하고 있으며 그 팽창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이 현상은 강한 반발력인 척력(斥力)이 작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우주 안에 있는 물질들의 중력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어떤 힘이 존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그 어떤 힘을 암흑에너지라고 한 것이다. 또 전자기파를 복사하지 않아 육안(肉眼)은 물론 적외선이나 자외선 탐지기로도 관측되지 않고, 오직 중력적으로만 관찰되는 물질을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 한다. 이 존재 역시 파악되지 않은 실체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지식 너머의 일이다. 이처럼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부분은 전체의 4%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것이다. 이것이 지식의 바탕이며 상식을 이루는 재료가 되고 있다.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만을 전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들어 멀쩡히 날던 새떼가 갑자기 죽어 떨어지는 등 상식으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고래들의 죽음도 실은 그러하고,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지만 벌떼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재해도 터졌다 하면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둘러보면 어수선하고 한편 막막하다. 전문가들도 제대로 대책을 내놓을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이고 보면 상식은 실로 어느 때보다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가운데 앞서 봤던 젊어지는 샘물이야기는 엉뚱하기도 하지만 신선한 청량감을 준다. 현대문명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도깨비 이야기, 신선·선녀 이야기, 판타지 영화 등은 정말 상식 너머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가 무얼까? 이러한 이야기들은 분명 우리 세상이야기가 아니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펴서 지어낸 이야기로만 보기엔 너무 생생하고 사실감이 있다. 어쩌면 오감(五感)으로 인식할 수 없는 상식 너머의 일들이, 어떤 통로를 통해 그 조금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인들은 신선(神仙)을 본 사람도, 되어 본 사람도 없는 이러한 상식의 세상에서 신선(神仙)이 될 수가 있고 도통(道通)이 될 것이라는 말을 전(傳)하고 있다. 분명 상식 너머의 일처럼 들릴 내용이다. 그러니 상식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이 손 내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眞)·선(善)·미(美)의 이데아적 상태라 할 수 있는 신선은 불가능이 아니라 인간이 나아가 다다르게 될 궁극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상식으로 갇혀 있던 사고의 틀을 깨고, 이데아를 향한 그리움과 열망이 있다면 인생의 목적으로 그보다 큰 것이 없을 것이다. 포덕(布德)이 인연(因緣)의 연줄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순회보》 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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