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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신(六丁神)’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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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상미 작성일2020.07.01 조회6,6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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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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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도주를 흠모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므로 태인에 갑자년 四월에 도장이 마련되었도다. 도주께서 밀양 종남산 세천에서 보시던 둔 도수를 마치고 도장에 돌아와 치성을 올리시니라. 치성을 끝내고 칼을 자루에서 뽑아들고 육정신을 외우시면서 보두법을 행하고 종남산 세천에서 공부할 때 써놓았던 여러 글종이를 불사르셨도다.

                                                                                                                       (교운 2장 29절) 

 

 

  위의 『전경』 구절에 나오는 육정신(六丁神)01과 1925년 도주님께서 제민사업으로 간석지를 개척하시기 전에 부안 변산에서 부르신 ‘육정신’02 을 이해하기위해 동아시아 문화에서의 육정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육정신은 도교 신의 명칭으로 육갑신(六甲神)과 함께 육정육갑신장(六丁六甲神將)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먼저 육정신을 언급하기 전에 육정육갑신장을 알아보자. 육정육갑신장은 십이신장을 음과 양으로 나누어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조합한 신으로 육갑신은 양신(陽神) 또는 남신(男神)으로 갑자(甲子)·갑술(甲戌)·갑신(甲申)·갑오(甲午)·갑진(甲辰)·갑인(甲寅)의 여섯 간지를 담당한다. 육정신은 음신(陰神)으로 여신(女神) 또는 옥녀(玉女)이며, 정축(丁丑)·정묘(丁卯)·정사(丁巳)·정미(丁未)·정유(丁酉)·정해(丁亥)의 여섯 간지를 담당한다. 이 육정육갑신장은 옥황상제를 비롯한 천상계의 신들이 역병 퇴치나 잡귀 토벌 작전을 시작할 때 따르는 천계 직속 군대의 신장을 대표한다.03 

  육정육갑신장의 기원이 명확하게 기록된 것은 없지만 ‘십이지’라는 개념이 중국의 은대(殷代)에 비롯되었다가 방위나 시간에 대응된 때가 한대(漢代) 중기로 추정되므로04 육정육갑신장 또한 이와 유사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육정육갑신장의 주요 역할은 북두칠성을 다스리는 진무대제(眞武大帝)05의 휘하로서 우레와 바람을 부리며 귀신을 제어하고, 사계절과 24절기를 관장하며 사람에게 길흉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래서 도사들이 재초(齋醮) 의식을 할 때 항상 부적을 써서 육정육갑신장을 소환하여 그 신들에게 마귀를 몰아내 주기를 청하였다고 한다.06

  중국 문헌 중에서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의 기록에 따르면, 재계(齋戒)한 연후에 육정신을 소환하면 “멀리 있는 사물에 이를 수 있고 길흉을 알 수 있다.”07 고 되어있다. 후한 시대 명제(明帝, 28~75)의 아들인 양절왕(梁節王, ?~98)은 일찍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꿈을 점쳤다고 한다.08  한국 문헌 중에서는 고려 시대 문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저서 『동국이상국전집』 41권에 거란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육정신에게 기도하는 초례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09

  조선 시대 정승이었던 정탁(鄭琢, 1526~1605)의 『약포선조유묵(藥圃先祖遺墨)』은 임진왜란 당시 정탁이 국난의 극복을 위해서 법술, 부록, 주문, 수결, 기문둔갑과 육임(六壬) 등 중국 병가(兵家)와 도교로부터 비롯된 각종 술법을 기록한 서적이다. 이 책에는 전쟁을 수행하는 뇌신을 불러 신병(神兵)으로 제련하는 방식이 서술되어 있다.10 그 방식은 육정육갑신장을 비롯한 각종 신의 호칭을 부르고 주문을 염송하면서 보두법을 행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임진록(壬辰錄)』의 국립도서관 소장본에는 김응서가 도술로 일본을 물리칠 때 “육정육갑을 외워 신장을 불렀다.”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임진록』 백순재 소장본에는 사명당(四溟堂)이 “사해용왕을 불러 육정육갑을 외우고, 방석을 타고 물 위에 떠 선유하니”라는 내용11이 있을 정도로 육정육갑신장은 전쟁에서 이기고자 했던 장군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서 심심치 않게 소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육정육갑신장에서 육정신의 여섯 신장의 명호는 경전마다 다르다. 대표적으로 2가지를 비교하면, 도교 경전 모음집인 『도장(道藏)』의 「영보육정비법(靈寶六丁秘法)」에는 “정축 옥녀 이름은 문공, 정묘 옥녀는 문백, 정사 옥녀는 정경, 정미 옥녀는 숙통, 정유 옥녀는 문경, 정해 옥녀는 문통이다.”12라고 되어있고, 『홍연진결(洪烟眞訣)』13 에는 “정축은 간월, 정묘는 노등대, 정사는 사택, 정미는 천하동, 정유는 산광자, 정해는 왕량붕이다.”라고 되어있다.14 이 외에도 『황정경(黃庭經)』15 에 나오는 육정신의 여섯 명호와도 다르지만, 육정신이 인간의 길흉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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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정육갑신장은 통일신라 시대의 분묘에 쓰인 12지 신상(神像)과 동일하며 인간이 죽어서도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무덤에 침입할 수 있는 부정한 것을 막는 일종의 벽사부로 사용되었다.17  육정신의 모습은 장사(將師) 차림의 수두인신(獸頭人神)으로 묘사되는데 해당되는 동물(소, 토끼, 뱀, 양, 닭, 돼지)의 정기를 빌어 둔갑한다.18 정축신은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으로 수리지권(水利之權)을 맡고, 정묘신은 토끼의 얼굴로 구천(九天)의 뇌화지권(雷火之權)을 맡으며, 정사신은 뱀의 얼굴로 천병지궁(天屛之宮)을 수호한다. 정미신은 양의 머리로 무찔러 사로잡는 역할을 하고 정유신은 닭의 머리로 장군을 참(斬)하고 성채(城砦)19를 끊으며, 정해신은 돼지의 머리로 순리대로 일을 처리하면 돕고, 거슬리면 벌을 주는 역할을 한다.20 그리고 조선 시대 왕실의 가례(嘉禮)나 흉례(凶禮) 때에 이러한 모습의 육정신을 기(旗)에 그려 안녕(安寧)과 무사(無事)를 빌기도 했다.21 

  이처럼 동아시아에서의 육정신은 도교적 유래를 갖는 신으로 민간에서도 숭배의 대상이었고, 조선 초기에는 국가에서 제사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육정신은 여신으로 방위로는 남쪽과 불을 상징하면서 신력을 발휘하는 신격으로 육갑과 함께 군사적 역량을 가진 신장(神將)으로 개념화된 둔갑신이다.

 

 

 

 

 

01 『전경』에는 ‘육정신’ 또는 ‘육정신장’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글에서는 같은 의미로 혼용하여 썼다. 

02 교운 2장 34절 참고.

03 마노 다카야, 『도교의 신들』, 이만옥 옮김 (파주: 들녘, 2001), pp.48-49 참고.

04 신준호, 『한국민속대사전』 (서울: 민족문화사, 1993), p.948 참고.

05 원시천존의 화신이자 분신으로 현천상제(玄天上帝)라고도 한다. 원시천존의 명령으로 귀신을 정벌할 때 육정육갑신장과 함께했다. 송나라 시대 이전에는 현천상제가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다스리는 신이었으나, 송나라 이후 옥황상제로 대체되었다. 그가 귀신 토벌을 할 때 잡은 귀신이 현무였으며, 북방 칠수(七宿)를 담당하므로 주로 검은 색상의 이미지에 칠성검을 지니고 있다.

06 김승동, 『도교사상사전』 (부산: 부산대학교출판부, 2004), pp.1068-1069; 쫑자오펑[鍾肇鵬], 『도교사전』, 이봉호 외 4인 옮김 (서울: 파라아카데미, 2018), p.677 참고.

07 『후한서』, “可使致遠方物, 及知吉凶也.”

08 쫑자오펑[鍾肇鵬], 앞의 책, p.677 참고.

09 “… 오직 우리 신명(神明)의 조화는 황홀하게 행하시므로 대지(大地)를 흔드는 것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오악[五岳: 태산(泰山)·숭산(崇山)·형산(衡山)·화산(華山)·항산(恒山)]을 옮기는 것도 무겁게 여기지 않으시거든, 하물며 이 완악한 오랑캐쯤이야 번개 같은 노염을 번거롭게 할 것도 못되고 잠시 영부[靈符: 신령스러운 부적(符籍)]만 빌려 주시더라도 땅에 가득한 비린내를 확 쓸어 버릴 수 있음이겠습니까 …”

10 박종천, 「임진왜란시 도교 술법(術法)의 수용 양상」, 『종교와 문화』31 (2016), pp.104-109 참고.

11 김탁, 『한국의 관제 신앙』 (서울: 선학사, 2004) p.112.

12 “丁丑玉女名文公, 丁卯玉女名文伯, 丁巳玉女名庭卿, 丁未玉女名叔通, 丁酉玉女名文卿, 丁亥玉女名文通.『도장(道藏)』10, (상해: 문물출판사, 상해서점, 천진고적출판사, 2005), pp.749-750 참고.

13 1918년에 이장훈(李章薰)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기문법(奇問法)이 적힌 저서.

14 “丁丑澗越, 丁卯爐登代, 丁巳沙澤, 丁未天河洞, 丁酉山光子, 丁亥王梁朋.” 김우재, 『신고 홍연진결정해』 (서울: 명문당, 2011), p.154 참고.

15 중국 위(魏)·진(晉) 시대에 구성된 초기 도교의 경전(經典)으로 양생(養生)과 수련(修練)의 원리를 담고 있다.

16 조철휘, 「符籍과 呪文으로 行하는 修行方法論」(공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4), pp.49-51 참고.

17 조철휘, 같은 글, p.6 참고.

18 김승동, 앞의 글, p.1068 참고.

19 마을, 읍, 소도시 등 거주지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요새다. 유사시 도시 방어의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 조철휘, 앞의 글, pp.46-49 참고.

21 『세종실록』132권에는 “대가를 인도하는 것은 먼저 부령이며 … 다음은 주작기ㆍ청룡기가 각각 1개씩 왼편에 있고, 백호기ㆍ현무기가 각각 1개씩 오른편에 있으며, 황룡기가 중앙에, 금·고가 중앙에 있다. … 다음은 육정기가 좌우로 나누어 서고 … (導駕 先部令 … 次朱雀靑龍旗各一 在左 白虎玄武旗各一 在右 黃龍旗居中 金鼓居中 … 次六丁旗分左右 … )”라고 하여 행사 때 육정기를 어디에 배치했는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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