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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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지윤 작성일2018.12.11 조회5,606회 댓글0건본문
부여방면 선무 정지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한 소설가가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 캐나다에 사는 한 남성을 찾아간다. 그 남성은 찾아온 소설가에게 자신의 어렸을 적 있었던 이야기를 해준다. 그렇게 영화는 소설가와 파이라고 불렸던 한 남성의 현재와 그의 어릴 적 이야기인 과거가 계속 교차해나가면서 진행된다. 파이의 어릴적 이야기는 동물원을 하는 파이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동물들을 배에 싣고 캐나다로 떠난다. 그러다가 폭풍우를 만나 배가 좌초되고 동물들과 가족들을 모두 잃는다. 이 이야기는 살아남은 주인공 파이가 사나운 벵갈 호랑이와 작은 구명보트에서 표류를 하게 되면서 파이와 호랑이가 아슬아슬하게 구명보트 위에서 같이 살며 생존해나가는 이야기를 작가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곳곳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함축적으로 내포되어 있어 좀 어려운 영화였지만, 종교적 신념이 강한 한 사람의 이야기,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 공생과 소통의 이야기, 믿음을 통해 얻는 것 등 여러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요소가 풍부하게 담겨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에 대하여 대순진리를 신앙하는 종교인으로서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파이가 이름으로 놀림 받던 일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했던 장면이다. 파이는 자신의 본명 ‘피신 몰리토 파텔’의 ‘피신’이 오줌싸개를 뜻하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더는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하여 ‘파이(π)’라는 별칭으로 불러주길 주장한다. 매 수업시간마다 묵묵하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고 마지막 수학 시간에는 결국 원주율 3.14 이하의 무한한 숫자를 정확하게 나열하기에 이른다. 원주율의 숫자를 칠판에 끊임없이 나열하는 파이의 모습과 눈빛에서 왠지 모를 결의가 느껴졌다. 이런 어린 파이의 행동에 감탄했다. 비록 나이가 어린 파이이지만 무슨 일이 닥쳐와도 극복해 낼 것 같았다. 이후로 피신 파텔은 자신을 ‘파이’로 완벽히 각인시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파이로 칭하게 하였다. 초등학생인 어린 파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놀림 때문에 울거나 소심하게 주눅 들지 않았다. 또한, 시시하게 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극복했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원동력이 되어 훗날 227일이 넘는 시간 동안 배에서 표류하면서 유일한 생존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이 장면이 더욱더 와 닿았다. 비록 지금은 내가 가는 길이 험난한 길이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이지만, 내가 상제님을 믿는 그 마음을 굳게 믿는 것만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 번째로 동물원에서 기르던 동물들과 함께 캐나다로 향하던 파이의 가족들은 예상치 못한 폭풍우를 만나고, 구명보트에 살아남은 파이는 그 속에서 리차드 파커라는 벵갈 호랑이와 하이에나, 오랑우탄,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함께 어색한 공존을 시작한다. 솔직히 각기 다른 그들이 배라는 좁은 한 공간에 남게 되었을 때, 난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없을 거로 생각하였고 그 생각은 현실로 나타났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을 하이에나가 공격하고 그 광경을 반대하는 듯한 오랑우탄도 하이에나가 죽인다. 그러자 텐트 밑에 숨어 있던 뱅갈 호랑이가 하이에나를 죽인다. 결국, 호랑이와 주인공인 파이 둘만 보트에 남게 되는데 파이는 뗏목을 만들어 호랑이가 있는 보트로부터 떨어져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난 이 순간 그렇지 적자생존!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태평양 한가운데 표류하는 구명선 위에서 과연 어떻게 생존할까? 라는 생존의 문제와 리차드 파커(벵갈 호랑이)를 어떻게 쫓아낼까? 라는 공존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안겨준 이 상황은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파이는 책자를 통해 생존 법칙을 익히고 종교적 신념에 의해 채식을 하던 그가 살아남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먹음으로써 생존의 문제는 해결된다. 그리고 리차드 파커가 물고기를 잡으러 배 위에서 뛰어내린 순간 배를 차지한 파이는 공존의 문제도 해결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파이는 파커를 바다 한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배 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리처드 파커와 소통을 하기 위해 파커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절대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둘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난 이 장면에서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아!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를 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면서 소통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거구나. 후에 파이는 작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저는 리차드 파커가 없었으면 살지 못했을 거예요. 난 파커을 보면서 긴장했고 그 녀석을 돌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었어요.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즉 리처드 파커를 먹이고 길들이는 것이 그에게는 삶을 놓지 않게 해주는 끈이었고, 파커가 있었기에 공포심을 가지고 자신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내 머릿속에 공존이 아니라 상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여러 번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첫 번째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면에서 파이는 신이 오셨다고 경배하였지만, 다시 폭풍우를 만나게 된 파이는 어려움만 닥치는 자신의 상황에 좌절하며 하늘에게 왜 이러한 시련을 주느냐고 절규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난 “의심을 하는 동안 믿음을 테스트할 수 있다.”라는 영화 속 대사와 함께 그 시련에 대한 답을, 상제님께서 어느 날 종도들에게 일러주신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내릴 때,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근육과 뼈를 고통스럽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몸을 빈궁하게 하고 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한다. 이는 바로 그 마음을 움직여 성질을 참아 하지 못하는 일도 할 수 있게 더해 주고자 함이다.”라는 「맹자」(孟子) 한 구절01에서 찾았다.
“의심 하는 동안 믿음을 테스트할 수 있다.”라는 대사를 해석하자면 종교에 대한 믿음이 그 누구보다 굳건하다면 웬만한 시련과 고난 역경이 닥쳐도 종교에 대한 믿음은 굳건할 것이고, 종교에 대한 믿음이 높지 않다면 내가 이 종교를 정말 믿고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신은 우리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을 크게 쓰고자 할 땐 우리의 의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험한다. 이것은 각자가 가진 성질을 인내하게 하여 하지 못하는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위의 세 가지 장면들을 통해 나에게 가장 큰 주제로 다가온 것은 ‘믿음’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상대방에 대한 믿음, 그리고 종교에 대한 믿음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작가가 파이에게 이 이야기의 결론은 해피엔딩이냐고 물을 때, 파이는 ‘이 이야기는 당신의 것이고 당신이 믿기에 달렸다’며 상대방에게 결론을 맡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질문은 영화 속 작가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던져진 물음이다. 즉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 지는 나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대순회보>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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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贐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행록 3장 5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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