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산 기적이 보여준 희망 합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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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병무 작성일2018.12.10 조회5,627회 댓글0건본문
구의10 방면 선감 류병무
칠레 광산의 이야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지난 8월 5일, 광부 33명이 산호세 광산 갱도 중간 부분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로 약 70만 톤의 암석과 토사가 흘러내리면서 지하 약 700m 지점에 갇혔다. 반전의 희망이 보인 것은 대다수 광부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으나 매몰 17일 만인 8월 22일 ‘피신처에 33명이 모두 생존해 있다’고 적힌 쪽지가 탐침봉에서 발견되면서부터이다. 이때 이들의 생존 사실이 처음 알려졌고, 전 세계의 이목이 칠레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2010년 10월 13일 0시(한국시간 13일 낮 12시), 칠레의 33명 매몰 광부들 구출작전이 개시 되었다. 광부 33명이 지하갱도에 갇힌 지 69일 만이다.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감동을 안겼던 주인공들을 맞이하기 위해 전 세계 1,700여 명의 취재진이 칠레 북부 코피아포 인근 산호세 광산에 몰려들었다.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칠레 정부가 우리 시간으로 14일 9시 55분 마지막 매몰 광부인 작업 반장 ‘루이스 우르수아’를 지상으로 구조해 22시간만에 33명의 광부를 모두 구조하는 데 성공하였다. 1970년 아폴로13호의 승무원 3명이 파손된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와 영웅처럼 절뚝거리며 땅에 발을 내딛는 장면을 전 세계인이 숨죽여 지켜봤을 때처럼 이번에도 전 세계가 칠레 광부들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르수아를 태운 구조 캡슐이 지상으로 올라오자 이를 지켜보던 칠레 시민과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얼싸안고 감격적인 33인의 생환을 축하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적을 꿈꾸고 기적을 바란다. 하지만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奇跡’이라고 한다. 즉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나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당사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즉 기적은 그것을 믿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기적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이요, 기적을 바라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기적의 감동 드라마에는 한 사람이 아닌 많은 주인공들이 있었다. 칠레 광산 기적의 스토리를 만든 인물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다. 칠레 광산 구조 작업을 내내 지켜본 피녜라 대통령은 “우리는 전 세계에 헌신과 노력, 희망에 관한 모범을 남겼다”면서 “칠레의 가장 큰 보물은 구리가 아니라 광부들”이라고 말했다. 이번 구조 작전에는 광산 기술자와 구조 전문가, 의료진 등 250여 명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첨단기술이 동원됐고, 작업 비용으로 2천 200만 달러(약 247억 원) 이상이 투입됐다. 이러한 막대한 인원과 장비 자금 등을 투입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 약속을 결국 지켜냈다. 대참사로 끝날 수 있었던 칠레 광산 사고를 오히려 국가단합의 계기로 전환시킨 것은 모든 일을 앞서서 이끈 그의 리더십의 결과라고 본다.
둘째, 로렌스 골본 칠레 광업부 장관은 33인의 매몰 광부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무사히 구조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산호세 광산 붕괴 17일 만인 8월 22일 광부들의 생존이 확인된 이후 그는 줄곧 현장에 머물며 ‘산 로렌소’란 작전명이 붙은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구조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골본 장관은 차기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전혀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영웅들은 광부 33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01
셋째, 지하 광산에 갇혀 있는 광부들을 탐침봉을 이용해 찾아낸 지형학자 마카레나 발데스이다. 30세의 젊은 여성이 - 여자는 불운을 불러온다는 미신 때문에 - 구조현장 주변에 있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 속에서도, 약 30여 차례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기적적으로 광부들이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발데스는 “이들을 찾는 작업은 마치 700m 거리에 있는 모기를 맞추려고 산탄총을 쏘는 것과 같았다”면서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은 작업조장 루이스 우르수아(54)이다. 갱도가 무너진 날부터 33명의 광부들이 지하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 전 17일 동안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남은 식량을 적절히 나눠주며 규율을 유지한 ‘큰형’ 우르수아 덕분이었다. 그는 구조작업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광부들이 48시간마다 한 번씩 스푼 2개 분량의 참치와 쿠키 반 조각, 우유 반 컵으로 버티도록 했다. 우르수아의 지도력은 자칫 비극이 될 가능성이 컸던 매몰 사고를 희극으로 바꿔놓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번 사태의 최종 마무리를 하겠다며 마지막으로 지상에 올라가길 자원했다. 지상에 나온 그는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라고 말했다. 극한 상황조차도 긍정으로 바꾸는 그의 정신은 다른 동료들에게 큰 희망이 됐을 것이다. 또 그는 “구조대에 감사드립니다. 칠레와 여기에 있는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칠레인이며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라고 하며 자신의 구조에 힘써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들 외에 구조 캡슐을 타고 가장 먼저 지하로 내려가 광부들의 지상행(地上行)을 도운 구조대원 마누엘 곤살레스, 그리고 직경 5인치의 보급통로를 통하여 의료품과 의약품을 전달한 의료진들, 그들에게 음식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신 분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지켜 봐주신 국민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만약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노력이 부족했다면 기적은 일어났을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어떤 영화나 그 어떤 스포츠도 이처럼 감동을 주기는 어려우리라. 단지 죽을 뻔했던 사람들이 살아서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을 한 뒤에 얻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신이 쉽게 주신 결과물이기보다는 노력의 결과로 어렵게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적은 많은 이에게 변화를 주었다. 올해 2월 말 발생한 강진과 지진·해일, 최근 발생한 매몰사건 등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이 칠레인들에게 생겼다. 즉 이번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칠레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 하나 된 힘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로드리고 힌스페테르 칠레 내무장관이 “이번 사건은 비극이었지만 이번 구조는 칠레의 국혼을 일깨웠다”고 한 말이나 피녜라 대통령이 “당신도, 우리나라도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한 말들은 이러한 칠레인들의 변화를 나타내준 단면이라 생각한다. 이제 그들은 바뀔 것이다. 아니 이미 바뀌었다. 어려움을 극복한 자신감으로 칠레가 하나로 뭉친 것이다.
수도를 하다보면 어려움이 온다. 그 어려움이 점점 커지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조차 희미한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그들이 절망을 선택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33인이 선택한 것은 희박해 보이기만 하는 희망이었다.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했기에 기적을 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우리 수도인은 도통이라는 확실한 출구가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면 스스로 출구를 막아버리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수도인이 될 것이다. 칠레 광부들이 주는 교훈은 희망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또한 많은 주인공들이 기울인 노력은 한 사람만의 힘이 아닌 각자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경』에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예시 50절)라고 이르신 구절이 있다. 상제님께서 수도를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은 수도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노력해 가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라 보여진다. 또 방면이라는 연운 체계를 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도도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와 역할, 체계 안에서 서로 도와가며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때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칠레 광산의 기적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합주곡이었다. 전세계를 감동시킨 대단히 아름다운 희망의 힘을 담은 오케스트라였던 것이다.
<대순회보>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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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중앙일보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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