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시원을 찾아서(Ⅱ) : 바이칼호 여행기(제1회 유라시아역사문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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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소연 작성일2018.11.28 조회6,431회 댓글0건본문
잠실9 방면 선무 주소연
러시아의 알프스, 아르샨
7월 18일 닷째 날, 이번 답사의 하이라이트인 아르샨으로 향했다. 여행 전 자료를 통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2015년 한 민간연구단체에서 이 아르샨이 바로 단군조선의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이라는 증거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직은 더 많은 탐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이번 발견은 현재의 서구적 관점에 치우친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르샨으로 가는 버스에서 김정민 씨의 설명을 들었다. 아르샨은 러시아의 알프스 산이라고 불리는데 우리말로는 ‘약산’이라고 한다. 이 산의 산신령이 약산의 맑은 물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한다. 가이드는 이곳 백악산에 단군상이 3곳에 모셔져 있다고 설명했다.
아르샨은 이르쿠츠크에서 약 5시간을 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부리야트 공화국 내에 있다. 자치국 경계에 들어서자 버스가 어느 작은 건물 앞에 섰다. 부리야트 공화국에서 우리 학회팀의 방문을 위해 준비한 환영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행사는 이번 답사의 가이드이자 한국인으로서 현지에서 25년간 사업을 해온 김 사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마련된 것이었다. 부리야트 전통 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우리를 위한 합창 공연을 해주었고, 이어서 말젖 시음회가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우리는 우산을 쓰는 것도 잊은 채 아이들과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오후 3시경에야 도착한 아르샨 국립공원 초입에는 하얀 산신령이 모셔진 곳이 보였다. 가이드는 이 산신령이 바로 ‘단군’이며, 투르크 말로 ‘탱그리’라고 한다. 여기에서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같이 온 무속팀의 함흥굿 공연을 현지인들과 함께 관람했다. 주변에는 곰 3마리 조각상도 있고 인디언풍의 장승과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만 보던 순록이 돈을 내고 타는 용도로 나무에 묶여있다. 뭔가 단군신화가 떠오르는 곳이었다. 순록을 보다가 생각해 보니 어제 민속촌에서 본 눈썰매와 연결이 된다. 단군신화도 그렇고 루돌프 사슴 이야기도 혹시 이곳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민족을 포함한 알타이-투르크계 민족은 순록유목민이었다고 한다.
공연이 길어지자 우리 팀은 아르샨에서 유명하다는 약수를 뜨러 갔다. 길목에 있는 시냇물에는 또 다른 하얀 산신령 사당이 있다. ‘단군’일 수도 있는 이 하얀 산신령은 현지 말로 ‘약사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이 산신령 앞에 흐르는 물로 눈을 씻으면 눈이 환해지고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약수가 흐르는 아르샨 계곡
위로 걸어 올라가니 사람들이 수돗가에서 물통에 물을 담아간다. 이 물이 몸에 좋다는 탄산수라는데 맛이 고로쇠 물맛과 비슷하다. 다소 생소한 맛이라 이 물보다는 옆에서 거대한 장관을 연출하며 흐르는 계곡 물을 떠 가기로 했다. 저 멀리 높은 백악산 자락을 타고 폭포처럼 물이 내려와 방대한 계곡을 이루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니 물이 얼음장같이 차다. 결국 몇 초를 못 버티고 물병의 반도 못 채우고 나오고 말았다. 투명한 물속으로 보이는 돌들도 하나같이 맑고 깨끗하다. 물이 내려오는 두 개의 백악산 봉우리 사이로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태고의 전설이 살아있는 이 백악산 자락에서 오래전 이곳에 머물렀을 우리 조상들의 발자국을 느껴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물을 떠서 내려오는 길목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가게 주인들은 외모가 아까의 부리야트인과는 조금 다르게 약간 아메리카 인디언 같은 분위기가 있다. 기념품은 늑대 이빨 목걸이(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은 늑대의 후예라고 일컫는다) 등의 액세서리 외에도 단검, 전통 양모 신발 등이 있다.
▲ 아르샨의 곰 3마리 조각상
또한, 나무에 묶을 수 있는 색깔 리본도 판다. 말이 통하지 않아 어떤 의미냐고 묻지는 못했다. 하얀 산신령이 모셔진 이곳 아르샨뿐만 아니라 부르한 바위가 있는 알혼섬, 바이칼호 일대의 도로변에는 어디든 신을 모시거나 신성시되는 곳은 나무나 기둥에 오방색 천들이 감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산의 나무들에도 여러 색깔의 리본이 묶여있는데 사람들이 리본을 나무에 묶으며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의 무당이 오방색 옷을 입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김정민 씨의 설명에 따르면 오방색은 무지개색을 나타내며, 예로부터 무지개나 은하수는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로 보았다.
저녁 7시경 백악산 아르샨을 떠나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아르샨에서 나오면 보이는 마을 이름이 ‘작두 마을’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고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샤먼 지도자들과 사람들이 풍요로운 고원지대인 이 백악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런데 인구가 폭증하자 부족들을 새로운 개척지로 내보내면서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를 어기고 다시 돌아오는 자들은 이 마을에서 작두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 이름이 작두 마을이 된 것이다. 여기서 더 가면 한 길로 된 높은 언덕길이 나오는데 가이드 말로는 여기가 원조 ‘아리랑 또 다른 샤먼의 성지라는 곳을 찾아갔다.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해서 사원 입구 매점에서 유료로 고개’라고 한다.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이 언덕을 넘으며 ‘아리랑’을 불렀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아르샨 근처에 있는 ‘아사달 하우스’에서 밤을 보냈다.
치우의 전설이 살아있는 최초의 라마교 사원
7월 19일 여섯째 날, 가장 오래된 라마교 사원이자 빌려주는 고무줄 치마를 바지 위에 입고 들어갔다. 입구의 정문은 단청이 되어 있고, 본전 건물은 여러 가지 색으로 되어 이국적인 풍모를 보인다. 200년 전 이곳에 불교가 들어와 라마교 사원이 지어졌을 때 원래 여기 있던 샤머니즘의 유적들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여 샤먼의 성지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 치우천왕의 얼굴
여기서 인상 깊게 본 것은 치우의 얼굴이 그려진 커다란 나무 원통과 세계 최초의 칠성각과 그 안에 모셔진 ‘천마를 탄 탱그리(Tengri)’ 벽화였다. 이 나무 원통에는 구멍이 있어 고대에 샤먼들이 불을 피워 의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에는 한국치우학회장이 계셨는데 나중에 발표하신 내용에 따르면 치우는 배달 나라의 14대 환웅이며, 현재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분리해 놓은 남방 묘족 30여 갈래의 공동시조이다. 또한, 치우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응원단체인 붉은 악마의 상징이다. 치우 천왕의 얼굴이 주로 무서운 괴물처럼 표현되어 온 것은 당시 중국인들이 치우 천왕이 보유한 철제무기와 화공술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01
▲ 천마를 탄 탱그리
최초의 칠성각에 모셔진 벽화에는 ‘천마를 탄 탱그리’가 그려져 있다. 탱그리는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등 중앙아시아의 언어로 하늘을 의미한다. 한문으로 의역하면서 ‘단군’이 되었다. 불교사원이라서 그런지 이 그림에서 말을 탄 탱그리의 얼굴이 부처같이 생겼다. 천마는 은하수나 무지개처럼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로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따라서 천마를 탄 탱그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자, 즉 제사장 또는 샤먼킹을 나타낸다고 한다. 고대의 왕은 무당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아사달 평원과 알탄 문다르가
라마사원에서 나와 근처 식당에서 러시아식 소고기 갈비탕과 빵을 점심으로 먹고 알탄 문다르가로 향했다. 알탄 문다르가는 백악산 일대 산봉우리 이름이다. 나무가 없는 무엽산으로 피라미드처럼 생긴 이 산은 전 세계 피라미드의 시원이라고 한다. 아르샨도 그렇지만 이 알탄 문다르가도 구름에 가려 사람들 눈에 띄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이날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맑은 날이었는데도 흰 뭉게구름이 산을 완전히 가려 보이지 않았다. 산신(山神)이 우리를 반기시지 않나 보다 하며 아쉬워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고 해서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20여 분을 걸어갔다. 하지만 결국 구름이 걷히지 않아서 나중에 버스에서 가이드가 예전에 휴대폰으로 찍어놓은 사진을 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이 일대가 아사달 평원이다. 답사 자료에 따르면 위성에서 보면 이 평원이 비파형 청동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청동기 문화의 주역인 알타이-투르크계 민족이 이 평원 모양을 본따 만든 검이 비파형 청동검이라고 한다. 이 칼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인류가 퍼져나가 문명이 발달하였으며, 이곳을 쭉 이으면 이집트 피라미드와 만나게 된다. 또한 이 지역의 인구가 증가해 새로운 개척지로 가게 된 부족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처음 한 일이 고향 산의 모양을 따라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이었다. 최고(最古)의 피라미드가 중국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러한 주장들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1회 유라시아역사문화학회
7월 20일 일곱째 날, 학회는 이르쿠츠크 과학기술대학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경까지 진행되었다. 각 참가자의 발표도 10분 이내로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오전 발표 전, 이르쿠츠크 과학기술대학교 학장과 현지 총영사의 인사말에 이어 예술팀의 가야금 산조 연주와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가 공연이 있었다. 러시아 측 발표는 통역이 너무 간단해서 자세한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르쿠츠크가 한국 공산당이 결성된 곳이며, 러시아 문학이 한국에 전해진 배경도 이곳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측의 발표는 몽골국립대 김정민 씨의 <한국의 고조선과 카자흐스탄 주스의 공통점과 역사적 연계성>으로 시작하였다.
“조선이란 명칭은 특정 민족의 국가 명칭이었다기보다는 유목민족의 통치 시스템을 부르는 일반명사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선과 유사한 발음을 국가의 별칭으로 사용한 북방민족들은 샤머니즘, 반농반목, 신정정치, 기마문화, 국가의 삼분할 통치 등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고대 국가에 대한 인식은 한민족 중심의 단일민족국가라는 개념보다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였다는 전제하에 접근하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학회 장면
김정민 씨는 현재의 민족 사관으로 고대의 왕조 사관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특정 민족 중심이 아닌 통합적 시각을 가지고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 앞으로 세계가 한 가족으로서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후 한국 측 발표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고대 ‘연맹’형 국가체제 연구시론> - 박정학 한국치우학회장
<한국 천신숭배의 전개양상 시론> - 이복규(서경대학교)
<유라시아 한민족 온돌문화의 기원과 변천에 관한 소고> - 김준봉(북경공업대,
사단법인 국제온돌학회장)
<농업 혁명과 유라시아 문화 벨트> - 이민화(KAIST)
<한국 신화적 상상력과 유라시아로드> - 이창식(세명대)
<의학적 관점으로 본 인류 역사> - 강자헌(경희의대)
<여진족 왕조의 민족구성과 동북아시아 문화교류> - 권인호(대진대)
<조선말기 강증산의 역사인식에 관한 연구> - 고남식(대진대)
<유라시안의 이상향은 어디인가> - 이상준(인천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유라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론과 새로운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특히 대진대학교의 고남식 교수는 <조선말기 강증산의 역사인식에 관한 연구>에 대한 발표를 통해 상제님의 ‘신명해원 공사’와 조선에 대한 ‘상등국 공사’로 인해 앞으로 조선이 최고의 문명국이 될 것을 밝혔다. 대순진리가 종교적 진리를 통해 역사 문화적 측면에서도 합리적 연결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 학회를 마치며
학회를 마치고 이르쿠츠크 시내를 걸어서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안가라강이 가로지르는 이르크추크 시내는 유럽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이제까지 차만 타고 다니다가 직접 걸어 다니며 구경하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시내의 찻집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지나가던 식당에 불쑥 들러 만두처럼 생긴 러시아빵 ‘피로그’도 먹고,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을 보며 길가에 앉아 있으니 러시아가 더욱 실감 나게 느껴졌다.
일정의 마지막은 이르쿠츠크시립 공연장에서 우리 예술팀의 마지막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공연장 입구 간판에는 한국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가 걸려있고, 옆 골목에는 ‘김치’라는 한국 식당도 보였다. ‘가야금 산조’와 ‘함흥 굿’ 공연을 현지인들도 흥미롭게 관람하고 참여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자와 관람객이 다 같이 무대에 올라가 강강술래를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일정을 마치고 다음 날 새벽 6시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몰려오는 피곤함과 이제 편안한 집으로 간다는 안도감 속에서도 뒤로 멀어지는 시베리아와 바이칼 호수가 벌써부터 아쉽고 그립다. 다음에는 겨울에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하 30도의 겨울에 3~4미터까지 얼은 바이칼 호수 위를 걸으면 물속이 다 보인다니 기대가 된다.
단군조선의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일지도 모르는 아르샨, 여기가 인류의 고향이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피라미드산 알탄 문다르가와 청동검 모양의 아사달 평원 등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일부의 주장이긴 하지만 가슴 설레는 이야기임이 확실하다. 곤륜산은 티베트 히말라야 산인데 여기서 뻗은 산자락의 기를 타고 공자, 예수 등의 성인들이 나셨다고 들었다. 강증산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시루산도 그 한 자락인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등은 우리가 전설이라고 부르는 동서양의 수많은 이야기가 사실은 천문 현상에 대한 동일한 내용을 서로 다른 이야기로 서술한 것임을 알려주었다. 또한, 말로만 전해지는 ‘풍씨’와 ‘염제신농씨’의 이야기, 단군신화를 비롯한 여러 신화는 어쩌면 결국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태곳적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학회와 답사를 통해 얻은 것이라면 퍼즐을 완성할 조각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희미하지만 어원상 ‘12제국’을 뜻한다는 시베리아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생긴 것, 유라시아대륙이란 관점에서 역사와 문화를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앞으로 더 밝혀야 할 것이 많다는 과제가 생겼다.
상제님께서 박람박식이 가장 무섭다고 하셨다. 많이 보고 많이 안다는 것은 내 관점 즉 시야를 넓힌다는 의미와 같다. 이제까지의 상극의 역사 또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좁은 시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점이 넓어지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힘들기도 했지만 큰 의미가 있는 경험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새로운 탐구의 시도들이 많아져서 더 큰 관점에서 이제까지 풀리지 않았던 역사적 문제와 민족 간 갈등이 해소되기를 바란다.
<대순회보> 187호
<참고문헌>
김정민,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서울: 글로벌켄텐츠, 2016.
유라시아역사문화학회 창립기념 및 5개국 초청 러시아국제학술대회 제1집
「[아시아문화 원류를 찾아서-몽골 브럇트] 바이칼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광주일보》 201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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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김정민,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서울: 글로벌켄텐츠, 2016), p. 27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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