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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에 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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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아 작성일2018.04.27 조회5,8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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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9 방면 평도인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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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보던 동화책에 ‘에밀레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신라 시대 봉덕사에서 종을 만들려고 하니 자꾸 실패하더라. 종 만드는 장인(匠人) 부부가 정성을 다하기 위해 자기 아이를 쇠 녹인 물에 넣어 종을 만들었다더라. 그랬더니 기가 막힌 소리의 종이 완성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종소리에서 아이가 ‘엄마, 엄마’ 하며 우는 소리가 들려서 에밀레종이라고 불렀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다른 책에는 봉덕사의 한 스님이 시주할 곡식이 없는 가난한 아낙의 아이를 시주 대신 데려와 종 만드는 데 인신 공양으로 바쳤더니 완성된 종에서 ‘에밀레…’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내용도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사람을 넣어 종을 만들면 종에서 ‘에밀레…’ 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막연히 무서워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종소리를 들었다. 당시 살던 마을 어귀의 작은 교회에서 치던 종소리였다. 교회 현관 옆으로 송전탑처럼 생긴 종루가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 매달린 종을 목사님은 꼭 새벽 5시쯤 치곤 해 단잠을 깨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크지도 않은 종이었는데 덩그렁~덩그렁~ 종루 꼭대기에서 울리는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 온 마을을 흔들어대던지 이불을 푹 뒤집어쓰며 목사님은 왜 잠도 안 주무시고 종을 쳐대느냐고 원망한 적도 있었다.

 

요즘이야 교회에서 새벽종을 치면 득달같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을 테고, 저녁 준비할 때쯤 딸랑딸랑하며 지나가던 두부 장수를 못 본 지 오래되었으며, 학교 종도 수업 끝나는 시간이면 알아서 울리는 디지털 방식으로 교체되었으니 종소리 듣기가 참 어려워진 시대가 되었다. 기껏해야 연말에 구세군 모금원의 손에서 울리는 작은 종소리나 33번 타종한다는 제야의 종소리 정도만 겨우 들을 수 있을 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변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고, 들을 기회도 많지 않았던 종소리를 지금은 수시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도에 몸담게 되면서 도장에 들어오면 언제라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장의 종소리는 참 신기하다. 언제 울렸는지 몰랐다가도 문득 긴 여운으로 남아 귀에 파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들려오는 종소리는 틀림없이 대원종의 소리이다. 대원종의 소리는 가까이서 들으면 일정한 간격으로 우웅 하는 맥놀이가 심장까지 두드리고, 멀리서 들으면 호수 표면에 퍼지는 파문처럼 뎅~ 하며 길고 은은한 소리의 조각들이 내가 있는 곳까지 밀려온다. 낮에 울리는 대원종 소리는 여유롭다.

몇 년 전, 신생활관에서 빨래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땐 세탁기는 없고 탈수기만 있던 때라 전부 손빨래를 했었다. 한낮에 빨래를 널면서 들었던 대원종의 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여 빨래 때문에 아픈 팔의 고통도 잠시 잊고 망중한의 여유를 즐겼던 기억이 있다.

 

반면 축시에 듣는 종소리는 차가운 밤공기에 섞여 더 대차게 들린다. 영대 뒤쪽 초소에서 수호를 서면 산속이라는 서늘함 때문인지 느닷없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그때 들려오는 축시의 종소리는 ‘아, 여긴 도장인데 무서울 게 뭐람?’ 하며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담대한 종소리이다. 대원종에는 상제님의 덕화가 널리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데 그 종소리를 들으면 짜증이나 무서움도 다 날아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상제님의 덕화가 아닌가 싶다.

 

도장의 종소리는 대원종 뿐만이 아니다. 《동그라미》 16호에 따르면 대원종 같은 종은 물론이고 방울도, 탁(풍경)도 모양과 사용법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뿐 다 종이라고 한다.

 

치성 날 영대 배례 드리려고 본정에 시립하면서, 공부자 대기실에서, 강식 대기하면서, 사시기도 모시러 영대로 오가며 가장 많이 듣는 종소리가 영대의 처마 끝마다 매달린 탁의 소리일 것이다. 바람이 잔잔하면 영롱하게, 바람이 거세면 거친 소리를 내는 탁은 푸르스름한 청동의 빛깔이 바랠 만큼 오랜 시간 거기에 매달려 있으며 기도를 모시는, 공부 대기실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도인들의 밀려오는 잠을 깨워주었을 것이다.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수도인도 오는 잠 적게 자며 태을주를 감으라고 말하려는 듯 물고기 모양의 탁은 부지런히 바람에 흔들린다. 절대 바람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온전히 바람에 자신을 내맡기는 탁을 보면 도문에 들어왔으면서도 도의 진리와 법방대로 하지 못하고 내 생각, 내 고집에 자꾸 흔들리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공부는 그야말로 잠과의 싸움이다. 새벽 시간, 잠이 마구 밀려들 때면 정심원 내수 대기실에서 청계탑 방향의 창문을 살짝 열어 창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새벽 공기로 잠을 깨운다. 언젠가 숭도문 앞 정내가 짙은 효무에 휩싸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밀려드는 엄청난 안개를 보며 ‘저쪽은 분명 신명계일 거야.’ 하는 생각을 할 때 55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한 치 앞도 분간 안 되던 새벽안개가 삽시간에 걷히는 장관을 보면서 종소리에는 엄청난 기운이 있을 거라 믿었다.

 

정시 5분 전을 알리는 종은 숭도문 앞에 있다. 대원종보다 작으니 소리도 멀리까지 가지 않고, 청아하고 가볍게 울린다. 30초 간격으로 4번 쳐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우리 도인들은 공부 교대 전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초소 근무 교대를 하기도 하며, 기도 전 심고에 온 정성을 쏟기도 한다. 1년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씨가 추우나 더우나 매 시각 1초도 어긋남 없이 시간을 알려주는 이 종소리는 운수 마당까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여 끝까지 따라가야 하는 도인들의 모습과 가장 닮은 것 같다.

 

도장의 종소리는 도장의 배경과 같아서 특별히 인지하지 않아도 그 시간 그 장소에 늘 존재한다. 그래서 늘 편안하다. 언제라도 도장에 갈 일 있으면 정시 5분 전에, 진술축미 시간에, 아니면 바람 소리 따라 들리는 도장의 종소리를 느껴보라 하고 싶다. 도인들에게 이 모든 도장의 종소리 중 어떤 종소리가 가장 듣기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상상해 본다. 아마도 정심원 수도실에서 열심히 주문 감다 문득 들려오는 바로 그 55분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말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며 혼자 살짝 미소 지어 본다.

 

 

<대순회보 2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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