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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복지재단에서 1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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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안수 작성일2018.12.17 조회6,1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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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실 실장 전안수
글 편집 출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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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에 불이 난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바쁘게 생활해온 대순진리회 복지재단 영양사로서의 1년. 1년이라는 시간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걸 겪었고, 지금의 자리에서 얻은 값진 경험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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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음식을 처음으로 조리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에 혼자서 계란찜을 시도한 것이 내 인생의 첫 요리였다. 엄마가 하시던 걸 눈여겨 봐왔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경찰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많게는 2년에 두 번 정도 다른 지역으로 인사발령이나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의 발령 탓에 어머니는 한 달에 며칠씩 아버지를 만나 뵈러 집을 비우곤 하셨다. 어머니가 부재중이실 때 집안 살림은 셋째인 내가 고스란히 맡게 되었다. 그것이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나와 요리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로 어머니는 마음 놓고 집을 비우셨고, 당연히 한 달에 몇 번은 우리끼리 살림을 살아야 하는 줄 알고 살았다. 그 생활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어머니는 90 가까운 연세에도 손수 밥을 지어 아버지를 봉양하시고, 반찬 만드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가끔은 우리 반찬도 해 주시고 있다. 음식 솜씨뿐만 아니라 어머니께서는 다방면에 손재주도 많으셨고, 마음 씀씀이 또한 예나 지금이나 늘 고우신 분이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경찰 공무원 생활을 하시며 수십 년간 책무를 다하시고 정년 퇴임하셨다. 그만두시는 순간까지도 청렴하시고 바른 생활을 실천하셔서 공무원 사이에서도 모범적인 사람으로 불리는 분이셨다. 이런 아버지의 바른 생활태도 덕에 한번은 우리 가정에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아버지의 공무원 재직시절, 두 분이 잉꼬부부처럼 한번도 다툼 없이 사시는 걸 보고 상사 부인이 장난을 쳤단다. “당신 남편 요즘 매일 늦게 들어오지? 아마도 딴 살림을 차린 것 같다”라고 하면서 잘 지켜보란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한두 번 이야기할 때는 아니라고... 우리 아이들 아빠 그런 사람 아니라고 했지만, 주위에서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니 어머니께서도 “진짜 그럴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셨다고 한다. 주위 사람의 말이 꼬리를 물고 들려오자 어머니께서는 매일 늦은 시간에 귀가하시는 아버지를 실제로 의심하기도 하셨다.  이에 어머니께서는 퇴근하신 아버지를 붙잡고 당신 요즘 매일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느냐고 물으셨고, 아버지께서는 ‘일이 있으니까 늦지’라며 한마디로 일축하셨다. ‘혹시 여자가 생겼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도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고 그냥 잠자리에 드셨고, 아버지의 의심스러운 행동에 어머니는 밤을 꼬박 새우고 고민한 끝에 아침에 출근하시는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정직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못 보내준다고 매달린 적도 있었다. 사건이 이쯤 되자 아버지는 아예 바지를 벗어 던지시고 “난 오늘부터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꼼짝도 안 할 테니 당신이 나가서 돈 벌어라. 식구들 먹여 살려라.”고 하시며 자리에 누우셔서 꼼짝도 안 하시고 누가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는지 당장 가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큰일 났구나 싶어 상사 부인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분은 웃으면서  “두 분이 하도 사이가 좋아서 장난 좀 친 건데 그렇게까지 됐느냐” 하면서 아버지를 찾아뵙고 두 분이 무릎을 꿇고 ‘다시는 쓸데없는 말 하지 않을 테니 용서해달라.’고 빌고 빌어 일을 마무리 짓고는 회사로 출근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 후로 엄마는 두 번 다시 아버지에 대해 오해나 의심을 한 적이 없었고, 아버지도 약주는 좋아하셨지만 늘 한결같이 청렴하고 정직하게 91세이신 지금까지도 한번의 흐트러짐 없이 잘 살고 계신다.
  그런 두 분 덕택에 우리 육 남매는 남한테 손가락질받고 살아보지 않았으며, 그 공덕으로  우리가 도문소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형제들은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서로가 노력하고 있다.
  음식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여기까지 늘어졌다. 어려서부터 음식에 관심과 취미가 있어서 어른이 되면 멋진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요리사가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조리사 자격증을 따 놓은 것이 지금의 이 자리에 오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도장 전수원과 자영업, 단체급식, 일반 음식점에 이르기까지 음식과 관련된 많은 경험을 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복지재단 일을 하기 위해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먼 길을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습하고 무더웠다. 여름이면 조리실 온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 더위와 씨름하기 일쑤였다. 등줄기에서는 도랑물이 흘러내리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몸에는 땀띠들이 자리 잡았다. 땀이 마르고 나면 염전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힘들거나 덥다고 짜증 내는 사람 없이 지난 여름을 이겨냈다.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며 매사에 헌신하는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는 조리장 식구들이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 나아가 대순진리회 복지재단은 종단의 3대 중요사업 중에서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이기에 그곳에서 조리를 담당하고 있는 우리는 이곳의 모든 시설과 병동, 센터의 환자와 직원들을 위해 위생은 물론 친절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자 더욱더 노력할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늘 행복 속에서 살고 배불리 먹고 지내 그것이 몸에 배면 고맙고 감사함은 잊고 살기 마련이다. 가끔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보며 매사에 감사하고 현재의 자신보다 성장할 수 있는 수도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이곳은 나보다 타인을 위해 종사하는 서비스 정신이 요구되는 곳이다. 따라서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이 더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남을 잘되게 하려는 마음가짐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복지재단 조리실을 위해서 음으로 양으로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신 임원진 분들과 복지재단에 계신 모든 분, 그리고 수도인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진심견수 복선래(眞心堅守福先來)
  상제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대순회보> 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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