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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바로 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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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희 작성일2018.12.03 조회5,5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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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방면 선사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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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바로 본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나는 현실 세계와 괴리감을 느껴왔다. 세상 자체가 너무나 낯설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낯설었다. 그래서 늘 관찰자처럼 살아왔던 듯하다. ‘낯섦’은 두려움도 수반하였다. 학교란 세상도 낯설었지만, 학교 졸업 후 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 역시 나에게서 저만치나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삶의 모습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로 생각되지 않았다. 다람쥐가 쳇바퀴 속에서 계속 바쁘게 돌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남들은 다 적응 잘하고 사는데 나만 왜 이럴까란 생각도 종종 하였다. 저 먼 별에 살다가 이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딘 것 같은 심한 낯섦, 그리고 허무함….
  이런 무료하고 덧없어 회색빛 같던 하루하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주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휴학까지 단행하였다. 동양의 여러 경전들이나 영성과 관련된 책을 읽고,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여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진리를 찾느라고 나름 구도(求道)하던 중 입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각자들로부터 교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현상이 뚜렷이 생겼다. 내 앞에 두 가지의 현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상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선각자들의 교화를 들으면 “그래, 이게 진짜 현실이야!”란 생각이 들다가도 헤어져서 일상생활로 돌아가 2~3일이 지나면 “수도인들이 말하는 얘기는 ‘이상(理想)’일 뿐이고, 공부하고 시험 보고 졸업해서 취업하고 돈 벌어야 하고…. 이것이 진짜 현실인 거야.” 이 두 생각이 몇 개월간 계속 교차·반복되었다. 무엇이 진정한 현실인지…. 나의 짧은 지혜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는 것처럼 너무나 갑갑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이었다. 어느 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서서 손잡이를 잡고 바깥풍경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도 닦으려고 이 세상에 왔구나!”  

 

  가짜 나에게 눌려 마음 깊은 곳에 갇혀 있던 진짜 나의 외침이련가!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세포가 전부 잠자다 깨어난 듯, 죽었다 살아난 듯 순식간에 훑어내리듯 전기가 통하는 것이었다. 마음과 몸 전체가 개운해지면서 버스 창으로 보이는 바깥풍경까지 갑자기 밝아졌다. 태양이 하나 더 뜬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나 뿌듯했다.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이 나를 감싸면서 눈물이 살짝 고였다. 난 드디어 삶의 의미를, 내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찾고자 염원했던 삶의 의미를, 삶의 목적을. 여태껏 이상이라고 여겼던 것이 참 현실이고, 참 현실이라고 여겼던 현실은 단지 내가 만든 허상이었음을. 현재의 이 육신의 시간만을 가지고 나 자신을 볼 것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된 몸으로 나를 보고 사람들을 보고 세상을 보아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세상을 보는 눈이 나도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여태껏 나는 세상의 한 면밖에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상상치도 못한 세상의 또 다른 측면이 보이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하룻밤을 자고 며칠 밤을 자고 일어나도 신비한 그 느낌은 지속되었다. 무엇이 진정한 현실이고 허구인지 저절로 구분되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지니 세상은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참답게 산다는 것은…
  최근에 방영했던 드라마 “W”가 있다. 이 드라마 속에서 강철(이종석)이란 만화 주인공이 만화 세계로 들어온 실제 세계의 인물인 오연주(한효주)를 만나면서 큰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강철은 처음에는 그가 사는 세상이 만화 속 세상일 뿐이라는 오연주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같은 이야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뭔가 맥락이 맞지 않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사는 세상이 만화 속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아버렸다. 그 순간 그 세계의 시간은 정지되어 버리고 자신만 살아남아 오연주가 있는 진짜 세계로 들어와 버린다. 이제 자신을 창조해내고 움직인 만화 작가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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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 14일 종영된 MBC 수목 미니드라마 W 홍보사이트 캡쳐 이미지.

  

  우리가 살다보면 맥락이 안 맞는 일이 종종 생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과연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렇다면 수도란 대체 무엇일까? 무슨 이유로 과거로부터 숱한 사람들은 현실을 등지면서까지 구도하고 수도를 했을까?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지공사를 보시고 열어놓으신 후천세계는 대체 어찌 된 것일까? 불교나 도가에서 말하듯 이 세상은 덧없고 하룻밤 꿈과 같은 세계인가?
  역학을 잠시 살펴보자. 문왕 팔괘도를 보면 동남서북 사방에 목화금수(木火金水)의 기운이 돌아간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대로 돌아간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행(五行) 중 토(土) 기운은 보이지 않는다. 토는 중앙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목화금수의 기운을 돌리기 때문이다. 5·10土의 자리는 감독의 자리이고 신(神)의 자리이다. 감독은 배후에서 지시로 배우들을 움직이게 할 뿐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화 작가의 자리, 영화감독의 자리, 신의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김일부의 후천 정역(正易)을 보면, 중앙 자리에 5·10土 대신에 2·7火가 와 있다. 그렇다면 5·10土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제 土는 火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현실 세계로 나오게 되었다. 감독이, 작가가, 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신이 현실로 나온다는 것일까? 아니면 강철처럼 인간이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일까?
  후천의 정역판은 선천의 주역판과 완전히 달라진다. 판이 달라진다는 것은 천지 프로그램 조판이 바뀐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작가가 주인공을 이끌어 가던 원칙이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가상현실에서 깨쳐 나와 작가와 주인공이 만나는 순간부터는 주인공은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기 운명의 온전한 주체가 된다. 결국 주인공은 전혀 다른 원리로 돌아가는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이처럼 선천판과 후천판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후천판이 된다는 것은 신이 가짜세계에 나타나서 가짜가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만화 속 인물이었던 강철이 진실을 깨닫는 순간 가짜세계는 저절로 사라지고 실재 세계에 있게 된 것처럼, 사실은 ‘허상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들’이 있는 세계가 참다운 실재이며, 그 세계에서 궁극적 실재인 신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이때 인간은 진정한 자기 운명의 주체자인 도인(道人)이 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불에 타고 있는데 여기에 있다 보면 욕망의 불에 타서 죽게 되니 빨리 깨어나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도가에서도 허구에서 깨어나라고 한다. 수행 중 많은 시험이 오는데 진짜같이 나타나는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닫지 못하고 휘둘리면 신선이 될 자격에서 탈락된다. 무릉도원에 관한 유명한 전설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달게 마시었듯 괴상한 차를 마실 수 있으면 무릉도원에 남을 수 있게 되지만 마시지 못하면 선계(仙界)에 인연이 없다 하여 인간계로 내려 보내진다고 한다. 『전경』에 소개된 선인(仙人) 여동빈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과거시험에 계속 낙방하다가 어느 날 잠깐의 꿈속에서 펼쳐진 한평생의 긴 부귀영화가 한낱 꿈이며 현실이란 것 역시 허상임을 깨닫는다. 그 후 여동빈은 원귀가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요구해도, 가족들이 다 죽었음에도 초연히 받아들이는 등의 10가지의 시험을 통과하여 스승에게 선술을 전수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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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5월 15일 개봉된 SF 액션 영화<매트릭스> 포스터(上)과 2016년 공개된 미국의 판타지 모험 영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下)


  눈앞의 현실이 진정한 세계가 아님을 눈치챘더라도 계속 깨어있지 못하면 다시 잠든 것과 같아 스스로 자기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외부의 힘에, 운명에 이끌리는 대로 살게 된다. 꿈속 세상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등 온갖 욕망 해소에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심한 가위에 눌려 깨어나지 못해 고통스럽기도 한 것처럼, 삶이 때로는 즐겁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기도 해서 벗어나지 못해 몸부림치기도 한다. 또 현실이 허구임을 알게 되었더라도 욕망의 이 세계가 너무 재미있거나 너무 억울하거나 너무 분노해서 자기 감정을 이기지 못해 애써 성인의 충고를 무시하여 욕망의 불구덩이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동화처럼, <매트릭스>라는 영화처럼 우리 자신은 과연 어느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장자』 「제물론」의 유명한 우화인 호접몽. 장자(莊子)가 어느 날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꾼 후 깨어나서 한 말,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不知周之夢爲蝴蝶與 蝴蝶之夢爲周與)”
  무엇이 진정한 현실일까? 사실 진짜와 가짜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외부의 사건에 휩쓸려 끌려다니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고,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보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때 참된 삶을 사는 것이며 진정한 현실에 사는 게 아닐까? 자신의 더러운 가짜 부분을 철저히 직시(直視)하고 인정하고 반성하여 고쳐내어 참다운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수도이고, 진정한 사람다운 사람, 즉 도인(道人)이 되는 길이 아닐까?

  

모든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자아유지(自我由之)”01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면의 저 밑에서 문득문득 올라오는 진짜 나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여서, 숱한 윤회의 세월을 통해 내 속에 쌓이고 쌓인 ‘기억의 찌꺼기 덩어리’인 ‘가짜 나’의 저항을 이겨내고, ‘참나’가 되어 사는, 진정한 나로 사는 삶! 이것은 상제님께서 강조하신 ‘자아유지(自我由之)’의 정신으로 사는 삶이 아닐까?   

 <대순회보> 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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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전경』 교법 3장 29절. “천지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하나니 공명지 정대(孔明之正大)와 자방지 종용(子房之從容)을 본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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