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퓨전 그리고 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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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근준 작성일2018.12.10 조회5,545회 댓글0건본문
산동9 방면 교감 유근준
장마가 지난 뒤의 무더위가 한창이다. 계속되는 폭염에 에너지 소비가 많이 늘었고, 게다가 고유가로 인한 부담으로 차량운행 역시 많이 신경 쓰이는 때이다. 그래서인지 하이브리드 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거기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하다.
하이브리드(hybrid)는 혼합, 융합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두 개 이상의 무엇이 합쳐진 것을 말하며, “두 가지 기능이나 역할이 합쳐짐”을 뜻하기도 한다. 하이브리드 카는 전기와 기름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차이다. 기름으로도 갈 수 있지만 전기로도 갈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만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사용할 수 있다.
퓨전 또한 마찬가지다. 퓨전(fusion)은 용해 가능한 특성이나 그 과정을 뜻하며,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이 합해서 전혀 새로운 것이 됨”을 뜻하기도 한다. 퓨전 음식, 퓨전 한복이 이런 경우일 것이다. 기존의 우리 음식과 다른 나라 음식이 만나 새롭게 만들어진 것을 퓨전 요리라고 하며, 전통 한복을 개량하여 지금의 패션으로 재해석한 것을 퓨전 한복이라고 하니 퓨전은 다양한 곳에 쓰인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위에는 하이브리드 혹은 퓨전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대기업의 금융자본이나 국가의 인재가 그러할 것이다. 지금은 국경이나 민족 인종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기업의 상품이 세계를 겨냥해서 만들어지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다소 논리의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한 가지만으로는 일의 성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강대국의 역사를 보면 적극적으로 외래 문물을 받아들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강국이 된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민족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인재를 적극 수용한 결과일 것이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운동 경기만으로는 흥미를 잃어버리자 새로운 경기방식이 만들어졌으니 이종 격투기가 그것이다. 태권도, 권투, 레슬링, 유도 등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한 경기에 모두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한번 퓨전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전자 제품에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휴대폰에 TV 기능이 있는 것은 물론 이제는 무선 인터넷도 가능하며 더 나아가 길을 찾는 네비게이션 기능도 있다. 과학의 발달이겠지만 어쨌든 모두가 통합하고 융합하는 조화로운 시대임은 분명하다.
어릴 때 많이 본 시루는 떡을 찌거나 콩나물을 기르는 데 사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크게 관심 가질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주로 부인네들이 사용하다 보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루는 어떤 이치를 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하이브리드와 퓨전의 가장 발전된 모습일 것이다. 시루떡은 각각의 재료들이 시루 속에 서로 섞여서 새로운 맛의 떡을 만든다. 켜켜이 쌓인 재료들이 본래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루의 이치다. 지금 이 시대 나아가 21세기 인류에게 꼭 필요한 삶의 방법인 것이다
시루의 이치 속에 국가의 발전이 있으며 사회 통합이 여기에 있고 과학의 발달 또한 시루의 이치 속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세대 간 갈등과 국가의 분쟁과 민족의 분열에 대한 모든 답이 진정 시루에 있는 것이니 참으로 가까이에 우리의 미래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통합하고 융화함으로써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으니 시루는 미래 인류의 삶의 지표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사회의 모습이 시루의 이치대로 가고 있고 또한 시루의 이치를 많이 필요로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 퓨전은 지금 세상에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말이 되었다. 백 년 전에 이미 상제님께서는 물화상통의 공사를 보셨다.(공사 2장 23절) 물론 공사의 뜻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때 보신 공사의 결과가 작은 부분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시절이 혼란스러울 수록 삶의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시루’이다.
<대순회보> 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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