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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창심 작성일2018.12.10 조회3,8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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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1-6 방면 교감 노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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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난해보다 한 달 일찍 개장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본격적인 개장 행사는 7월부터 한다지만 이미 여름이 시작된 것 같은 날씨가 시원한 바다를 생각나게 합니다. 6월에 벌써 해수욕장을 연다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자연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해운대’라는 단어에 지난 봄날 오후가 생각납니다. 
  올해 3월, 숙소에서 TV를 보던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저, 저, 저거 해운대! 해운대!”
  “뭐가? 해운대 뭐?”
  “봐봐, ‘해운대’랑 똑같잖아.”
  알고 보니 해운대란 영화 ‘해운대’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영화 ‘해운대’에서 봤던 파도에 휩쓸려가는 자동차와 건물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자막에 쓰나미 어쩌고 영어로 쓰여 있습니다. 이미 방파제를 넘은 파도는 부두에 묶어둔 배를 휩쓸고 논밭을 지나 크고 작은 건물을 과자를 부수듯 집어삼켜 버립니다. 차가 다니던 도로였을 그곳에 자동차들은 둥둥 떠서 물레방아인양 빙글빙글 돌고, 그 옆에 닻이 풀린 배들도 같이 떠다닙니다. 몇 채 보이는 건물들은 아마도 고층 빌딩이었을 겁니다. 다음 장면은 차도에 버스 한 대가 쓰나미를 피해 역주행을 합니다. 필사적입니다. 보고 있는 우리도 간이 콩알만 해집니다. 속으로 ‘빨리, 빨리, 더, 더…’를 외칩니다. 영화 한 장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저 장면이 실제 상황이라고 화면 하단에 불이 깜박거립니다. 그날은 일본 동북부 지역에 강도 높은 지진과 대형 쓰나미가 있던 날입니다.
  그날 뉴스를 보면서 영화 ‘해운대’가 떠올랐습니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는 사람들 속에서 딸아이의 손을 놓친 아빠는 홍수 같은 인파를 거스르고 자식의 손을 잡으러 갈 수가 없습니다. “자식이 지중하지마는 제 몸을 돌볼 겨를이 없으리라. 어찌 자식의 손목을 잡아 끌어낼 사이가 있으리오.”(교법 3장 43절)라는 『전경』 구절이 실감났습니다.
  백사장을 지나 번화가 골목까지 밀어닥친 바닷물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운전하던 차에서 내려 달립니다. 오랜 시간 망설인 끝에 큰마음 먹고 청혼했지만 대답도 못 들은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뜁니다. 집어삼킬 듯 덮치는 파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넋을 놓고 있는 사람,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다 파도에 쓸려가는 사람, 취직 면접장에 신고 갈 구두도 없다며 화내는 아들 걱정에 야유회도 못 가고 아들 구두 사러 간 어머니, 화장실에 일 보는 사람 등, 상제님께서 병겁에 대비하라고 일러주셨던 “자던 사람은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길을 가던 자는 노상에서 각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하고 혹은 엎어져 죽을 때가 있으리라.”(예시 41절)라는 말씀이 병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닷물은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전봇대도 닥치는 대로 쓸어 갑니다. 쓰러지는 전봇대에 끊어진 전깃줄. 평소 유용했던 전기가 물을 만나서는 살인 무기가 됩니다. 허우적거리더라도, 이렇게라도 살고 싶은데 성난 파도는 봐주지 않습니다. 어디라도 매달려야 합니다. 사는 게 너무 간절합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피할 사이도 없이 죽어 갑니다. 평소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했던 사람도 그 순간만큼은 간절히 살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숨조차 위태한 이런 상황에도 수상구조대원은 조난당한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조 밧줄이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구조대원도 자신의 목숨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난당한 사람을 구하는 건 목숨만큼 중요한 임무이기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잡고 있는 밧줄을 스스로 끊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평소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었던 바다에 마지막으로 몸을 맡깁니다.
  한차례 밀려간 파도에 한숨을 돌리지만 살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순간은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더 무서운 것들이 몰려옵니다. 절규도 이미 늦었습니다. 자식만이라도 살리고 싶은 부모는 구조헬기에 어린 딸을 태우고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세상에 싫을 것 미울 것 하나 없는 순간입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이렇게 후회할 일이 많습니다. 피하라고, 미리 대비하라고 초대형 쓰나미가 올 수 있다고 지질학자가 수도 없이 경고했지만, 재난 방재 관련 공무원은 우리나라에 그런 쓰나미가 왔던 적이 있었냐며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고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운대 사업 유치를 위해 모인 외국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면 그 책임을 어떻게 할 거냐고 큰소리입니다. 만약에 쓰나미가 오더라도 그때 피하면 되지 않느냐며 책임 회피할 구멍을 만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쓰나미 경고를 하고 파도가 밀려오기까지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경제 발전에 자금 유치니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고 방송이 울리고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대피는커녕 가장 소중한 것도 지켜내지 못합니다.
  이런 순간이면 세상에 미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군들 살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내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를 한들 듣는 이가 없다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상제님께서 인간 세상에 강세하셨다고, 앞으로 병겁이 있을 거라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아마 우주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남은 시간은 10분 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 나와 인연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간다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며 남들이 보든 말든 코훌쩍이며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가며 울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정말 열심히 포덕해서 많은 사람을 살려야겠다, 후천에 같이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 얼마 전 일인데 벌써 까맣게 잊었습니다. 하긴 일본에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있었던 것도 오래된 일처럼 생각됩니다.
  이렇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봅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먹고 실천을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제께서 앞날을 위하여 종도들을 격려하여 이르시니라. ‘바둑에서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라.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두라. 이제 비록 장량(張良)ㆍ제갈(諸葛)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어느 틈에 끼어 있었는지 모르리라. 선천개벽 이후부터 수한(水旱)과 난리의 겁재가 번갈아 끊임없이 이 세상을 진탕하여 왔으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봄으로부터 이 동토에서 다른 겁재는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남았으니 몸 돌이킬 여가가 없이 홍수가 밀려오듯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공사 1장 36절)라는 『전경』 구절을 되새겨 봅니다. 상제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셨는데 상제님을 믿는 수도인이라고 하면서 진심으로 대비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에게 아직 10분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까요?

<대순회보>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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