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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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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홍길 작성일2018.12.11 조회3,8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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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오룡방면 교무 전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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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도인들은 상제님께 축복받은 삼생의 인연이 있어 도문에 들어왔고, 이곳에서 봉천명(奉天命) 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경·신을 잃지 않고 참배와 치성을 모시며 수신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진정 이 수신의 길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길이기에 더더욱 힘들고 온갖 고통을 참고 인내해야 하는 고뇌의 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흔들림 없이 굳게 살아가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의 인생길을 출발합니다. 바로 첫발을 내딛는 그 길이 곧 도(道)를 걷는 길이죠. 태어날 때는 인간 본연의 아주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정혼을 가지고 왔으나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탐·진·치의 인습에 젖어들기 시작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망각하고 서서히 오욕락(五欲樂)의 수렁에 빠져 온갖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삿된 길을 가다가 결국에는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사도(邪道)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죠. ‘묵자읍사(墨子泣絲)’란 말이 있듯이 내가 싫든 좋든 세상사의 선과 악을 만나 “습(習)”에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이 ‘습(習)’ 자를 파자해 보면[羽+白], 아주 깨끗한 깃털이란 뜻이 됩니다. 묵자가 하얀 솜털의 실이 오색(오욕락)의 물에 젖어드는 것을 보고 슬피 울었다 합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무너져 어그러지고 망가진 세상, ‘오탁악세(五濁惡世)’가 되어 다시는 깨끗한 솜털을 찾아볼 수 없는 ‘패습(悖習)’의 세상이 되었고 오욕락에 찌들어 재리에만 눈이 어두운 세상을 구제창생 하시고자 상제님께서는 신도(神道)를 여시고 축복받은 삼생의 인연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수도인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참고 인내하며 이 길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도인의 길은 신명의 길(神道)입니다. 신명은 천지의 신령을 말하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능력으로 자연계를 지배하시며 인류에게 화복을 내려주시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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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도 오르다 보면 정상이 있듯이 길 또한 목적지가 있기 마련이죠. 사도(邪道)의 길은 죽음의 길이지만 우리 도인이 걷는 길은 신도요, 곧 성공의 길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수많은 명암이 교차합니다. 명(明)은 곧 암(暗)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암의 길은 곧 밝음이 있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인내하는 자만이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알 것입니다. 저희 도인의 길은 혼자만의 길이 아닙니다. 신명과 사람이 함께하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길입니다.
  나 혼자만 잘한다 해서 모든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선각자를 만나 호미 한 자루와 약초를 캐어 담을 자루를 메고 신도의 길을 걸으며 지초(芝草)를 캐는 길입니다. 만월(滿月)의 둥근 달을 보십시오. 토끼 두 마리가 선, 후각이 캐어온 지초를 ‘쿵더쿵 쿵더쿵’ 창생을 살리기 위해 쉼 없이 찧고 있는 것입니다.
  선, 후각이 체(體)와 용(用)이 되어 강을 이을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이 산, 저 산 고뇌와 조소 비평도 참아가며 포덕(布德)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심마니가 영삼(靈蔘)을 캐기 위해 그냥 산을 오르지 않듯 목욕과 정심(正心), 수신(修身)하며 그 산의 신령을 뵙기 위해 성·경·신을 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 도인의 길을 어디 심마니에 비하겠습니까.
  후천 5만 년의 용화 선경세상, 불로불사 영생의 세상,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하여 영화와 복록을 누리는 세상을 가기 위해 노력 정진하여 지초를 캐어 최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용화 선경의 배를 타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사사상전(師師相傳)하여 쪼아주고 깨우쳐주고 상제님에 의해 쓰이는 용(用)이 되기 위해서 ‘도리깨(도의 이치를 깨우침)’가 되어야겠지요. 암탉이 알을 품고 한 생명이 태어나는 모습을 보셨나요? 잠시 우리가 살아온 옛 시절 시골 촌락의 환경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따뜻한 봄날 새싹이 돋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무렵, 마당에서 노니는 여러 마리 닭의 무리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느새 짝을 지었는지 암탉은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부모의 사랑 없이는 소중한 생명의 잉태가 있을 수 없듯이, 이 어미닭 또한 스무하루 동안의 정성과 사랑의 따뜻한 품으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한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은 지 스무하루가 되면 그 알이 문제가 없는 한 어김없이 알 속의 새끼는 껍질을 똑똑 쪼으는데(啐), 어미 닭은 기다렸다는 듯 이 소리를 듣고 이에 호응하여 그 부위를 밖에서 탁탁 쪼아줍니다(啄). 이처럼 어미 닭과 알 속의 새끼가 동시에 안과 밖에서 껍질을 쪼아 깨뜨리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되지요. 한 가정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도 이와 같은 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한낱 짐승이나 미물에 지나지 않게 여기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성인(聖人)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범인(凡人)은 성인을 스승으로 삼는다 했습니다. 자신이 처해있는 생활 속에서 누구나 느끼고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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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우리는 기계에 의해 부화하여 깨어난 병아리처럼 사랑도 모르고 부정(父情)도 없으며 충, 효, 열이 없습니다. 이것을 무도병(無道病)이라 하지요. 가정에서는 자녀가 줄(啐)할 때, 부모는 이를 알아차리고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할 때 부은(父恩)을 알 것입니다. 직장 또한 어떻습니까? 노동자는 직장에서 상사와 서로 줄탁의 사이가 되어 좋은 아이디어와 훌륭한 완성물이 창출될 것이며, 넓게는 사장이 사원들을 하나하나의 보살핌으로 어려운 부분을 감싸주어 노사 간의 줄탁이 이루어질 때 기업은 성장하고 소중한 한 국가의 자원이 되는 기업이 되며, 이러한 기업은 머지 않아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삼가 우리 도인들은 언행과 처사가 일치하도록 일심 수도하여 상제님의 품에서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안될까?’ 하며 힘겨워하지 마시고, 행록 3장 50절을 언제나 내 마음속 깊이 명기하셔서 증익된 수도인이 되십시오. 도고마성(道高魔成)이라 하지요. 나의 도(道)가 높아졌다고 자만(自慢)하지 말고, 도가 높아질수록 마(魔)가 성한 법이니 항상 초발심(初發心)을 잃지 않는 도인이 되십시오. 근심보다 더 큰 상처는 없고, 어리석음보다 독한 화살은 없다 합니다. 이 어리석음을 빼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듣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생각과 나쁜 말과 나쁜 행실로 항상 과보(果報) 속에서 어둡게 산다 하지요. 당나라 시인이자 정치가인 풍도(馮道, 882 ~ 954)의 『설시(舌詩)』가 있습니다. 이 시를 교훈 삼아 공(功)을 까먹는 일이 없도록 매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꼭 성공하여 도통진경(道通眞境)에 이르시길 기원합니다.

<대순회보>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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