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게으름을 성(誠)으로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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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승일 작성일2018.12.11 조회5,550회 댓글0건본문
구의8 방면 교감 유승일
도인들은 수도과정에서 누구나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에겐 ‘성(誠)’이란 단어가 그렇습니다. 머리로는 아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을 못하는 것을 보면 모르는 것이 확실합니다. 도장 수호를 서고 4년이 지난 후에야 그러한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우리 도가 성(誠)·경(敬)·신(信)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의 요체(要諦)로 삼는다 하셨으므로 ‘성을 먼저 깨닫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순지침』에 보면 “성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이다.”하셨으니 ‘무자기(無自欺)’를 말씀하셨고, 『대순진리회요람』에서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 하여 ‘정성’으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른다고 하신 대목은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일단 몸으로 겪으면서 정성을 드리다 보면 뭔가 보이겠지’란 생각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운이 좋게 대진요양원 식당에서 시간제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서 정성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식당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첫날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쉽지 않았습니다. 임원이라 다들 불편해하는 것 같아 더 열심히 했습니다. ‘역시 임원이다.’라는 평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임원이니까’라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목적은 ‘성’이란 말뜻을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식당은 바빴습니다. 느린 제 손으로 보조를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손이 안 되면 발이라도 빨라야지.’ 하며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3일 정도 지났을 때 고질적인 체력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내 눈을 본 동료가 “교감 눈이 왜 그래요? 병원에 가보세요.” “네?” ‘내 눈이 어때서?’ 왼쪽 눈에 실핏줄이 터졌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 하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3주가 됐을 때 신체의 변화가 생긴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날이 더워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나 일만 하면 오르기 시작하는 열이 한밤중에도 식지 않았습니다. 숙소에서도 선풍기가 없으면 잠을 못 잘 정도였고 낮에는 안 먹던 아이스크림이며 심지어 얼음을 입에 달고 살 정도가 됐습니다. 여름이라도 찬 음식을 먹지 못하던 속은 아무런 탈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바꾸려 20년을 노력해도 안 바뀌던 체질이 점점 변해갔습니다.
이런 변화는 몸에서 시작해서 차츰 가슴속으로 옮겨왔습니다. 요양원 식당에서 만든 반찬은 치아가 없는 분들을 위해서 잘게 다져야 합니다. 바로 그때 의도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부모님이 드시는 것이니 잘 다져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더 나아가 요양원의 어르신들이 마치 부모님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마음은 점점 차분해져 가는 것이 심해 잠수정처럼 제 마음속으로 잠겼습니다. 복잡했던 마음들이 사라져 가고 본심(本心)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거울을 들여다보듯 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웠던 과거들,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창피한 모습들, 실패했던 과거 기억들만 떠올랐습니다. 피하고 싶은 나의 모습은 계속해서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동요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다 저 바닥에 감춰진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게으름’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떡하니 자리 잡고는 거만하게 쏘아보고 있었습니다. ‘아하 내 마음에 이런 녀석이 자리 잡고 있다니…’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나의 발전은 남보다 느린 것인가? 나는 왜 남들을 부러워하고만 있지?’ 이 모든 물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에 해태한 거짓이 있는 것도 모른 채 ‘정성’을 드린다고 했으니 한계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으니 이제는 나에게 칼자루가 돌아온 겁니다. 지금까지 겁액(劫厄)의 승리였다면 이제는 역전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수고를 통해 깨우친 것을 헛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수호를 서며 저녁이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 게으름을 이기기로 했습니다. 아직 내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시간이 이처럼 아깝게 느껴지긴 처음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변화는 모두 상제님의 덕화(德化)라고 믿습니다. 상제님께서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속에 드나들게 하여 성격과 체질을 고쳐 쓰신다 하셨으니 제가 더 ‘정성’을 들인다면 상제님을 향한 진실한 ‘성’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변화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입도해서 수도한다고 하지만 대순진리(大巡眞理)에 입각해서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닦아 나가지 않는다면 찾아오는 건 세월의 덧없는 흐름뿐이라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로워지는 뱀처럼 얄팍한 삶의 껍질을 벗은 기분입니다. 비록 저의 일상에 ‘정성’이란 단어를 붙이기엔 어딘가 미흡한 면이 있지만 이를 시작으로 매일 매일 자신을 반성해 나간다면, 제게도 상제님 말씀이 온몸에 새겨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남들보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창피하진 않습니다. 이제 매일 새벽 5시면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요양원으로 갑니다. 시원한 새벽 공기처럼 몸도 마음도 상쾌해집니다.
<대순회보>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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