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영농작업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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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현경 작성일2020.11.13 조회4,111회 댓글0건본문
금릉1-6 방면 평도인 신현경
이번 수호는 다른 때와 달리 2주로 조금은 오랫동안 도장에 머물게 되었다.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활달한 나는 주로 영농작업을 했다. 이번에는 마음을 다잡았다. 영농은 여러 명이 모여 하다 보니 일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 적었다. 담당 교감께서 오늘은 무슨 작업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실 때 흘려듣기 일쑤였다. 옆에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면 되니까. 내가 따고 있는 것이 근대인지 아욱인지 별 관심 없었다. 작업하는 중에 졸기도 하고 같은 조 도인들에게 지적도 많이 받았다. 사실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자신을 곰곰이 돌아보았다.
사회생활을 할 때의 나와 도장에서의 나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자존심도 세고 욕심이 많은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김없이 비난과 냉혹한 시선이 돌아왔으니까. 그러나 도장에 오면 정성 들이려는 마음보다 긴장이 풀려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도인들도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챙겨 준 것 같았다. 또 다시 대충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영농은 작물을 따거나 씨앗을 심어 모종을 만들거나 풀 메는 간단한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주로 배추를 심었다. 배추 씨앗을 심어 모종을 기르는 작업은 이미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뜨거운 8월 여름에 오전, 오후 밭에 나가 비닐을 덮고 지탱이 되도록 그 위에 삽으로 흙을 퍼 담았다. 남동생이 강원도 군대에 있던 시절, 눈이 오면 인근 마을로 내려가 삽질을 하며 눈을 치웠다고 했다. 농담으로 동료들과 ‘삽학’과 ‘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했다고 중얼거렸는데 이렇게 힘이 많이 드는지 몰랐다. 며칠 동안 계속 삽질을 하며 안 쓰는 근육을 썼더니 허리가 아팠다. 주변에서 하루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한번 시작하면 무식하게 돌진하는 나는 괜찮겠지 하며 버텼다.
덮은 비닐 위에 굴렁쇠를 돌려 표시를 하고 그 위에 구멍을 일일이 뚫었다. 구멍 위에 모종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손바닥만 한 작은 삽으로 구멍 안의 흙을 덜어내고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배추 씨앗을 심어 모종이 자란 것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의 씨앗이 이렇게 연둣빛 잎을 피우며 파릇파릇하게 자라다니 신기했다. 얼마 전 내가 생각 없이 심은 무 씨앗도 아담한 잎을 뽐내며 귀엽게 자라고 있었다.
아침에 심고 오후에 와보니 그 싱싱하던 모종들이 다 시들어 있었다. 교감께서 몇 시간 동안 땡볕에 있어서 그러니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난다고 하셨다. 무거운 주전자를 낑낑대며 들고 아기 같은 모종들에게 물을 주었다. 다음날 와보니 거짓말처럼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교감께서는 염려가 되어 그날 밤, 밭에 와서 핸드폰으로 빛을 비추어 모종을 확인했다고 하셨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당분간 작업을 못 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비가 적게 내려 오후에 다시 시작했다. 지난번에 모종을 너무 단단하게 심어 물이 흡수 안 되었으니 이번에는 흙을 헐겁게 채우라 하셨다. 또 모종이 비닐보다 아래에 있어야지 비닐 위로 올라오게 심으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생장점까지 비닐 아래로 심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세상에 쉬운 것이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몰라 자꾸 물어보고 다른 사람이 한 것과 비교하며 심어 나갔다. 그러다 보니 교감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이해되었고 모종을 심는 것이 재미있었다.
외수 수강반이 심고 간 모종도 검토했다. 외수들도 설명만 듣고 처음 해본 거라 그런지 잘못 심은 것이 꽤 있었다. 어떤 종사원이 말했다. 작업하는 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 사람의 성격과 기운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외수들이 자기 생각이 강해 자기식 대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나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고 수호 와서 가끔 영농작업을 하다 보니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실수할 때가 많았겠구나, 총 책임을 지고 있는 보정, 교감께서는 애가 탔겠구나 싶었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못 따라올 때가 많은데, 배추는 길러서 식당에 보내야지, 고충이 많으시겠구나 싶었다. 잘못하면 그 많은 재료와 노동과 정성이 헛수고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고 농촌의 경치를 좋아해 나중에 귀농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매일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의 영농작업을 가볍게 여겼는데, 막상 땡볕에서 흙을 파고 심어보니 어려웠다. 작년에 배추를 갉아 먹는 애벌레를 잡는다고 젓가락으로 생장점이 다치지 않도록 배추를 조심스레 확인했던 것도 생각났다. 그 배추가 이렇게 기른 것이었다니.
도전님께서 연수에 가면 밭에 가서 흙이라도 만져보라 하셨던 말씀이 이런 이유에서였을까? 하나의 씨앗이 잎을 가진 모종이 되고 그 모종이 큰 배추가 되기까지 사람과 자연의 많은 정성이 필요함을 새삼 느꼈다. 오후에 땡볕에서 모종을 심고 참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수호자 중 누구는 먹구름을 보고 ‘상제님, 비 오게 해주세요’ 하며 태을주를 감았다고 했다. 정말 막판에 소나기가 내려 교감께서 들어가자고 하셨지만 우리는 조금만 하면 끝나니 비 맞으며 시원하게 마무리하자고 했다. 비 오는 산속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저녁밥을 배부르게 먹고 씻은 후 잠을 청했는데 기운이 너무 맑아 잠이 안 오는 상태다. 꿈같은 수호 기간 중 11일 지났다. 쉬는 시간에 교화준비 한다고 도서관에 가서 쿨쿨 자고, 후회되는 부분도 있지만 재미있게 보냈다. 아침 햇살 속에 클래식을 들으며 빨갛고 노랗게 익은 앙증맞은 방울토마토를 따서 참으로 갈아 먹을 때의 즐거움이란, 이보다 더 평안한 휴양이 있을까? 지금은 밤 11시.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지만, 내일 아침에는 그쳐서 작업하게 되면 좋겠다. 상제님께 심고 드리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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