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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뭉클한 해원상생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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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경언 작성일2018.02.23 조회3,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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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방면 교감 백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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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1월 4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에 세계의 흑인들이 환호했고, 아프리카 케냐는 이날(11월 4일)을 기념해 국경일로 선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을 지냈던 넬슨 만델라는 오바마 당선자에게 “당신의 승리는 누구든지 그리고 어디에 있든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의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라는 축하 서한을 보냈다.

 

세계가 변화를 수용한 결과라는 이 사건은 선천(先天) 상극시대(相剋時代)의 대표적 아픔이었던 인종차별 등의 아픔을 뒤로 하고, 화합이라는 해원(解)의 장(章)으로 들어가려는 서막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오늘날 세계의 경찰국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건설 이면에는 흑인들의 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편견이라는 악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역사는 1502년 노예선 히스파니올라호에 태워져 처음 미 대륙에 끌려온 흑인노예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본격적으로 흑인 노예가 유입된 것은 유럽인들의 이동에 따른 것이다. 1600년대 초부터 유럽에서 북미지역으로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특히 영국은 이민 정책을 장려하기 위하여 누구든 한 사람의 이민자를 데려오면 50에이커01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두당제도(Headright System)를 도입하였다. 대지주를 꿈꾸는 사람들은 신대륙으로 향했다. 이에 따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고 이것이 아프리카 노예무역으로 이어진 것이다. 1619년 20여 명의 흑인이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팔려 오면서부터 시작된 노예무역은 1870년대까지 성행하였다. 인종자체가 제국주의의 희생이 된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남미나 캐러비안제도, 브라질 등지에 가서 노예로 팔고 은과 다른 것들을 받아갔다. 흑인들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항해 중 6분의 1 이상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길들이는 동안에 3분의 1이 죽어 갔다. 항해 중의 참상은 말로 표현 못할 지경이었다. 도착해서 살아남은 1,400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북미와 남미의 밭에서 강제노동에 혹사당했다. 자신들의 고향 아프리카 대륙에서 짐승처럼 수렵(狩獵)되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실려 온 그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하나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미국 사회에 아픈 뿌리를 내리며 정착하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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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으로 갈라지는 동료들의 등짝을 보며, 말 탄 감시자를 피해 긴 칼에 베어지는 옥수숫대를 줍기 위해 족쇄를 끌면서 다녔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으며 노예의 참상을 절감했다는 링컨은 1862년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그러나 “1863년 1월 1일을 기해 연방에 반란한 주의 노예는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선언한다.”로 되어 있는 이 선언에 의하여 정식으로 해방된 노예는 없었다. ‘연방에 반란한 주’는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한 남부였으므로 링컨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다. 결국 이 선언은 노예를 해방시키지 못했다. 흑인의 해방은 요원해 보였다.

 

1955년 로사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백인에게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체포되었다. 1962년 제임스 메레디스가 흑인 학생 최초로 미시시피 대학에 입학하고자 했다. 학교와 백인들은 그의 입학을 거부하며 메레디스에게 총질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 DC에 운집한 20만 관중을 앞에 두고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내 어린 자녀 4명이 언젠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되는 날이 오리라는 게 제 꿈입니다. …”라는 피맺힌 연설을 해 나갔다. 우는 듯, 기도 드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조상들의 한(恨)과 살아있는 후손들의 설움을 동시에 건드렸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인종차별이라는 굴레가 벗겨지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까만 피부에 흘러내리는 눈물이 평등한 사람으로 같이 슬퍼해야 할 눈물임을 아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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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길거리 영화 포스터의 백인여성 그림만 봐도 백인들은 거침없이 “이봐 검둥이 뭘 봐?”라며 소리쳤다. 식당과 화장실도 결코 같이 사용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글거리는 증오의 눈으로 “너 같은 검둥이가 감히…” 하고 쳐다봤다. 정치ㆍ경제적으로 우월한 인종이 행하는 인종차별은 이성적 존재라는 인간의 정의를 의심나게 하는 문제였다.

 

이렇게 흑인이라는 것 때문에 일방적으로 경멸의 대상으로 분루(糞瘻)를 삼키던 그들에게, 흑인 대통령 탄생이 갖는 의미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2009년 1월 20일 8시. 대통령취임식이 있는 아침부터 취임식장 입장대기 행렬이 늘어섰다. 체감 온도 영하 15도, 가슴이 떨려오고 입술이 떨리는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는 자신들을 느꼈기 때문이다.

 

경호 인원 10만, 인종차별의 장벽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비장한 탄생을 위한 사상 최대의 규모였다. 철저한 보안검사를 위해 1시간 동안 꼼짝도 않던 대기 행렬에 있던 60대 할머니는 자신의 선조가 흑인노예출신이라며 “난, 63년을 기다렸고, 우리 선조들은 200년 이상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하며 눈물을 흘렸다. 10시 30분이 되어 입장이 시작되었다. 행사장으로 ‘첫 걸음’을 땔 때 군중의 자축함성은 얼어붙은 워싱턴을 흔들었다.

 

대통령은 변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세계를 향하여 호소하며 제시하였다. 그것은 화합(和合)이었다.

 

겨우 60년 전 그리고 최근의 시절만 해도 동네 식당조차 출입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가졌었다는 흑인 대통령. 그런 그가 호소한 방향은 통합이며 화합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와 힌두교, 그리고 무신론자들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각기 다른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무엇이고 그로 인해 빚어진 미국 내의 문제, 특히 남북전쟁과 인종차별, 언어와 문화의 충돌, 경제와 환경의 문제로 누구 못지않게 고통당했을 대통령이다.

이런 그가 제시한 변화란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에 기반을 둔 화합이었다. 쓰라린 경험을 치룬 인류는 오래된 증오와 인종차별에서 벗어날 것이며, 점점 작아지는 세상은 인간본연의 모습을 찾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견해라기보다 대통령의 소망이며 흑인들의 무언(無言)의 용서였다.

 

단지 피부색이 검다고 너무나 큰 아픔을 오랜 동안 겪어 왔던 흑인들이다. 크나큰 원망과 가슴에 맺힌 한이 얼마였을까? 그러나 그들은 원망보다는 용서를, 갈등보다 화합을, 과거보다 변화를 향해 나아가자는 구호에 온몸으로 “Yes. we can!”이라 답했다. 용서와 화합은 흑인들의 몫이었다. 과거의 원울(怨鬱)을 그렇게 씻어 내는 인종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위대하였다.

 

그들을 축하하고 싶다. 인류애(人類愛)가 다른 게 아니라 옳은 것에 공감하는 이런 마음 아니겠는가? 그곳엔 대다수가 흑인이었으나 다수의 감동어린 백인도 있었다. 인류는 이런 변화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과거를 용서하고, 잘못을 용서받고 화합하며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대세(大勢)다.

 

세상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고통의 세계는 가슴 뭉클한 용서와 이해로 화합을 이루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해원상생(解相生)의 가치를 수용할 수 있도록 인류를 성숙시켜 주었다. 나아가 이러한 상호존중의 상생(相生)은 세상을 움직일 가치로 이미 인정받고 있다. 그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소망했던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 가장 걸맞는 소양이 될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이런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 전쟁과 파괴 온갖 범죄와 죄악이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잠시라도 습관화된 상극(相剋)적 사고(思考)로부터 벗어나, 참신함과 감동을 주고 있는 현장으로 들어가보면 상호존중과 화합이라는 해원상생의 가치는 이미 변화의 현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상극잔재 소멸과정을 통과할 것이다.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에 타 없어질 상극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언젠가 자손들에게 인류보편의 가치인 가슴 뭉클한 해원상생(解相生)의 길을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줄 준비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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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 대통령 연설에 환호하는 국민

 

 

 

01 1에이커는 가로·세로 63.6m의 정사각형 넓이. 1,224평. 4,047평방미터. 에드워드 1세 때 황소 한 마리가 하루에 경작할 수 있는 넓이를 에이커라 함. 50에이커는 축구 경기장 25개 넓이.

 

 

<대순회보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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