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소들의 박진감 있는 맞대결, 소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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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승훈 작성일2018.02.21 조회3,156회 댓글0건본문
유승훈
■ 다시 찾아온 ‘소싸움대회’의 열기
구제역의 여파에 가장 힘들었던 민속놀이는 소싸움대회였다. 진주와 청도에 상설 소싸움경기장까지 들어섰건만 구제역으로 인하여 소싸움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구제역 기간 동안 싸움소들은 암흑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국 소싸움대회에서 수십 차례 우승한 싸움소 ‘비호’도 그러하였다. ‘비호’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사육되고 있다. 대부분 영남의 싸움소들이 모든 대회를 휩쓸고 있는 마당에 경기도의 싸움소인 ‘비호’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였다. ‘비호’는 격리와 방역, 백신접종을 꿋꿋이 견뎌내며 긴 터널의 끝으로 나왔다. 터널 밖에서 ‘비호’를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소싸움 대회였다. 이제 비호를 비롯한 모든 싸움소들이 각축장으로 달려가 명승부를 보여줄 때가 되었다.
지난 4월 15일부터 청도에서는 육중한 싸움소들의 박진감 있는 대결이 펼쳐졌다. 이른바 ‘2011년 청도소싸움축제’. 이곳에는 전국 8강 이상 싸움소 120마리가 초청되었다. 이중 96마리가 전국 4강 이상에 올라간 소들이다. 정말 내로라하는 싸움소들의 쟁쟁한 혈전이 청도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번 싸움소 축제는 특갑, 일반갑, 특을, 일반을, 특병, 일반병 등 6체급별로 나눠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우승 소도 각 체급에서 1마리씩 나왔다. 싸움소의 전성기는 1~2년 정도 짧기 때문에 우승소를 예측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번 청도소싸움 축제에서도 예상 밖의 대진 결과들이 속출했다. 특갑종의 1위는 대구의 싸움소인 ‘파이팅’이 거머쥐었다. 이것이 소싸움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 사돈을 만나려면 진주 소싸움에 가라
현재 소싸움대회를 개최하는 지역은 경북의 청도, 경남의 진주와 의령, 김해 등지이다. 소싸움 대회가 영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왜, 소싸움이 영남을 중심으로 퍼져 있을까? 각 지방자치단체의 소싸움 대회의 홍보 전략으로 인하여 소싸움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경남의 진주가 소싸움 대회의 발상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돈을 만나려면 진주 소싸움 대회에 가라”는 말까지 있다. 수만의 사람들이 진주의 소싸움대회에 몰리기 때문에 멀리 있는 사돈까지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진주의 소싸움대회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싸움소들의 축제였던 것이다.
1925년에 발간된 『조선』이란 잡지에서는 「진주(晋州)의 투우(鬪牛)」란 글이 실려 있다. 여기에서는 진주의 소싸움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진주의 투우는 진주의 명물(名物)의 하나로서, 진주라 하면 바로 투우가 연상될 만치 유명하야, 남선(南鮮) 일대에서는 누구나 알지 못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이미 1920년대 조선 일대에서 ‘진주’하면 ‘투우’를 생각할 만큼 소싸움이 진주의 명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렇게 된 역사적 배경은 19세기 후반 진주성(晋州城)의 소싸움 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주의 소싸움 대회는 ‘성안’과 ‘성밖’의 대결로 시작되었다. 당시 성안의 부호(富豪) ‘김선여(金善汝)’와 성 밖의 부농(富農)인 ‘오작지(吳作之)’는 소와 축우(畜牛)를 유별나게 좋아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키우고 있는 우량소를 자랑하다가 우열 경쟁에 나섰다. 이에 마을 주민들까지 합세하면서 성안과 성밖의 소싸움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성안과 성밖의 소싸움 대결은 유명세를 떨치면서 영남의 전역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진주의 소싸움대회가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총독부는 수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소싸움 대회를 중지시켰다. 혹시 항일운동으로 번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소싸움 대회가 다시 부흥한 것은 1923년. 조선인들이 끊임없이 소싸움대회를 열망하던 와중에 총독부의 축산 장려 정책과 맞물려 소싸움대회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 싸움소들의 현란한 기술
논밭을 가는 소들을 보면 우직하고 선해 보인다. 유교에서 소는 호랑이와 싸워 주인을 구하고, 대신 자신은 죽는 의로운 동물로 상징된다. 불교에서는 수행을 통하여 본성을 깨닫는 본래의 인간을 뜻한다. 우리 문화에서 소는 충직하고 근면한 농경의 전파자이다. 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마흔 살의 소를 보라! 늙은 소는 늙은 주인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삶을 마감한다. 이처럼 소의 상징은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선한 동물로서 비쳐진다.
하지만 소싸움대회에 출전한 소들은 농사짓는 소와는 판연히 다른 모습이다. 상대방을 본 싸움소들은 전의에 불타 우~웅 소리를 지른다. 뿔과 머리로 상대 소에게 달려들어 일격을 가한다. 맹렬히 돌진하는 싸움소들의 승부욕은 감당해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싸움에 진 소는 아쉬워서 울음소리를 내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격투기에서 패한 뒤 링에서 내려오지 않는 선수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소싸움의 기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밀치기, 머리치기, 목치기, 옆치기(배치기), 뿔걸이, 뿔치기, 들치기가 대표적이다. 밀치기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기술이며, 머리치기는 뿔이 아닌 머리의 정면으로 들어 박는 기술이다. 소싸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머리치기이다. 소싸움의 묘미는 뿔로서 상대 소를 공격하는 기술이다. 뿔치기는 뿔을 좌우로 흔들어 상대의 뿔을 치며 제압하는 것이다. 뿔걸이는 뿔을 걸어 누르거나 들어 올려 상대소의 목을 꺾는 공격법이다. 현란한 소싸움의 기술에 비하여 승패의 결정은 단순하다. 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소가 패한다. 상대소의 위압에 눌려 싸울 의지를 상실한 소가 지는 것이다.
다양한 기술을 보여주며 서로 치고 받는 소싸움은 이종격투기를 능가하는 격렬함을 보여준다. 소싸움 대회를 보는 이들은 손에 땀을 쥐며 경기 내내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다. 관람객들은 강한 투지로 싸우는 소들의 싸움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따지고 보면 소들의 싸움은 인간들의 대리전(代理戰)이다. 싸움의 주체는 소이지만 뒤에는 소주인들이 있다. 간혹 동물보호협회로부터 동물학대라는 비판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싸움소는 마을의 명예를 걸고 싸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소싸움은 서양의 투우처럼 잔인한 결말로 끝내지 않는다. 과거 농촌에서 소는 생구(生口)라 할 만큼 동물이 아닌 가족처럼 생각되었다. 집안의 귀중한 자원을 소싸움대회에서 죽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지더라도 약간의 상처가 날뿐 다시 재기의 도약을 충분히 꿈꿀 수 있다. 지금 소싸움대회는 소 주인의 이름을 걸고 개별적으로 출전하지만 과거에는 마을 간의 대항으로 벌어졌다. 주로 추석을 맞이하여 강변이나 개천가의 모래사장에서 소싸움대회가 이뤄졌다. 여기에 나가는 소는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세고 사나운 황소였다. 소들이 대회에 나갈 때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풍물을 치면서 응원을 했다. 요컨대 소싸움대회는 마을 간의 대항전이요, 하나의 편싸움이었다. 소가 이기면 마을이 이기는 것이요, 소가 지면 마을이 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마을 소가 이기면 그 마을에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소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유명한 싸움소에 주는 보양식은 일반 사람들도 구경하기 어려운 것이다. 싸움소에게 보양식을 먹이는 관습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앞서 말한 「진주의 투우」에서도 싸움소에게는 콩과 쌀, 생계란을 먹이고, 소고기와 개고기를 갈아서 즙으로 먹인다고 하였다. 심지어, 인삼즙과 뱀술까지 먹인다고 하였으니 모든 좋은 것은 다 먹이는 것이다. 요즈음에도 싸움소에게 인삼과 녹용, 청심환 등 가장 좋은 한약재로 보신을 시킨다. 아마도 싸움소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대접받은 동물일 것이다.
■ 격렬한 힘의 향연이 펼쳐지는 소싸움 경기장으로
그러나 보신을 시킨 싸움소는 곧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2백 킬로그램 가 까이 되는 폐타이어를 끈 채로 10리를 왕복시킨다. 이 폐타이어에는 흙과 돌이 가득 차 있다. 소의 끈기와 힘을 길러 주기 위해서 하는 훈련이다. 또, 나무 밑동과 흙덩이에 머리를 사정없이 받게 한다. 머리와 목을 단련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거칠고 전문적인 훈련을 거쳐야 비로소 출전할 수 있는 싸움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싸움소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도 중요하지만 좋은 체격을 갖고 태어나야 한다. 눈이 작고 매서워야 하며, 뿔 사이 간격은 좁고, 목은 굵어야 하는 법이다. 또한 몸이 반듯하고 꼬리가 길어야 한다. 5세부터 8세까지가 싸움소의 활동기라 할 수 있는데 나이가 너무 많거나 적으면 체격이 클지라도 지구력이 약해진다. 그런데 체격이 크다고 싸움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끈기가 있고, 투지가 강한 소만이 진정 승리를 낚아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진주의 소싸움 대회는 경남의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창원, 마산, 창녕, 김해, 거창, 부산 등 거의 소싸움대회를 개최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소싸움대회가 커지다 보니 싸움소를 기르는 주인들도 많아졌고, 크고 튼튼한 싸움소를 만들기 위한 개량도 이뤄졌다. 그런데 문제는 소싸움대회가 엄청나게 커지다보니 금전이 오고가는 도박판까지도 커졌다는 점이다. 지금도 청도소싸움 경기에 갬블의 도입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이러한 사행성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소싸움대회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경남의 기초자치단체들은 민속 이벤트와 관광 콘텐츠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로 인하여 싸움소들의 격렬한 맞대결을 보기 위해서 소싸움 경기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진주와 청도에는 소싸움 상설경기장까지 만들어졌으니 특별한 시기가 아니더라도 소싸움을 구경할 수 있다. 이제 6월을 맞아 육중한 싸움소들의 기세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격렬한 힘의 향연장이 펼쳐지는 소싸움 경기장으로 한번 달려가 보는 것이 어떠한가.
필자소개
유승훈 : 경희대,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청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를 지냈고, 현재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역사 민속학의 관점에서 한국인의 민중 생활사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우리나라 제염업과 소금 민속』(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우리 놀이의 문화사) 등 여러 책이 있다.
<대순회보 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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