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求道心)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의 거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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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수 작성일2019.02.20 조회1,714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김성수
2006년 6월 30일 오후 2시경에 인도 종교문화답사대 12명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어 인디아)에 몸을 실었다. 이번 답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구 정신문화연구원) 종교문화연구소의 자체 프로그램이었는데, 가을부터 대순진리회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연구소 측에서 상호 교류를 목적으로 우리 종단을 초청하였고 이에 교무부에서 2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이 탑승했던 에어 인디아는 인도를 대표하는 항공사였다. 그런데 내부의 플라스틱 벽면에는 때가 끼어 있었고 나누어 준 담요에서는 약간 쉰내가 났다. 중간에 홍콩에서 두 시간 동안 경유할 때는 에어컨도 끄는 바람에 30℃가 넘는 실내에서 땀을 쏟으면서 참 특이한 항공사도 있구나 생각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25일간이나 체류해야 하는 인도의 모습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도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全無)한 상태였으므로….
홍콩 경유 2시간을 포함 총 10시간을 비행한 끝에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할 수 있었고 손목 위의 시계는 밤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도는 한국과 3시간 반의 시차(時差)가 있으므로 시계 바늘을 밤 9시로 돌려놓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나서니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임에도 자신의 차를 타라고 외치는 호객꾼들이 많이 보였다. 습기가 실린 후끈한 공기가, 아! 이제 정말 인도에 왔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현지인 한 명을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그를 기다리느라 11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로 이동하는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다마스와 비슷한 차였는데 에어컨이 없는 관계로 창문을 열고 달렸다. 비좁은 좌석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매연을 마시면서도, “첫날이니 다소 지출을 하더라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럭셔리한 숙소를 얻겠다.”는 답사대장의 약속을 위로삼아 델리의 야경을 감상하였다.
도착한 숙소는 답사대장의 호언과는 달리 지친 일행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하고 있었고 달리 또 숙소를 알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방을 얻었다. 보통 인도에서는 단지 에어컨의 유무에 따라 기차나 숙소, 식당의 가격이 2배에서 3배까지 차이가 난다. 이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 들어 온 객실인데 방에 들어가 보니 군데군데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에어컨은 그나마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정전으로 호텔의 비상발전기를 가동하고 있는 중이라 전등 정도는 켜져도 에어컨을 돌리기에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어컨은 포기하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 보니 여기 저기 피어 있는 곰팡이 자국과 찌그러진 철제변기가 마치 감옥을 연상시킨다. 뭔가 속은 기분이 들어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샤워를 마치니 머리카락이 철사처럼 뻣뻣해졌다. 아까 누군가로부터 인도의 수돗물에는 석회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샴푸로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열대야에 잠을 청하려 이리저리 뒤척였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다가 새벽 3시 정도가 되니 에어컨이 작동되기 시작하였고 곧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뜨니 5시다. 2시간 밖에 못 잤지만 머리는 푹 잔 듯이 개운하였다. 10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일본 특유의 깨끗함에 감탄하며 쉽게 잠을 청했지만 밤새 가위에 눌리며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아침에는 오히려 불쾌한 느낌으로 일어났던 것이 인도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침 9시쯤 되서 인도에서의 첫 식사를 위해 일행은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기차역 주변까지 걷는 동안 버스, 트럭, 자전거, 오토릭샤(인도의 택시, 가격에 따라 몇 종류의 택시가 있다), 소달구지 등이 한데 뒤섞여 저마다 경적을 울려가며, 신호등은 물론이고 차선도 없는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에 좀처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노점을 여는 사람, 신에게 기도를 하는 사람, 거리에 누워 있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 등이 뒤섞여 그야말로 무질서의 표본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때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거의 지옥에 가까운 모습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누구라도 이 광경을 본다면 인생이 고(苦)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수도에 전념하였던 석가모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사람들은 아침 메뉴로 짜파티(밀가루 반죽을 빈대떡처럼 납작하게 눌러 구운 빵)를 기름에 지져 낸 ‘파라타’(사진 참조)나 기름에 튀긴 ‘뿌리’라는 음식을 주로 먹는다. 이를 오른손(반드시 오른손이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 편에서 볼 수 있다)으로 조금씩 뜯어 ‘커리’(우리가 흔히 카레라고 부르는 음식은 인도의 커리를 일본사람들이 달착지근한 맛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오리지널 커리는 강한 향신료가 들어 있기 때문에 식성에 따라 못 먹는 사람도 있다.)에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 아침 식사이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어젯밤 일행에 합류한 인도 현지인이 밖에 나가서 사람 수대로 음료를 배달시켜 주었다. ‘라씨’라는 이름을 가진 이 음료는 약간 걸쭉한 요구르트인데 맛이 상상 외로 훌륭하였다. 이후 한 달 동안 여러 곳에서 라씨를 시켜 먹었지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곳보다 맛있는 라씨는 찾을 수 없었다.
식사 후 다음 목적지인 시크교(敎)의 고장 ‘암리차르’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표를 구매하려고 하였으나 13명이나 되는 인원이 무거운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돌아다니기가 여의치 않아 소형 관광버스 하나를 대절하기로 하였다. 버스에 올라보니 역시나 머리가 닿는 부분인 흰색의 좌석 시트는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커먼 색깔을 하고 있었다. 에어컨이 있었지만 성능이 시원치 않은지 4단까지 틀어 놓은 실내온도가 32℃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글이글 타는 햇볕 속에 버스는 델리를 출발하여 암리차르가 있는 펀잡주(州)를 향하여 북서쪽으로 이동하였다.(1편 끝)
<대순회보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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