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훈시종통에 대한 훈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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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6.20 조회438회 댓글0건본문
상제님을 직접 모시는 종단에는 우리 대순진리회 외에 증산교, 증산법종교 등이 있지만, 증산교는 종통을 고씨부인이라 하고, 증산법종교는 종통을 상제님의 딸 강순임이라 한다. 증산교의 경전인 『대순전경』은 이상호 씨가 고증을 받아 만들었으나 구천상제님이라고 뚜렷하게 못 밝혔다. 구천상제님(하느님)이라고 뚜렷이 내놓고 믿는 데는 대순진리회밖에 없고, 구천상제님이라고 밝힌 분은 오직 도주님뿐이시다.
우리의 일은 모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 안면도(安眠島)는 우리 도인들로서는 뜻이 깊은 곳이다. 도주님께서 봉천(奉天)에서 귀국하셔서 처음에 크게 편안하다는 뜻을 지닌 태안(泰安)에 닿으셨는데 천리포, 만리포를 거쳐 첫발을 디디신 곳이 편안하게 쉰다는 뜻을 지닌 안면도이다. 나중에는 제민사업으로 간척공사와 염전을 이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안정(安定)을 주신 곳으로 안면도는 우리 도가 태동(胎動)한 곳이다. 정읍 마동(馬洞)에서 선돌부인에게 봉서를 받으실 때, 후에 원불교 소태산의 후계자가 된 이가 먼저 와 있었다. 종통의 봉서를 받으려고 했으나 주인이 아니므로 받지 못했다. 마동(馬洞)의 마(馬)는 조씨(趙氏)를 말함이다.
우리가 옳고, 전통이 바르고 틀림없다. 도주님께서는 원래 도를 받드시려고 만주 봉천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다. 조씨(趙氏) 가문은 배일사상가 집안이다. 이런 적극적인 가문이 아니면 봉천에 가실 일이 없다.
도주님께서는 산에 들어가셔서 득도를 하시었다. 봉천(奉天)에서 봉천명(奉天命)을 하셨다. 도를 받으실 때 지혜가 밝으셨다. 그 당시 20대의 지혜가 지금의 40대만큼 밝았다. 증산교에서는 도주님이 보천교를 믿다가 태극도를 믿었다고 거칠게 말한다. 잘못된 것이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지 8년 후에야 보천교가 창설되었다. 23세 시 정사년(1917) 태을주로 도를 얻으셨다. 2월 10일에 득도하시고 계시를 받아 4월에 조선으로 나오셨다.
<1988년 음8월 18일 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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