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교운을 펴는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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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11 조회5,796회 댓글0건본문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9[己酉]년의 봄도 점점 무르익어갔다. 동곡약방에 머물고 계셨던 상제님께서는 교운(敎運)을 펴는 공사를 보시고자 하셨다. 예전에 언젠가 상제님께서는 “교운을 보리라.”고 하시며, 종도들에게 눈을 감은 채 세숫대야의 물을 들여다보도록 시키신 적이 있으셨다. 그랬더니 종도들은 세숫물이 갑자기 큰 바다가 되고 그 바다 속에 뱀머리와 용꼬리가 굽이치는 것을 보았다. 상제님께서는 놀란 종도들에게 “나의 형체는 사두용미(蛇頭龍尾)니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의미는 용두사미(龍頭蛇尾)의 반대로서 시작은 보잘 것 없지만 가면 갈수록 크고 훌륭해진다는 뜻이다. 이제 상제님께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펼치는 공사를 보고자 하시는 것이었다.
상제님께서는 1년 전에 동곡약방 뒤편에 대나무 여러 그루를 직접 심으셨는데, 이제 그 대나무들이 제법 자라서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밤이 되자 상제님께서는 종도 아홉 명을 벌려 앉게 하시고는 김갑칠에게 그 푸른 대나무들 가운데 하나를 마음 내키는 대로 잘라오도록 시키셨다. 김갑칠은 명을 받들어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대나무를 잘라왔더니 묘하게도 그 대나무의 마디 수가 정확히 열 개였다. 상제님께서는 열 마디 중의 가장 굵은 한 마디를 따로 끊어 두시며 “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受敎者)의 수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늘에 별이 몇이나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니, 김갑칠이 방 밖에 나가 하늘을 확인하고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에 별 아홉이 반짝입니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상제님께서는 “그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니라.”고 일러주셨다. 이어서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楚將蜂起)와 같이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되 다시 진법이 나오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상제님의 대나무 교운 공사에서, ‘푸른[靑]’ 대나무 열 마디 가운데 가장 굵은 한 마디는 ‘대두목(大頭目)’을 의미한다. 상제님께서는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불·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心身)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라고 하신 적이 있으셨다.01 즉 대두목은 상제님의 뒤를 이으실 종통계승자를 의미한다. 주지하듯이 청림도사(靑林道士)02이신 도주님께서는 50년 공부 종필(終畢)로써 도통을 이룰 수 있는 실제적인 모든 수도법방을 짜놓으셨다. 도통줄을 전해 받으신 분은 종도들이 아니라 도주님이셨던 것이다. 하지만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을 직접 모신 친자종도(親炙從徒)가 아니셨고 또 상제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종통을 세우셨기에, 그 도통줄이 전해짐은 실로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종도들이 종통을 계승하신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므로 종도들은 상제님의 후계자가 자기 자신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각자 종교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던 것이니, 많을 때는 그 수효가 무려 100을 헤아릴 정도였다.03 초장봉기란 초나라 장수들이 벌떼와 같이 들고 일어선다는 뜻이니, 상제님께서 수교자가 아홉이라 하시며 초장봉기를 일러주심은 장차 상제님을 받드는 종교단체들이 무수히 생길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이셨다. 하지만 그 많은 종교단체들 가운데에서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줄을 이어받은 대두목을 찾아가는 것은 오직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04 이것이 상제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교운(敎運)이었다.
이 공사 후, 어느 날 저녁에 상제님께서는 동곡약방에서 ‘三十六萬神’과 운장주를 쓰시고 종도들에게 “이것을 제각기 소리 없이 700번씩 외우라.”고 이르셨다. 얼마 간 시간이 지나자 상제님께서는 “날마다 바람이 불다가 그치고 학담(瘧痰)05으로 넘어가니 사람이 많이 죽을까 염려하여 이제 화둔(火遁)06을 묻었노라.”고 가르쳐주셨다. 학담은 열 때문에 생긴 병증이니, 곧 화기(火氣)와 관련이 있다. 약 3년 전인 1906년 4월, 상제님께서는 김형렬의 집에서 화둔을 쓰리라고 하신 적이 있으셨는데,07 이제 화(火) 기운으로 사람들이 많이 상하지 않도록 다시 화둔을 묻으신 것이다.
또 상제님께서는 김형렬에게 64괘를 그리게 하시고, 그 괘들 주변으로 24방위 글자를 둘러쓰게 하셨다. 김형렬이 상제님의 명에 따라 작성하여 올리니, 상제님께서는 그 종이를 들고 밖에 나가셔서 태양을 향해 불사르셨다. 그리고 “나와 같이 지내자.” 하시더니, 김형렬을 돌아보시며 “나를 잘 믿으면 해인(海印)을 가져다주리라.”고 일러주셨다.
그 당시 민간에서는 해인을, 도깨비 방망이나 여의주같이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고 각종 신기한 조화를 부리게 해주는 신기한 보배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훗날에는 몇몇 종도들이 상제님의 말씀이라 핑계하여 자기들 임의대로 해인이라는 도구를 만들어 마음대로 조화를 부릴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도주님께서는 “상제께서 해인을 인패(印牌)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여 어떤 물체로 생각함은 그릇된 생각이니라. 해인은 먼 데 있지 않고 자기 장중(掌中)에 있느니라.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의 근원이 바다에 있으므로 해인이요, ….”라고 하시어, 해인이 어떤 ‘도구’가 아님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해인이 장중 즉 손 안에 있다고 하셨으니 이것을 도인들은 손에 살릴 생자(生字)를 쥐고 다닌다는 상제님의 말씀과08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결국 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해주는 해인은 도통을 이루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해인이란 도에 통함으로써 조화를 부릴 수 있게 되는 능력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당신을 믿으면 해인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해인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제님을 믿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는 마음을 바탕으로 삼생(三生)의 인연이 닿아서, 상제님의 도통줄을 이어받아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께서 짜 놓으신 수도법방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수도법방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심(邪心)과 사심(私心)을 버리고 일심(一心)으로 바르게 수도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반드시 밟아야만 도통을 이룰 수 있고 해인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09
상제님께서는 동곡약방에서 연이어 공사를 보셨다. 어느 날 약방 대청에 앉으시더니 류찬명을 불러 대청 아래에 앉히셨다. 그리고 류찬명에게 ‘淳昌五仙圍碁, 務安胡僧禮佛, 泰仁群臣奉詔, 淸州萬東廟’라 쓰게 하셨는데, 류찬명이 글을 쓰다가 잠시 방심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즉시 그에게 “신명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꾸짖으시니, 화들짝 놀란 류찬명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써 올렸다. 상제님께서는 그 글이 적힌 종이를 불사르셨다. 옆에서 시좌하고 있던 한 종도가 상제님께 이 공사가 무슨 뜻인지 여쭈었으나, 상제님께서는 때가 오면 알 것이라는 말씀만 내리셨기에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약 한 달 후, 상제님께서는 사명당(四明堂)공사를 보시는데, 혹 이것과 관련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상제님께서는 김형렬과 김광찬을 따르게 하시고 동곡약방을 떠나 전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용머리고개가 있고, 그 곳에 김낙범이 살고 있었다. 예전에 상제님께서는 폐병에 시달리고 있던 김낙범의 아들 김석(金碩)을 고쳐주신 적이 있으셨는데,10 이제 18살이 된 그 아들이 상제님 문하에 들고자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김석을 가운데 앉게 하시고 김형렬과 김광찬이 좌우에 서서 태을주를 21번 읽게 하셨다. 그리고 다시 김석에게 태을주를 따라 읽도록 시키셨다.
상제님께서 용머리고개에 머무실 때, 하루는 밤에 마당에 촛불을 밝히게 하시고 ‘天有日月之明 地有草木之爲 天道在明故人行於日月 地道在爲故人生於草木’11이라 써서 불사르셨다. 이때 갑자기 구름이 하늘을 덮고 비바람이 크게 일어났다. 그런데도 마당에 켜진 촛불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상제님께서 류찬명에게 밤하늘의 별을 살피게 하시니, 그는 상제님께 서북쪽 밤하늘은 구름이 가득한데 그 사이로 별 하나만 반짝이며, 동남쪽 밤하늘은 구름이 흩어져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음을 아뢰었다. 그러자 상제님께서는 “서북에서 살아날 사람이 적고 동남쪽에서 많으리라.”고 알려주셨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상제님께서는 “오늘 청국 만리창 신명이 오리니 잘 대접하여야 하리라.”고 이르셨다. 그 말씀하신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로부터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그 첫째는 중국에 ‘만리창’이 없었고 한국에 ‘만리창’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울 서대문구 만리동(萬里洞)은 세종 때 문신 최만리(崔萬理, ?~1445)가 살던 곳이라 하여 생긴 지명인데, 이곳에 조선시대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는 진휼청(賑恤廳)의 창고인 만리창(萬里倉)이라는 국가시설이 있었다. 만리창은 순조 때에 선혜청(宣惠廳) 소속으로 넘어갔으며, 주로 황해도와 전라도로부터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대동미]을 저장했던 곳이다.12 둘째는 1906년 여름에 상제님께서 군산에서 공사를 보실 때 ‘地有群倉地使不天下虛 倭萬里淸萬里洋九萬里 彼天地虛此天地盈’13이라는 글을 쓰시고 불사르신 적이 있으셨는데, 이때 이 글에 ‘淸, 萬里, 倉’의 단어가 보이고, 이것은 만리나 되는 넓은 청나라 지역의 창고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로 미루어보면, 아마도 청국 만리창은 청나라 넓은 지역[萬里]의 곡식이나 비단 등의 갖은 물품을 저장하는 창고들을 총칭하는 말인 듯하고, 결국 청국 만리창 신명이란 중국의 풍부한 물산(物産)을 관리하는 신명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나 한다. 상제님께서는 중국에서 보은신이 한국에 은혜를 갚기 위해 넘어와 영원한 복록을 주리라고 하신 바 있는데,14 아마 청국 만리창 신명이 넘어 옴은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어서 용머리고개를 떠나시기 직전에 상제님께서는 우사(雨師)를 불러 비를 내리는 공사를 보시고자 하셨다. 그때 이치복(李致福, 1860-1944)이 상제님을 찾아뵈었다. 상제님께서 그를 보시고 “이런 때에 나이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절을 받느니라.” 하시니, 이치복이 상제님께 즉시 사배를 올렸다. 상제님께서는 “금년에 비가 극히 적으리라. 만일 오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천지에 동과혈(冬瓜穴)이 말라 죽으리라. 그러므로 서양으로부터 우사를 불러서 비를 주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동과(冬瓜)는 한해살이 덩굴식물로서 그 열매는 길쭉한 수박과 비슷하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며, 보통 겨울 가까이에 이르러 수확한다. 동과는 가뭄에 특히 잘 견디고 토양적응성이 뛰어나다. 동과혈(冬瓜穴)은 이러한 동과의 특성을 지닌 풍수 혈(穴)로서, 농작물의 생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상제님께서는 가뭄에 잘 견디는 동과혈이 말라죽으리라 하셨으니 참으로 극심한 가뭄이 닥치게 되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술상을 차리게 하신 뒤 이치복에게 술 두 잔을 주시고, 한 잔을 요강에 부으셨다. 과연 그 날 비가 내려 생민의 고통이 덜어지게 되었으니, 이는 오직 상제님의 권능으로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순회보>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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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교운 1장 41절.
02 『채지가』 중 「뱃노래」에 “찾아가세 찾아가세 청림도사 찾아가세”라는 구절이 있다. 이때 청림도사(靑林道士)는 곧 도주님을 말한다.
03 김홍철·류병덕·양은용, 『한국 신종교 실태 조사보고서』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p.152.
04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 (교법 1장 4절)
05 학질에 담증(痰證)이 겹쳐진 병증. 학질이란 말라리아 열병을 말하고, 담증이란 몸의 분비액이 큰 열을 받아서 생기는 병을 말한다.
06 불을 이용하여 부리는 각종 조화. 『기문둔갑장신법(奇門遁甲藏身法)』에 따르면 금둔(金遁), 목둔(木遁), 수둔(水遁), 화둔(火遁), 토둔(土遁)을 오행둔(五行遁)이라고 한다. 이중 화둔은 불로써 조화를 부리는 것을 말하는데, 화둔주(火遁呪)를 세 차례 읽고 화둔부(火遁符)를 태우면 불이 곧 일어나고, 불을 끄려면 멸화주(滅火呪)를 세 차례 읽고 멸화부(滅火符)를 태우면 된다고 한다. 상제님께서 사용하신 화둔은 이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우주 운행과 질서에 관계 되는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07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47: 최익현과 일심(一心)」, 『대순회보』 111호 (2010), p.10 참조.
08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예시 87절)
09 해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차선근, 「해인에 대한 고찰」, 『상생의 길』 2 (2004), pp.151~192; 김영지, 「대순사상에 나타난 해인 연구」, 『대순회보』 139 (2012), pp.98~119 참조.
10 상제께서 덕찬을 동행케 하여 김낙범의 집에 가셔서 그의 아들 석(碩)을 사랑으로 업어 내다가 엎드려 놓고 발로 허리를 밟으며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손을 붙들어 일으켜 걸려서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닭 한 마리를 삶아서 먹이라고 일러 주시니라. 이로부터 석의 폐병이 나았도다. (제생 22절)
11 하늘에는 일월의 밝음이 있고 땅에는 초목의 이루어짐이 있도다. 하늘의 도는 밝음에 있으므로 사람은 일월에 맞추어 살아가고, 땅의 도는 이루어짐에 있으니 사람은 초목에 맞추어 살아가도다.
12 『한국한자어사전』 권3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02), p.994.
13 땅에 군창(群倉)이라는 곳이 있으니 천하가 텅 비지 않도록 하라. 일본도 만리(萬里)이고 청국도 만리인데 서양은 9만리이다. 저들의 천지는 텅 빌 것이며 이 천지는 가득 찰 것이로다.
14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70: 소중화가 대중화로 되리라」, 『대순회보』 134호 (2012), pp.16~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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