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신축년에 천지대도를 열으시고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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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작성일2021.02.24 조회5,781회 댓글0건본문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차선근
상제께서 신축년 五월 중순부터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 가셔서 그 절 주지승 박금곡에게 조용한 방 한 간을 치우게 하고 사람들의 근접을 일체 금하고 불음 불식의 공부를 계속하셔서 四十九일이 지나니 금곡이 초조해지니라. 마침내 七월 五일에 오룡허풍(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열으시고 방안에서 금곡을 불러 미음 한 잔만 가지고 오라 하시니 금곡이 반겨 곧 미음을 올렸느니라. (행록 2장 12절)
올해는 2021년의 신축년이다. 두 갑자(120년) 이전인 1901년의 신축년은 상제님께서 대원사에서 49일 동안 불음불식(不飮不息)하시고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여셨던 해다. 망해가던 우주가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던 것이건만, 그 일은 미증유(未曾有: 이제껏 있었던 적이 없음)의 천비(天秘)였기에 보통의 일반인이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축[2021]년을 맞이하여 이 글은 두 갑자 전의 신축[1901]년에 천지대도가 열렸음에 주목하고, 몇 가지 주제를 정하여 관련되는 이야기를 약간 풀어보고자 한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이라면 익히 다 아는 기초적인 내용일 것이나 아직 글로 정리되어 출판된 것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그리고 도문(道門)에 갓 들어온 수도인에게 약간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제님께서 여신 천지대도란 무엇을 말하는가?
또 여기에서 읽어야 하는 사실은 무엇인가?
둘째, 상제님께서 천지대도를 여신 후 공사를 보셨다고 하나,
실은 그전에도 공사를 보셨다.
그 공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셋째, 상제님께서 천지대도를 여신 것과 관련되는
시간의 상징적 의미가 혹 있는가?
1. 상제님께서 여신 천지대도란 무엇인가?
▹ 천지 도수의 상도가 어겨지다
천지는 아무렇게나 운행하지 않는다. 천지가 나아가는 길에는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을 상도(常道)라고 한다. 천지는 상도에 따라 도수(度數)를 구성한다. 도수는 특별한 원리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펼치는 일종의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서 천지의 질서를 구현해낸다. 천지의 도수가 상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천지의 모든 생명이 질서를 갖추고 존재할 수 있다. 천지의 도수가 상도를 잃는다면, 천지의 운행이 일관성을 잃고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게 되어 그 안에 존재하는 생명은 삶을 영위할 수가 없게 된다.
천지 도수는 반드시 상도에 따라야 하며, 그 상도는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상도가 훼손되고 천지 도수가 어긋나는 사태가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은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이 일으킨 대규모 혼란, 그리고 생태 파괴가 가져다주는 재앙이 선을 넘어버린 현대에 이르러서야 벌어진 게 아니었다. 천지 도수가 상도를 잃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대략 400여 년 전에 있었다. 현재 우리가 겪는 모든 종류의 참상이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400여 년 전의 어느 한 사건이 만든 후폭풍이 200년 동안 휘몰아친 끝에 본격화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류의 역사를 보면 4,200여 년 전 요순시절, 왕이 되어 힘없는 주변 약소 부족들의 권익을 대변하려고 했던 단주가 부친인 요임금으로부터 그 꿈을 인정받지 못하여 원(冤)을 품었고, 거기서부터 비롯된 순의 죽음, 그리고 순의 두 왕비의 잇따른 죽음은 하나의 거대한 원(冤)의 뿌리를 세상에 박았다.01 그리고 그것이 점점 세상에 퍼지고 퍼짐에 따라 세상은 점점 혼란의 지경으로 빠져가고 있었다. 원이 만들어내는 혼란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왔는데, 그것이 드디어 임계점을 넘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는 천지신명이 상제님께 세상 존망(存亡)의 위기를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던 때, 즉 바로 200여 년 전이었다. 그리고 그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있었다.
우리 종단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선천은 상극이 지배하는 세상이었고, 상극은 원(冤)을 만들었으며, 원은 천지 도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상제님의 가르치심에 의하면, 그러한 천지 도수의 상도를 무너뜨린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이탈리아 마체라타(Macerata)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가 동양으로 왔다가 1610년에 죽은 후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던 일이었다. 즉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이었다.
문운이 열렸다는 것은 학문이나 예술, 문화나 문명이 크게 진보함을 의미하는데, 특히 유럽에서 1700년대 중반부터 100년 동안 진행된 산업혁명을 주목할 수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거의 250만∼300만 년 동안) 수렵⋅채집의 방랑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대략 기원전 1만 년 전후로부터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농업혁명을 맞이함으로써02 획기적인 문명의 향상을 이룬 적이 있었다. 그와 비견되는, 아니 오히려 그것을 압도하는 두 번째 문명의 대변혁이 바로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은 획기적인 공업의 발전과 물건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이제껏 없었던 진보된 문명과 근대를 활짝 열어놓았다.03
마테오 리치 사후 200년 동안 서양에서 문운이 열렸으나 그 결과로 나타난 서양의 문명은 물질에 치우친 나머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었다. 그런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고 온갖 종류의 죄악을 끊임없이 범하니, 신도(神道)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어 그로써 천도와 인사의 상도도 어겨지기 시작했다.04 여기에서 신도(神道)라고 함은 우주의 근원적⋅보편적 진리, 혹은 우주의 운행과 질서유지를 담당하던 신명계 그 자체를 말하고,05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짐은 천지 도수가 무너짐을 의미한다. 신도의 권위 추락, 즉 ‘우주의 운행 질서를 담은 근원적인 진리와 신명계의 권위가 없어진 것’은 천지 도수의 상도를 무너지게 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둘째, 천지 도수의 상도가 무너졌다는 것은 천지에 속한 생명이 살아갈 수가 없게 됨을 의미했다. 이로써 온 세상은 완전히 멸망해버리는 진멸(盡滅)의 상황으로 점차 빠져들었다. 신성(神聖)06과 불⋅보살들은 이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에게는 유례가 없었던 전 우주적 대재앙을 막을 힘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급히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強求)한 끝에 구천에 계신 상제님께 나아가 이 엄청난 재앙[劫厄]을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신도(神道)와 신명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상도가 어겨진 상황에서, 재앙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그 모든 것을 총할하시는 상제님뿐이셨으리라!
▲ 1920년대 말 금산사의 모습: 「日本地理風俗大系」에 수록된 소개사진
구천의 상제님께서는 그들의 하소연을 받아들이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며 사정을 모두 확인하신 후, 궁벽한 한반도의 이 땅에 오셔서 금산사 미륵금불에 임어(臨御)하시고 ‘30년’을 지내셨다. 그리고 1860년 최수운에게 가르침을 내리시어 천명과 신교를 세우게 하셨으나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시고, 직접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셔서 신명과 창생을 구제하시고자 하는 목적에서 묵은 하늘과 묵은 땅을 뜯어 만고에 쌓인 모든 원(冤)을 풀고 상극의 운로(運路)를 상생의 운로로 돌려 새로운 하늘과 땅을 여시는 후천 개벽의 대역사(大役事)를 펼치셨다.07
이상 두 가지의 사실, 즉 마테오 리치가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간 후 1700년∼1800년대 사이 서양에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물질문명이 발전한 것, 그리고 상제님께서 1860년의 ‘30년’ 전인 1831년 무렵에 금산사 미륵금불에 임하셨던 것, 바로 그 사이에 천지 도수의 상도가 무너지고 신명들이 구천의 상제님께 하소연한 사건이 일어났다. 상제님께서 금산사에 임하시기 얼마 전에 신명들의 하소연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천지 도수의 상도가 무너진 시기는 1800년대 초기일 것으로 더 범위를 좁힐 수 있다. 2021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천지 도수의 상도가 무너져 천지신명들이 상제님께 하소연했던 시기가 대략 200여 년 전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상제님께서 무너진 천지 도수의 상도를 바로 잡으시고자 천지대도를 여시다
천지 도수의 상도가 무너져 뭇 생명의 존망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상제님께서는 대원사 공부를 통해 천지대도를 열어놓으셨다. 이 공부의 목적은 명백히 무너진 천지 도수의 상도를 바로 잡으시기 위함에 있었다. 그러하다면 상제님의 대원사 공부는 진리를 체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세상을 구제하는 방책을 마련하는 과정이며, 천지대도를 여심은 감추어져 있던 비밀스러운 천지의 원리를 밝혀내심이 아니라 세상을 구제하는 방책을 만드심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앞서 설명한 일련의 상황, 그러니까 천지 도수의 상도가 무너지고 신명들이 하소연한 상황은 상제님의 대원사 공부가 천지의 법칙이나 원리 혹은 진리를 깨달으시거나 밝히시거나 체험하시는 차원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일부 증산계 교단이나 몇몇 외부 사람들은 상제님의 대원사 공부를 ‘몰랐던 것을 깨닫는 각(覺)의 차원’에서 이해하지만,08 그것은 상제님께서 대원사 공부를 하신 이유와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까닭에 벌어진 오해다.
상제님의 대원사 공부가 인간의 진리 추구나 깨달음의 차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최고의 대각(大覺)을 이루었다고 하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경우를 살펴보자.
고대 인도의 한 작은 왕국의 태자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살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성 바깥으로 잠시 나갔다가 동⋅남⋅서⋅북의 4개 문을 차례로 거치며 늙은 자, 병든 자, 죽은 자, 수행하는 자를 순차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사문유관(四門遊觀)의 경험을 통해 싯다르타는 사람이 반드시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출가하였고, 6년 동안(29세 출가, 35세 대각)의 고된 수행 끝에 번뇌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자)가 되었다. 붓다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깨달음, 깨침의 모범이 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가 대각한 것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원소가 뭉쳐서 생긴 존재인데,09 그 오온은 전생(前生)의 업보(業報)가 만든 카르마를 포함하는 연기(緣起: 인과관계)에 따라 집착과 욕망⋅갈애(渴愛) 그리고 탐(貪: 탐욕)⋅진(瞋: 분노)⋅치(癡: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일으켜 번뇌를 만들어낸다. 번뇌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겪도록 몰아넣는다[苦諦]. 그러므로 그 번뇌와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集諦] 모조리 물리쳐 삶과 죽음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어야 하며[滅諦], 이를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10를 실천⋅수행해야 한다[道諦]’ 바로 이것이 석가여래의 깨달음이었다.
석가여래의 깨달음은 우주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해답을 찾은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깨달은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이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백히 이것은 감추어지고 알려지지 않았던 세상의 진리를 밝혀내는 차원에 해당한다. 즉 인간이 알지 못하는 우주의 진리에 접근하는 맥락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상제님의 대원사 공부는 이런 게 아니다. 그 공부는 이전의 인간 역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었던 미증유(未曾有)의 것으로서, 인간이 수도하여 진리를 깨달았다는 부류의 관점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제님께서 대원사 공부를 하신 이유는 진리를 깨닫기 위함이 아니라, 신명들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무너진 천지 도수의 상도를 바로 잡아 뭇 생명을 살리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상제님의 대원사 공부는 삐뚤어진 천지 도수를 바로 잡고 상도를 정리하며 뭇 생명을 건지고자 하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지, 수행이나 수련으로써 우주를 이제껏 운행시켜 온 비밀스러운 원리나 법칙 또는 인간의 감추어진 운명을 깨닫거나 익히고자 함이라거나, 우주의 진리와 수행자가 합일하는 신비경험을 체득하여 신성(神性)이나 특별한 영성(靈性)을 자각하고자 함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 여신 천지대도란 무엇을 말하는가? 『대순진리회 요람』은 그것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정리하자면 상제님께서는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冤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하신 진리로써 인간을 고친다면, 보국안민과 지상천국이 자연히 실현되어 창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전대 미증유의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이다.11 이것이 바로 천지대도다. 그러니까 대원사 공부로 열어놓으신 천지대도는 삼계의 대권을 모두 가지신 구천의 최고신께서 무너진 천지 도수의 상도를 바로 잡아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내놓으신 비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첫째, 우리가 닦는 도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도를 닦는다. 그런데 그 도는 다른 도가 아니라 상제님께서 열어놓으신 천지대도라야만 한다! 상제님의 도가 이 세상의 여러 법을 합한 것12이라는 이유로 유불선이나 기독교[西敎]의 도를 언급하거나 인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공자, 맹자, 주자, 예수의 가르침을 제시하면서, 그 가르침 역시 도의 일부분이니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우리가 수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불도나 서교의 도를 닦는 게 아니다. 공맹 등 역대 성인들의 말씀은 상제님의 천지대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활용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성인들의 가르침은 진리이나 시대가 변한 지금에는 그 진리가 ‘모두’ 유효한 것이 아니다. 또 그분들의 가르침은 이 세상을 건질 방책도 되지 못한다. 만약 아직도 성인들 가르침이 전부 유효하다면, 그리고 그 가르침이 세상을 건지는 방책이 될 수 있다면, 신명들이 상제님께 하소연할 필요도, 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하실 필요도, 천지대도를 새로 여실 필요도 없었다. 유불선과 서교가 각각 나름의 진리를 가진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수천 년 전의 그 선천의 진리가 지금의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 특히 그 진리가 상제님의 천지대도에 모두 다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유불도와 서교의 진리들 가운데 상제님의 천지대도에 채택된 것은 무엇인지, 배제된 것은 무엇인지를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13 우리가 닦는 도는 상제님께서 새롭게 여신 천지대도일 뿐이라는 사실을 항시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수도가 단순한 진리 추구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닦는 상제님의 천지대도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비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지대도를 닦는다는 것은 천지의 이치를 깨치는 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개조하고 구원하며 세상을 구하는 차원’까지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수도에 해당한다. 『대순진리회 요람』과 「대순지침」은 이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자면 우리의 수도라는 것, 즉 상제님께서 열어놓으신 천지대도를 닦는다는 말은 대순진리를 근본 취지[宗旨]로 삼고 정성⋅공경⋅믿음[誠敬信]과 안심⋅안신, 윤리도덕과 무자기(無自欺)를 실천함으로써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여 인간을 개조하고 정신을 개벽하는 데 힘쓴다는 것이요, 그 완성이 도통이며, 그 수도와 도통의 목적은 포덕천하와 구제창생 실현에 이바지함에 있다는 것이다.14
세상을 구제하는 진리인 상제님의 천지대도는 과거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천지 도수의 상도가 무너지는 우주적 대참상이 벌어진 일이 없었기에, 온 세상을 구제하는 비책도 필요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천지대도는 세상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물과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세상을 구하는 진리란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15 설령 진리 추구에 조금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관심이 포덕천하로써 세상을 구제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큰 뜻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상제님의 천지대도를 깨닫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대순진리회의 목표가 나 자신의 완성, 인간의 완성을 넘어 구제창생과 지상천국 건설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생(三生)의 연이 있어야만 상제님의 천지대도를 따를 수 있고, 그런 연을 가진 사람이라도 오직 조상 선령신들이 60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야 겨우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16 사실관계가 이와 같다면 상제님께서 여신 천지대도를 닦아 구제창생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조상 선령신의 은혜에 보답하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인 우리가 받들어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01 『전경』, 공사 3장 4절. 이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차선근, 「단주의 원(冤)에 대한 이해」, 『대순회보』 175 (2015), pp.92-120 참고.
02 인간이 정착하여 농사를 지은 시기는 지역마다 다르다. 쌀농사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쌀은 한반도의 충북 청원군 소로리 볍씨로서 기원전 14000년 전의 것이다.
03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에드워드 맥넬 번즈·로버트 러너·스탠디시 미첨, 『서양 문명의 역사 Ⅲ』, 손재호 옮김 (서울: 조합공동체 소나무, 2001), pp.861-885.
04 “…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 『전경』, 교운 1장 9절; 공사 1장 9절.
05 『전경』에 등장하는 신도(神道)의 의미는 천도(天道), 신명계, 신명계의 질서, 상제님께서 여신 상생의 후천 천지대도 등 여러 가지다.
06 천지의 신명과 성인(聖人) 등 신성한 존재들.
07 『전경』, 교운 1장 9절; 예시 1절.
08 관련 논의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이강오, 「한국 신흥종교에서 보는 도교와 불로장생」, 한국도교사상연구회(편), 『도교와 한국사상』 (서울: 범양사출판부, 1988); 김영호, 「깨달음(覺)의 보편성과 특수성-불교와 증산의 경우」, 『한국종교사연구』 10 (2002); 박용철, 「대원사 공부의 이해에 나타난 종통의 천부성에 대한 고찰」, 『대순회보』 68 (2007).
09 오온(五蘊)이란 색(色: 신체)⋅수(受: 감정과 느낌을 받아들임)⋅상(想: 관념을 이룸)⋅행(行: 경험을 사실로 형성함)⋅식(識: 인지와 식별 작용)을 말한다.
10 팔정도는 정견(正見: 바르게 봄), 정사유(正思惟: 바르게 생각함), 정어(正語: 바르게 말함),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함), 정명(正命: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함),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노력함), 정념(正念: 바른 신념을 가짐), 정정(正定: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킴)이다.
11 “강증산 성사(聖師)께옵서는 구천대원(九天大元) 조화주신(造化主神)으로서 삼계대권을 주재하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인세(人世)에 대강(大降)하사,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仙境)의 운로(運路)를 열어 지상천국을 건설하고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과 재겁(災劫)에 빠진 세계창생을 널리 건지시려고 순회주유(巡回周遊)하시며 대공사(大公事)를 행하시니,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대도(大道)의 진리로써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이법(理法)으로 해원(解冤)을 위주로 하여 천지공사를 보은(報恩)으로 종결하시니 해원 보은 양원리인 도리(道理)로 만고에 쌓였던 모든 원울(冤鬱)이 풀리고 세계가 상극이 없는 도화낙원(道化樂園)으로 이루어지리니 이것이 바로 대순하신 진리인 것이다.” 『대순진리회 요람』, p.8; “강증산 성사께서는 이조 말엽에 극도로 악화 종교적⋅정치적⋅사회적 도탄기를 당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에 의한 종교적 법리로 인간을 개조하면 정치적 보국안민과 사회적 지상천국이 자연히 실현되어 창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전대 미증유의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시며 이에 수반된 삼계공사를 행하시다.” 『대순진리회 요람』, pp.10-11.
12 「전경」, 예시 13절.
13 한 가지씩 예를 들어 말하자면, 유교가 윤리를 말하나 차별의 윤리는 천지대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불교와 도교가 탈속(脫俗)을 말하나 그 원리는 천지대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서교가 유일신 경배를 말하나 그 섬김은 천지대도에 포함되지 않는다.
14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의 대순진리를 종지(宗旨)로 하여, 성(誠)⋅경(敬)⋅신(信)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의 훈전(訓典)을 삼아,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人間改造)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구제창생⋅보국안민⋅지상천국 건설을 이룩한다.” 『대순진리회 요람』, p.14;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 『대순지침』, p.38.
15 「전경」, 교법 1장 1절.
16 「전경」, 교법 1장 4절; 교법 2장 3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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