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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강성회에게 병풍을 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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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11 조회4,8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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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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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己酉]년도 이제 초여름에 접어들었다. 그 무렵 열여섯 살이었던 김병계(金炳啓)가 객망리 앞에 있는 초강(楚江)01의 들판 길을 지나다가 진창에 빠져 꼼짝 못하게 되었다. 마침 상제님께서 객망리로 오시다가 그를 보시고는 친히 진창에 뛰어드시어 그 아이를 건지시더니, 팔에 꼭 안으시고 들을 건너 본댁에 이르셨다. 상제님께서는 모친을 뵌 후, 진창에 젖은 버선을 벗으시고 새 버선으로 갈아 신으시는데 갑자기 그것이 쭉 찢어지기에, 다시 다른 새 버선을 한 손으로 신으셨다. 그리고 부엌에 걸려 있던 쇠고기를 모두 회로 만들어 잡수시고는, 김병계에게 “그놈 쓸 만한 줄 알았더니 ….” 하시고는 돌려보내셨다. 그제야 그 아이는 허둥지둥 돌아갔는데, 그는 훗날 커서 덕천면장이 되었다고 한다.
  상제님께서는 얼마간 본댁에 머무셨다. 하루는 가족들에게 ‘매사부대자연래(每事不待自然來: 매사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온다)’라고 이르시고, 강성회(姜聖會, 1859∼?)의 집에 가셔서 그의 넷째 아들 강영탁(姜永鐸, 1898∼?)에게 “장차 나를 대신하여 가사를 돌보라. 고목에 꽃이 피리라.”고 말씀하셨다.
  강영탁은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강씨 가문의 일가로서, 상제님 집안과 왕래를 자주 하며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진주 강씨 29대 강이온(姜利溫)이 도승지로 재직하면서 악정을 일삼던 연산군에게 충언을 올린 죄로 효수를 당하고, 이 일로 해서 강씨 문중 전체가 연좌(緣坐)되는 참화를 입자 강이온의 손자 강세의(姜世義, 1492∼1547)가 고부로 낙향함으로써 객망리에 강씨 가문이 형성되었는데, 그로부터 6대를 내려가면 진창(晋昌)·우창(愚昌)·응창(應昌) 삼형제 분이 나온다.02 상제님의 인신(人身)은 종가인 진창의 6대 손이셨고, 진창의 동생인 응창의 6대 손이 바로 강영탁이었다. 

  그는 훗날 상제님의 부친께서 돌아가셨을 때 상제님의 집안으로 차양(借養: 잠시 동안 양자로 감)되어 삼년상을 치렀으니, 이는 당신을 대신하여 가사를 돌보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또 상제님께서는 강영탁에게 훗날 네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석환(石幻)으로 하라고 하셨다는데, 과연 그는 훗날 아들을 낳았으니 족보상의 이름은 항렬인 형(馨)에 맞추어 강경형(姜炅馨, 1920∼1993)으로 하였으나 자(字)를 석환으로 하였다. 상제님의 모친께서는 강석환을 아주 귀여워하셔서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길러주셨다는 말도 전해진다.03 강석환은 훗날 커서 상제님 집안의 대를 잇는 호주상속을 하게 된다.
  상제님께서는 강성회에게 친히 글을 쓰신 병풍 한 벌을 주셨는데, 그 병풍을 강성회의 삼남(三男)인 강영호(姜永鎬)의 아들 강계형(姜烓馨)이 간수하였다가 사촌동생 강석환에게 넘겨주었다. 거기에 쓰인 글귀는 『소학(小學)』의 「가언제오(嘉言第五)」에 나오는 구절로서, 삶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가르침을 담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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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께서 강성회에게 전하신 병풍의 글귀. 현재 전해지는 글씨는 상제님의 친필이 아니다. 병풍을 소장하고 있던 강석환이 누군가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병풍을 빌려주었지만, 빌려간 이가 원본 대신 부실한 복사품을 만들어 돌려주고 사라지는 바람에 진품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其略曰       
戒爾學立身   
莫若先孝悌   
怡怡奉親長   
不敢生驕易   
戒爾學干祿   
莫若勤道藝   
嘗聞諸格言   
學而優則仕   
戒爾遠恥辱   
恭則近乎禮   
自卑而尊人   
先彼而後己  
擧世好承奉   
昻昻增意氣   
不知承奉者   
以爾爲玩戱

 
  병풍의 다른 폭에는  

 

萬事已黃髮   
殘生隨白鷗      
安危大臣在   
何必淚長流    

 

라는 글귀가, 또 한 폭에는 고전체(古篆體)로 ‘靈源出 綿空早移 浮邑梧弦 枇緣足柰 新兒大琴 杷晩笑谷 阮背帶代’라고 적혀 있었고, 병풍 속에는

  

吾家養白鶴   
飛去月蘆夜     

 

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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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5월, 상제님께서는 태인의 백암리04에 계셨다. 그 마을에는 김경학(金京學)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경학의 형 집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순식간에 다 태우고 옆의 김경학 집으로 옮겨 붙으려 하였다. 이를 보신 상제님께서 “이 불을 끄지 않으면 동리가 위태로우리라.” 하시고는 크게 바람을 일으키시니, 불길이 사그라져 곧 꺼지게 되었다. 김경학은 물이 아니라 바람으로 불을 끄는 법도 있다고 하면서 크게 탄복하였다. 몇 달 전 정월 초에 김경학의 형은 아우가 이상한 술객에게 속아 재산을 허비한다고 관부에 고발함으로써 순검들이 상제님을 잡으러 다니는 소동을 벌이게 한 적이 있었는데,05 이로 보면 그의 집에 불이 난 것도 우연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상제님께서는 몇 달 전부터 원평 시장에 있는 김경집(金京執)의 음식점을 사관(私館)으로 정하시고, 오고가실 때마다 그곳에서 지내시곤 하셨다. 그러다 보니 상제님을 받드는 종도들도 상제님을 찾아뵈러 온다든지 혹은 상제님의 심부름을 하러 다닌다든지 하여 자연 그곳에서 음식을 먹는 일이 잦았다.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의 편의를 위해, 김경집에게 누구든지 이곳에서 음식을 먹으라고 시키셨다는 당신의 말씀을 들은 자는 음식 값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지 말고 다 내어주라고 일러두셨다. 그리하여 종도들은 상제님 앞으로 대금을 달아놓고 김경집의 음식점에서 마음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태인의 청석골에 살고 있던 강팔문(姜八文)이라는 사람이 그 소문을 듣고 김경집의 음식점으로 찾아가 술과 밥을 청하여 배불리 먹은 뒤, 자기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제님께서 자기에게 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한 뒤 그 음식 값을 상제님께 미루어두고 가 버렸다. 강팔문은 그날 밤부터 체하여 복통을 일으키며 붓기 시작하더니 급작스럽게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신경수(申京洙)가 상제님을 찾아뵈었으나 상제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신경수가 물러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강팔문의 병세가 더욱 위독하여졌음을 아뢰었으나, 상제님께서는 “몹쓸 일을 하여 신명으로부터 노여움을 사서 죽게 되었으니 할 수 없노라.”고 하셨다. 얼마 안 가서 강팔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니, 하늘을 속인 자의 말로는 과연 이러하였던 것이다.

<대순회보>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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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천곡마을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정읍천으로 들어가는 작은 강. 『한국지명총람 12 (전북편ㆍ하)』, (한글학회, 2003), p.399.
02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진주 강씨 문중(門中)의 계보(系譜) 탐구」, 『대순회보』 73호 (2007), pp.22-23.
03 『월간 천지공사』 51호 (충남: 범증산교연구원, 1993), p.28.
04 現 전북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 원백암마을.
05 「돌이키기만 하면 仙人이 되리라」, 『대순회보』 142호 (2013), pp.16-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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