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문갈대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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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3.29 조회6,588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강남규
어느 강기슭에 아주 연약해 보이는 갈대들이 서 있었습니다. 산들거리며 부는 조그만 바람이나 세차게 부는 큰바람에도 갈대들은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습니다. 그런데도 갈대들은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꽃들이 갈대들을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쳇, 예쁜 꽃봉오리도 없고 아무 멋도 없으면서 뭐가 그리 즐거워 웃고 있담?” 그러자 옆에 서 있는 커다란 참나무가 맞장구치며 거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약한 바람에도 금세 뿌리가 뽑힐 것처럼 마구 흔들려서야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겠어.” 이 말을 듣고 길을 가던 짐승들이 말했습니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아. 갈대는 정말 아무 데도 쓸모가 없어. 너무 딱딱해서 먹을 수도 없고 멋도 없는,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풀일 뿐이야.” 그러나 갈대들은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여전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굉장한 폭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아아, 큰일 났네. 이러다간 곧 바람에 휩쓸려 버리고 말겠네.” 제일 먼저 아름다움을 뽐내던 꽃들이 바람에 뽑혀나갔습니다. “어험, 나는 크고 튼튼해서 이까짓 바람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으스대던 참나무도 얼마 안 가서 우지끈하고 부러져 버렸습니다. “야, 우리도 빨리 숨어야겠다. 꾸물거리다간 바람에 날려가 버리겠어.” 짐승들은 재빨리 굴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마침내 며칠 동안 계속되던 폭풍우가 그치고, 해님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때, 땅속에 숨어 있던 들쥐가 머리를 삐죽이 내밀었습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들쥐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럴 수가! 꽃들은 물론 커다란 참나무까지 폭풍우에 휩쓸려 버렸는데, 갈대들은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저렇게 잘 버텨 낼 수 있었을까?” 이 말을 들은 갈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뽐내거나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늘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야.”01
윗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겸손과 낮춤입니다. 꽃들은 자신의 예쁨을 자랑하며 갈대를 비웃었고, 짐승들은 갈대를 보잘것없고 먹을 수도 없는 쓸모없는 나무라고 조롱했고, 참나무는 자신의 강함을 으스대며 갈대를 약하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강한 바람이 불자 이들은 바람에 뽑히고 부러지고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갈대는 그들의 조롱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큰바람에도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갈대가 큰바람에도 살아날 수 있는 비결은 바람에 대항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무들은 다들 뻣뻣하게 굳어 있어서 바람의 저항을 그대로 받았지만, 갈대는 유연하게 몸을 낮추어 저항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수도생활에 적용해보면 수도인의 자만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화의 바람처럼 도(道)에서 바람이 불 때 자만하고 뽐내는 자는 척에 걸려 넘어감을 의미합니다. 왜 도인은 갈대처럼 낮추고 겸손해야 할까요?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면 척을 짓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해원시대라 척이 있으면 반드시 풀어야 하지만 척을 풀기 전에 척을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전님께서는 척을 짓지 않고 남 잘되게 하는 것이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것이라 하시며 이를 실천하는 도인이 실력 있는 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일화에서 바람에 저항하는 꽃과 나무들의 뻣뻣함은 자신만의 고집을 연상시킵니다. 자신의 경위만 옳고 남의 주장을 무시하는 데서 서로 미워하다가 원한을 품어 척을 맺는 법입니다. 더욱이 자존 자만은 덕화를 손상케 하고 자신까지 망치게 합니다. 그래서 도인은 처세함에 있어서 온유(溫柔)를 귀중히 하고, 말함에 있어서 항상 더듬거리기를 바라고 일함에 있어서 어리석음과 같게 해야 합니다. 갈대의 유연함처럼 인간관계에서 관용으로 대한다면 척을 맺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도인은 자신의 자만과 고집을 경계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겸손(謙遜)과 사양(辭讓)의 덕으로써 남을 대해야 합니다.
바람에 자신을 낮추는 갈대의 모습은 우주 자연의 진리, 즉 순리에 따르는 도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자기 고집을 내세우다가 척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사심을 버리고 양심과 진리에 따르는 삶이 갈대의 미소에서 엿보이는 듯합니다. 그래서 큰바람이 불어도 갈대는 여유가 있고 초조하지 않습니다.
<대순회보> 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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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글 송명호, 그림 김민호, 『생각하는 갈대』 (서울: 한국 갈릴레이, 2004), pp.4-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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