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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금강산의 딸 박씨부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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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4.06 조회6,8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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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는 박씨가 시부모님께 문안을 드린 뒤 시아버지인 이득춘께 아뢰었다. “내일 아침에 하인을 종로 여각(旅閣)에 보내면, 거기서 매매되는 수십 필의 말 중에 제일 못나고 비루먹은 말이 있을 겁니다. 그 말의 값을 물으면 일곱 냥을 달라고 할 것이니 못들은 체하고 삼백 냥에 사오게 하십시오.” 그녀의 말이 이상했으나 득춘은 며느리의 비범한 재주를 믿었으므로 쾌히 승낙하고 하인을 시켜 비루먹은 말을 사오게 하였다.

  다음날 박씨가 하인이 끌고 온 말을 보더니 득춘에게 그 말을 판 사람에게 다시 돌려보내라고 청했다. 뜻밖의 소리에 놀란 득춘이 그 까닭을 물으니 박씨가 이르기를, “이 말은 삼백 냥의 가치가 있는 말이온데 그 값을 덜 주고 사왔으니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이 하인을 불러 족치니, 그가 빌면서 중간에 돈을 가로챈 것을 사죄하고 나서 다시 여각으로 가 삼백 냥을 준 후에 말을 끌고 돌아왔다. 그러자 박씨는 매일 깨 한 되와 백미 다섯 홉으로 죽을 쑤어 3년 동안 먹이되, 밤마다 이슬을 맞히게 해서 그 말을 기르도록 했다. 과연 그 말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더니 3년이 지나자 아주 빼어난 준마가 되었다.

  그 후 박씨가 득춘에게 “내일 명나라 칙사가 남대문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믿을 만한 하인에게 분부해서 그 말을 끌고 가 기다리게 하면 그 칙사가 값을 물을 것이니, 삼만 팔천 냥에 팔아오라고 하십시오.” 득춘이 박씨가 이르는 대로 하였더니 과연 명의 칙사는 그 말을 삼만 팔천 냥이란 거금을 주고 사갔다. 이 말이 바로 천리마(千里馬)였던 것이다.

  이 무렵 나라에서는 과거를 시행하여 전국에서 인재를 뽑으니, 남편 이시백이 내일이면 과거에 응하고자 대궐 안 과장(科場)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밤, 박씨는 백옥으로 만든 연적(硯滴: 벼루에 먹을 갈 때 물을 담아 두는 그릇)이 용으로 변하여 연못 속에 들어갔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박씨가 꿈에서 깨어 연못가에 가보니 과연 꿈속에서 본 연적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하녀인 계화를 시켜 남편에게 그것을 보내면서 이 연적을 가지고 가서 먹을 갈아 글을 쓰면 장원급제할 수 있다고 전하게 했다.

  처음에 시백은 과거보는 날에 여인이 무슨 방정맞은 소리를 하느냐고 아니꼽게 생각하였으나 연적을 보니 천하일품이라 마음을 고쳐먹고 품속에 지니고 갔다. 시백이 그 연적으로 먹을 갈아 답안을 쓰니 글 생각이 샘솟듯 막힘없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단연 장원급제를 하니 시백은 임금의 칭찬과 함께 어주(御酒)를 하사받은 후, 어사화를 꽂고 청기와 홍기를 앞세워 도성(都城)의 대로에 나오니,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구경하였다.

  이때 계화는 시백이 장원급제한 소식을 듣고 박씨부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또 탄식하며 이르기를, “부인께서 시댁에 오신 후로 부군의 자취가 이곳에 한번도 보이지 아니하고, 대부인의 박대하심을 당하여 적막한 후원에 홀로 주야거처하시며 집안 대소사에 참여치 못하고 수심으로 세월을 보내시니, 소녀의 짧은 소견으로 그 신세를 생각하면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태연히 웃으며 대답하였다. “사람의 팔자는 다 하늘이 정하신 바라, 인력으로 고치지 못하거니와 자고로 박명한 사람이 어찌 나 혼자뿐이겠느냐? 분수를 지켜 천명(天命)을 기다림이 옳으니 아녀자가 되어 어찌 지아비의 정을 생각하리요? 너는 괜한 말을 다시 하지 마라. 바깥사람들이 들으면 나의 행실을 천히 여기리라.” 계화는 박씨부인의 넓은 마음과 어진 말에 탄복해 마지않았다.

  박씨가 시댁에 온지 몇 해가 지나서 하루는 시부모님께 문안을 올리고 본가(本家)에 다녀오기를 청하였다. 이에 득춘이 놀라며 이르기를, “이곳에서 금강산까지는 오백여 리요, 길이 또한 험하거늘 아녀자의 몸으로 네 어찌 가려 하느냐? 부득이 한번 다녀오고자 하거든 내일 근친(覲親: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부모를 뵘)할 때 필요한 물품과 인마(人馬)를 준비해 줄 것이니 속히 다녀오도록 해라.” 그러나 그녀는 “소부 수삼일 동안에 다녀올 도리가 있사오니, 물품과 인마는 쓸 데가 없나이다.”하고는 하직 후 후당에서 가만히 몸을 솟구쳐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더니 이내 금강산 비취동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틀도 못 되어 박처사가 “그 사이 박대 받은 것도 너의 운명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내가 보름 후에 서울로 갈 터이니 너는 그만 빨리 돌아가라.”고 하므로 박씨는 마지못해 하늘을 날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보름이 지난 후, 달빛이 유난히 밝은 저녁에 득춘이 뜰을 거닐고 있었는데 박처사가 구름을 타고 공중에서 내려왔다. 득춘이 사랑으로 급히 맞아들이니 처사는 “아드님이 장원급제한 소식을 듣고 즉시 치하하러 오지 못하여 죄송하오이다. 마침 금년이 딸자식의 액운이 끝나는 해인지라 그 아이를 보러 왔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후원 초당에 있는 박씨를 찾아갔다.

  초당에 있던 박씨는 급히 마루로 나아가 반갑게 부친을 맞아 절을 올리고 문안하니, 처사는 흔연히 딸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금년으로 너의 액운이 다 하였도다.”하고 주문(呪文)을 외우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키니 그 흉하던 얼굴의 허물이 순식간에 벗겨지고 옥같이 고운 본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 허물을 보관케 했다가 시부모와 남편에게 보이라 이르고 사랑에 나가 득춘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후일에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 못난 여식에게 물어보소서.”하고 두어 걸음 걷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튿날 계화가 박씨부인의 허물 벗은 사실을 알리자 시부모가 후원의 초당으로 급히 달려가 보니 그처럼 흉하던 며느리가 절세의 미인으로 변해 있었다. 박씨는 “제가 전생의 죄가 크므로 얼굴에 흉한 허물을 쓰고 세상에 태어나서 수십 년의 액운을 채웠기로 하늘이 부친께 명하여 본모습을 회복하게 해주셨으니 의심치 마십시오.” 시부모는 반신반의하다가 벗어 놓은 허물을 본 다음 확신하고 매우 기뻐하였다. 득춘 부부는 급히 아들을 불러 며느리를 만나게 했더니 시백도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후 그들 사이에는 쌍둥이가 생겼고 시부모들은 손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였다. 이즈음 시백은 임금의 총애를 받아 평안감사와 병조판서를 지내며 국가의 중임을 맡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대순회보> 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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