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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만폭동 사선기반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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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8.07 조회6,4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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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은 이야기

 

  

  표훈사에서 만천(萬川)을 따라 약 100m 정도 오르면 큰 바위 둘이 이마를 맞대고 서 있는 돌문이 나타난다. 이 돌문은 바닥 폭이 약 5m, 높이 2.5m, 길이가 4m 정도 되는 삼각형인데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좁아졌다. 이것이 바로 내금강 만폭동에 있는 금강문(金剛門)이며 일명 원화문(元化門)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나서면 갑자기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오고 흰 너럭바위들이 깔려 있는 별천지가 펼쳐지는데 여기서부터 화룡담까지 약 1km를 포괄하는 지역이 만폭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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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폭구역은 예로부터 만폭동(萬瀑洞)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금강산의 계곡미를 대표하는 명승지역이다. 그렇게 긴 구간은 아니지만 계곡 안에는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가 하면 비스듬히 몸을 누인 폭포도 있고, 크고 작은 못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을 자랑하며 계곡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이처럼 만폭동 골짜기 안은 폭포 아니면 못이고 못 아니면 폭포라고 할 만큼 개울이 온통 폭포와 못으로 가득 차 있고, 여기에 바위와 봉우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수려하고 장쾌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금강문에서 겹겹이 싸인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 원통골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만폭동의 개울이 만나는 합수목이 나온다. 이곳에 산줄기가 뻗어 내리다가 갑자기 멎어선 듯 두 개울을 양옆에 끼고 우람차게 솟아 절벽을 이룬 금강대(金剛臺)가 앞을 가로 막는다.

  금강대 밑에 자리한 만폭교 아래에는 길이 약 200m에 이르는 거대한 은빛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이 너럭바위에 ‘萬瀑洞(만폭동)’과 ‘蓬萊楓嶽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는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유명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봉래’ㆍ‘풍악’은 금강산의 여름과 가을 이름이고, ‘원화동천’은 만폭동의 별칭으로 금강산의 으뜸가는 골짜기란 뜻이다. 양사언은 자신의 호를 봉래라 짓고 별호를 원화라고 했는데 그 만큼 금강산의 절경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밖에도 이 너럭바위에는 나옹조사[혜근(惠勤), 1320~1376]의 필적이라 전하는 ‘天下第一名山(천하제일명산)’이란 글씨와, “천 개의 바위는 아름다움을 경쟁하고, 만 갈래의 계곡은 흐름을 다툰다”는 뜻의 ‘天岩競勝 萬壑爭流(천암경승 만학쟁류)’라는 글씨가 있다. 또한 옛날 삼신산(三神山)의 신선들이 만폭동의 절경에 취해 떠날 생각을 잊고 바둑을 두었던 자리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이 바둑판은 신라의 영랑·술랑·남석랑·안상랑 등 사선이 바둑을 두었던 곳이라 하여 사선기반(四仙碁盤)이라 부르고, 봄ㆍ여름ㆍ가을 세 계절에만 이곳에서 바둑을 둔다는 뜻에서 ‘삼산국(三山局)’이라고도 한다. 만폭동의 바둑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유명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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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삼신산의 신선들이 내금강 만폭동 입구의 너럭바위에 모이면 이곳의 절경에 매혹되어 떠날 생각을 잊은 채 바둑을 두며 놀았다. 때마침 이곳에 나무를 하기 위해 올라온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강생이었다. 강생은 아주 정직한 사람으로서 나쁜 일이라고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세상을 잘못 만나 양반 지주집에 나무를 해주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딱한 처지였다. 바로 그날도 주인집 나무를 해주려고 단단한 새 도낏자루를 맞춰서 만폭동 골짜기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너럭바위 위에서 어떤 사람들이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기에 잠시 쉬었다 갈 요량으로 도끼를 내려놓고 그들 곁에서 구경하였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바둑 솜씨가 실로 용과 범이 싸우는 형국처럼 절묘하여, 한 사람이 한 점을 두면 상대의 전체 판국이 몹시 위태로워졌다가도 다른 사람이 한 점을 놓으면 다시 상황이 급변하여 오히려 상대의 전도가 어두워졌다. ‘이분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금강산에 신선이 있다고 하더니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하며 그들의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강생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둑 구경에 몰두하였다.

  얼마간 그렇게 놀던 신선들은 다과를 내놓고 먹으면서 구경하는 강생에게도 함께 먹기를 권하였다. 강생이 이를 마다하고 굳이 가려고 하니까 한 신선이 말하기를 “이것은 술이 아니라 만세로(萬歲露)라는 차이니 어서 잡수시오.” 하고 권하니 또 한 신선이 복숭아를 내놓으면서 “이것은 종자가 다른 천선도라는 복숭아라 맛이 대단히 좋으니 하나만이라도 들어보시오.” 하며 서로 권하는 것이었다.

  강생이 이들의 성의에 못 이겨 만세로를 한 잔 마셨더니 곧바로 얼굴의 주름살이 펴지며 청년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이어 천선도를 먹고 나니 이번에는 흰 머리털이 까맣게 변하는 것이었다.

  ‘허허, 거참 이상하군. 내 손의 주름들이 다 어디로 갔나?’

  강생은 혼자말로 이렇게 몇 번이나 되뇌고 나서 슬그머니 자기 얼굴을 냇물에 비쳐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냇물에 비친 것은 바로 40년 전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풍악소리와 함께 오색무지개가 서니 네 신선들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강생에게 인사를 한 후 무지개를 타고 떠나갔다. 네 신선이 사라지자 강생은 자기가 나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도끼를 잡으려 하였으나 아침에 새로 맞춘 도낏자루가 썩어서 쥘 수가 없었다. 

  ‘허허. 내가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몰랐군!’

  강생이 적당한 나무를 골라 도낏자루를 대신한 뒤 부랴부랴 나무를 해가지고 마을로 돌아갔더니 예전에 자기가 살던 마을은 간곳없고 새로운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그곳에 열 살쯤 먹은 아이들이 길가에서 놀고 있기에 강생이 예전 집주인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보니까 아이들 말이 “옛날에 이곳에 살던 못된 지주집이 망한 지가 벌써 삼대나 되었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강생은 ‘내가 확실히 신선놀음에 세월 가는 줄 몰랐구나.’ 하고 중얼거리다가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세상 사람들은 금강대 밑의 너럭바위를 두고 네 신선이 바둑을 두며 놀던 곳이라고 하여 ‘사선기반(四仙碁盤)암’이라 불렀고 그곳에 ‘삼산국(三山局)’이란 글자도 새겨놓았다. 지금 우리 속담에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도 이때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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