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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보덕암(普德庵) 전설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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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8.09 조회6,2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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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의 계곡미를 대표하는 만폭동(萬瀑洞) 계곡을 따라 오르면 곧은 폭포와 누운 폭포, 그리고 크고 작은 못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요란한 물소리는 골짜기를 뒤흔들고 산봉우리 위에 얹혀 있는 기묘한 바위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얼마간 계곡을 따라 가다 방선교를 건너다보면 다리 아래에 두 가닥으로 갈라져 흘러내리는 누운 폭포와 소(沼)가 있는데 이것이 관음폭포와 관음담이다. 관음폭포를 지나면 곧바로 개울바닥 너럭바위 위에 동그란 돌확이 패어 있고, 거기에 새파란 물이 고인 곳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보덕암 전설에 등장하는 보덕각시가 머리를 감았다는 ‘세두분(洗頭盆)’이다. 세두분에서 위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둥그스름하면서도 길게 놓인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보덕각시가 수건을 걸어놓았다는 이른바 ‘수건바위’이다. 이 바위를 뒤로 하고 개울을 따라 오르면 오른편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우뚝 서 있고 그 밑에 작은 소가 하나 있다. 이 소는 가늘고 기다랗게 생겼지만 바닥이 비교적 반듯해서 물의 흐름이 잔잔하다. 게다가 절벽 때문에 그늘이 져서 사람이 다가가면 거울처럼 비친다. 전설에 보덕각시의 모습이 비쳤다는 ‘영아지(影娥池)’가 바로 이곳이다.

  영아지를 지나면 만폭동의 절경이라 할 수 있는 만폭팔담(萬瀑潭)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폭팔담은 그 이름처럼 제1담 흑룡담을 시작으로 제8담 화룡담까지 연이어 있는 맑고 푸른 여덟 개의 못이다. 매끈한 암반 위에 담과 소가 연이은 모습이 외금강의 상팔담(上潭)과 견줄 만하다 하여 ‘내팔담(內潭)’이라 부르기도 한다. 각각의 못들은 모두 나지막한 폭포를 걸치고 있어 폭포와 담이 어우러진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만폭팔담의 중턱에는 오른편에 기세 좋게 흐르던 물이 갑자기 밑으로 떨어지다가 아래쪽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못이 있다. 삼복더위에도 눈보라를 날리고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든다는 분설폭포(噴雪瀑布)와 분설담(噴雪潭)이다.

  분설담에서 맞은편의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법기봉 중턱을 바라보면 높이가 7.3m나 되는 구리기둥 하나에 의지하여 벼랑에 간신히 기댄 채 서있는 암자가 눈에 들어온다. 고구려 영류왕 10년(627)에 보덕화상이 수도하기 위해 자연굴을 이용해 지었다는 보덕암(普德庵)이 바로 이곳이다. 보덕암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각각 중창되었고,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암자는 단층집이지만 맨 밑의 눈썹지붕에 팔작지붕을 얹고 그 위에 맞배지붕을 씌웠으며, 다시 우진각지붕을 올려놓아 멀리서 보면 마치 3층 집처럼 보인다. 참으로 누가 구상하고 설계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묘하게 지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보덕암이 있는 벼랑에는 나무 한 그루 서지 못하였으나 그 주변에는 소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자연이 빚어낸 절경 속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보덕암은 주변의 자연 경치와 잘 조화되어 만폭동의 절경을 한층 돋우어준다.

  분설담에서 법기봉 벼랑길 돌층계를 따라 오르면 보덕암에 이르게 된다. 보덕암은 구리 기둥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처럼 서있지만 사실 보덕굴 바위에 깊숙이 박힌 쇠줄로 허리띠를 단단히 조여 매고 있다. 그래서 심한 바람이 불거나 4~5명이 마룻바닥을 걸으면 암자가 울렁거리고 삐걱삐걱 흔들리지만 오늘날까지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내부의 삐거덕거리는 마루를 밟고 들어서자 절벽에 깊숙이 뚫린 굴이 보인다. 깊이가 5.3m, 폭이 1.6~2m, 높이가 1~2m 되는 자연굴인데 이곳이 바로 보덕각시의 전설이 깃든 ‘보덕굴’이다. 이 보덕굴에는 만폭동 계곡의 세두분ㆍ수건바위ㆍ영아지와 관련된 보덕암 중창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회정이라는 스님이 금강산에 들어와 10년을 작정하고 불경을 읽기 시작했다. 문을 닫아걸고 공부에 열중하던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니 뜰에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꽃구름을 이루었고, 호랑나비는 쌍쌍이 짝을 지어 날고 있었다.

  ‘벌써 또 봄이 왔구나! 아직도 나는 3년간 이 산속에 더 머물러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든 것은 회정이 금강산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7년이 되던 해였다. 봄바람이 불고 꽃들이 만개하니 마음이 산란하여 초심을 잃고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은 것이다. 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풀어지자 졸음이 와서 그만 낮잠이 들었다.

  회정은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의 이름은 보덕각시였다. 그는 젊은 미인을 만나자 너무 황홀해진 나머지 불교의 계율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런 말씀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훗날 만폭동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만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상한 꿈이기도 하거니와 꿈에서 보았던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이 너무도 선명해 경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만폭동을 향해 떠났다.

  회정이 내금강 만폭동의 금강문(金剛門)을 지나 개울가로 올라가니 사방의 경치가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금강대를 바라보며 얼마간 더 가던 그는, 개울 한복판의 큰 바윗돌(수건바위)에 누군가 수건을 걸어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웬 사람이 여기에 왔을까?’ 하면서 개울가를 살펴보니 아래쪽 너럭바위 위에 맑은 물이 고인 돌확(세두분)에서 어떤 여인이 머리를 감고 있었다.

  회정이 발길을 멈추고 서서 보니 그녀는 얼마 전 꿈에서 본 보덕각시가 틀림없었다. 때마침 그녀는 머리를 다 감고 얼굴에 약간의 화장을 하고는 수건을 걷어가려고 하였다. 너무 기쁜 나머지 회정은 “보덕각시!” 하고 부르며 달려갔으나 그녀는 본체만체하며 수건을 걷어가지고 개울을 따라 올라갔다. 그는 연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갔으나 한 굽이를 돌자마자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는 줄도 모르고 회정은 어느 소(沼: 영아지)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여인의 그림자가 물 위에 비친 것을 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귀신에 홀린 것인가?’ 하면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그날 밤 꿈에 보덕각시가 나타나 “불ㆍ보살들은 여자를 곱다고만 생각해도 죄를 짓는다 하셨는데 하물며 10년을 기약하고 공부하시는 분이 그런 외람된 마음을 가져서야 뜻한 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고 꾸짖었다. 이어서 “스님이 지금까지 공부를 해오셨으니 제가 먼저 드리는 글에 부합하는 글을 지으시면 바라는 바가 이뤄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보덕각시가 “그대를 내가 모시게 되면”이라는 글을 제시하자 회정은 이쯤이야 하면서 “반드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리라.”는 글을 써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밖에 나가더니 회초리를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이게 어디 공부한 스님의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드린 글귀에는 ‘10년 공부 허사가 되리라.’는 글귀가 알맞지요. 지금까지 헛공부 하셨네요.” 하고는 회초리로 사정없이 종아리를 쳤다. 회정은 보덕각시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고 뉘우치다 깨어났는데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이날 아침 그는 보덕각시의 모습이 비쳤던 소에 가서 그녀를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어디선가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날갯짓을 하다가 골짜기를 따라 오르더니 법기봉 중턱의 절벽에 있는 작은 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저 굴에 한번 올라가보자고 결심하고 풀뿌리, 나뭇가지와 돌부리를 붙잡으며 벼랑을 올라갔다.

  겨우 굴이 있는 곳까지 닿았는데 굴속을 들여다보니 파랑새는 종적도 없었다. 다만 작은 부처 하나가 앉아있고 그 옆에 쌓여 있는 불경들이 눈에 띄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옛날에 사람들이 올라왔던 자취와 쇠못을 박았던 자리들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회정은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한 보덕각시가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그동안 잡념에 사로잡혔던 자신을 크게 뉘우쳤다. 그리고 이곳에 작은 암자 하나를 짓고 살면서 굴속에 있던 불경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 당대의 이름 높은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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