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야기왜구를 물리친 쌀뜨물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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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4.22 조회5,977회 댓글0건본문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으로 알려진 백정봉구역은 고성군 운전리(雲田里) 서남방향에 있는 돌산인 백정봉과 바리봉을 포괄하고 있는 외금강 명승지의 하나이다. 백정봉(百鼎峰)은 이름 그대로 반석 위에 가마솥 같은 바위들이 많고, 바리봉은 마치 바리를 뒤엎어놓은 것 같은 생김새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19세기 초에 백정봉구역을 찾았던 사람들이 이곳에 대해 평하기를 “장차 금강산이라는 명산을 만들기 위해 우선 이 봉우리에 하나의 자그마한 모형을 만들어본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이 구역은 금강산의 절경을 맨 처음 맛보게 하는 명승지로 평가되어 왔다.
백정봉구역에서 백정봉(748m)은 고성군 운전리에서 서남쪽으로 약 3km 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돌산이다. 북쪽으로는 운전강이 흐르고 서남쪽은 금수봉, 서쪽은 바리봉과 각각 잇닿아 있으며 멀리 동해 바다가 바라보인다. 이 지역과 관련된 고려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슬기로운 백성들과 군사들이 바다를 건너 온 해적의 무리인 왜구(倭寇)의 침입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투쟁한 기사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이 전투에 금강산일대의 백성들과 군사들도 여러 번 참가하였는데 그들은 아름다운 조국강산에 왜구의 발길이 미칠 때마다 하나같이 떨치고 일어나 적들을 물리쳤다. 다음의 이야기는 그때 있었던 전투에 관한 일화 중의 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에 천수백 명이나 되는 왜구의 무리가 통천에 쳐들어왔다. 급보가 전해지자 통천 주민들과 군사들은 재빨리 대오를 편성하고 왜적이 쳐들어오는 방향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우리 군사들은 수적으로 열세였고 병장기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전력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형세는 우리 군에게 대단히 불리하였다. 적들과의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우리 군과 백성들은 어둠을 틈타 일단 백정봉 쪽으로 철수하였다. 깊숙한 산림과 험준한 산세에 의거하여 왜적을 쳐부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다음날에야 우리 군의 소재를 파악한 왜구들은 허둥지둥 뒤따라오다가 고성군에서 추격을 멈추었다. 우리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데다가 백정봉 어귀에 와보니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절벽이 앞을 막아섰고 도처에 복병이 숨어있는 것만 같아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왜구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군 진영에서는 대부분의 군사들을 운전강 좌우에 매복시켜 놓았다. 전투를 돕기 위해 나선 주민들에게는 백정봉을 짚단으로 감싸게 해 노적(露積 : 한데에 수북이 쌓아 둔 곡식 더미)가리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점심때쯤에 10여 명의 주민들이 가져온 백토와 회(灰)가루를 개울물에 풀어 운전강에 흘러내려 보냈다. 그처럼 맑던 강물은 삽시간에 희뿌예졌고 오래지 않아 뿌연 물은 강줄기를 따라 쉼 없이 흘러 내려갔다.
그러자 산 아래쪽에 있던 왜구들의 진지에서는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하도 신기한 광경에 어리둥절한 나머지 저마다 수군거렸다.
“맑던 강물이 갑자기 왜 이래?”
“글쎄, 꼭 쌀뜨물같구만.”
“거참 신기한걸.”
왜구들이 법석대는 사이에도 희뿌연 강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수하들의 보고를 받고 뛰쳐나온 왜장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당장 운전리에 살고 있는 사람을 끌고 오게 하였다. 잠시 후 한 노인이 끌려오자 왜장은 그 노인에게 “강물이 왜 이렇게 뿌연가?” 하고 물었다. 노인은 머리를 들어 백정봉을 바라보았다. 거기서는 도처에서 점심 짓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왜장의 독촉을 받은 노인은 “아, 이 물말인가요?” 하고 되묻고 나서 백정봉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어젯밤에 저 산속으로 수천 명의 군사들이 들어갔는데 저것은 그들이 먹을 양식을 쌓은 노적가리이고, 강물이 뿌연 것은 아마도 군사들이 점심을 지으려고 쌀을 씻기 때문인가보오.”
“저 거대한 것이 군량이며 떠내려 오는 이것이 쌀뜨물이란 말인가?”
왜장의 다급한 물음에 노인은 ‘그렇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럭 겁이 나서 자기 주위에 둘러서 있던 부하들에게 말했다.
“뿌연 것은 분명 쌀뜨물이고 저렇게 많은 군량미가 있는 것을 보면 저 산에 대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기겁한 왜장은 어둠이 오기 전에 이 골짜기를 빠져나가 통천 쪽으로 총퇴각할 것을 명령하였다. 땅거미가 질 무렵 왜구의 무리들은 백정봉을 뒤로 하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난데없이 북소리가 울리더니 운전강 좌우에서 “와!” 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화살이 비 오듯 하였고 양쪽 산마루에서는 바위들이 삽시간에 쏟아져 내렸다. 복병에 의해 불의의 습격을 받은 왜적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다가 가을바람에 갈대 쓰러지듯 마구 쓰러졌다. 이 전투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왜구들은 다시 고개를 넘어 간신히 바다 쪽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통천 주민들과 군사들은 “쌀뜨물 전술”로 왜구의 무리를 감쪽같이 속인 다음 때를 놓치지 않고 기습전술을 펼쳐 아름다운 금강산이 자리 잡고 있는 고향땅을 굳건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그 후 이곳 사람들은 백정봉을 ‘노적봉’이라 하였고 왜놈들이 혼쭐이 나서 다시 넘어간 고개를 ‘되넘이고개’로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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