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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양사언과 온정리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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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5.14 조회6,3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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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성의 온정리 일대는 동해로 흐르는 온정천(溫井川)과 신계천(神溪川)을 따라 펼쳐져 있는 외금강(外金剛) 유람의 거점이 되는 곳이다. 이곳은 서·남·북쪽으로 중첩한 기암준봉들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는 온정천이 흘러 내리면서 곳곳에 푸른 소(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시냇가에는 소나무, 잣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다른 구역들과는 다른 특색 있는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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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리 금강온천

 

따뜻한 우물이란 뜻의 ‘온정(溫井)’은 냇가의 기슭에 온천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생긴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온정리에서 솟는 온천은 수온이 37~44도를 유지하며 방사능을 약하게 띤 라돈(radon)이 함유되어 있어 신경통·심장병·고혈압·관절염 등에 약효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온천이 언제 발견되었는지는 명백하지 않으나 세조 10년(1465)에 고성 온정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세기에 이미 온천이 이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백여 년 전, 안변부사로 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 1517~1584)은 고성 온천이 좋다는 말을 듣고 금강산을 유람하기로 하였다. 안변을 떠나 통천에 이르러 총석정(叢石亭)을 구경하고 온정동에 이르렀을 때 심하게 갈증이 났다. 그는 말에서 내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던 처녀에게 마실 물을 청하였다. 그러자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우물가에 휘늘어진 버들잎을 따 넣어 두 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양사언은 처녀의 행실이 이상하였으나 무슨 까닭이 있으리라 여기고 잎사귀를 훌훌 불어가며 잠자코 물을 마신 후에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처녀는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나직이 설명하였다.

“보아하니 선비께서는 갈증이 매우 심하신 듯하였습니다. 목이 마르신 분이 갑자기 숨을 돌리지 않고 차가운 물을 마시면 탈이 나므로 그리하였으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금강산은 경치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도 뛰어나구나!”하고 감탄하였다. 이런 일로 양사언은 금강산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는 가까운 해금강의 감호(鑑湖)에 비래정(飛來亭)을 짓고 살았으며, 곳곳의 명소에 글씨를 새기고 시부(詩賦)를 지어 남겼다. 그리고 봉래산(蓬萊山)이라는 금강산의 별칭을 따서 호(號)도 ‘봉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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